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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반쯤 읽기까지 위기가 몇 번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맥락이 잘 잡히지 않는 철학적인 표현들 때문에 줄거리에 몰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 오주의 등장으로 속도는 탄력을 받았고 르네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많은 여운을 안은 채 책을 덮지 못하고 다시 뒤적거렸던 기억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다시 책을 읽었다. 앞부분의 철학적인 담론들의 맥락도 분명해지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잡혔다.
줄거리만 보면 참 슬픈데, 꼭 슬프지만은 않은 얘기라는 생각이다. 54살의, 뚱뚱하고 못생기고 아무도 눈여겨보려고 하지 않는, 우리 주변의 흔한 한사람의 소외된 도시인 르네의 눈으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프랑스라는 세상은 어쩌면 참으로 낡았고 딱딱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부유층 아파트의 각 층에는 지금 현재의 프랑스 내의 계급을 대표하는 부르조아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몰상식하지만 유명한 요리가, 사업가, 사회주의자인 국회의원에 교수, 대학생 등등이 자신의 계급적인 기득권에 안주한 채 부족함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서도 사회나 이웃이나 문화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찾을 수 없다. 지금 프랑스는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거나 만족하는 체하면서 서로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간섭을 철저하게 차단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가 날카로운 가시를 몽땅 올려세우고 있는 고슴도치들은 아닐까..
결국 그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 자신일테고, 팔로마는 앞으로 프랑스를 살아가야할 미래 세대의 모습일테다. 르네는 현재를 바라보는 눈이고 그 눈에 담긴 소망을 팔로마에게 계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한가지 남는 건, 어째서 르네의 발견이 오주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작자의 동양 문화에 대한 호감이 개인적으로 반영된 것인지, 아니면 동양 문화에 대한 작가의 기대감을 싣고자 한 표현일지는 좀더 생각해봐야할 문제인 듯하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자신이 사회를 향해 쌓아놓은 위장의 벽이 무장해제되기까지 그녀는 오주에게 끌려가기만 한다는 점. 그녀를 완벽한 철옹성으로부터 끌어내는 힘이 오주에게서만 나온다는 것. 하지만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스스로 사회적인 약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얼마나 강인한 자기 방어의 기제가 발동하게 되는지는 나 역시 겪어봐서 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손에 쥐어진 것 없는 약자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의식만으로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자신의 주변을 완고하게 둘러싸고 있는 힘과 제도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르네가 조금만 더 용기를 내 주었다면, 스스로 계급 사회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억압과 폭력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남겨주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