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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난 하루키를 싫어한다. 취향이 그러하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그러했다. 책을 읽고 나니 사람들이 왜 그 책을 읽은 후 자살을 많이 했는지 알겠더라.
그것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아름답거나 슬픔의 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허무에 가까웠고, 어딘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반면에 한 단편집은 좋아했다.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었던가?
그런 단편이 실려 있던. 사람 냄새 나고 아련함이 있는 다정한, 옛 시간의 아름다움. 타인의 삶이지만 나 역시 훈훈한 마음으로 미소짓게 되는. 그 책은 좋았다.
그 단편집이 좋았음에도 하루키는 내가 안좋아 하는 작가로 분류 되어 굳이 그의 책을 집어들진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이 책을 들게 되었다.
소감. 얻을 게 없잖아? 어쩌라구? 이것도 활자공해 아닐까. 필요 없는 책이 왜 세상에 나와 있는 걸까? 이런 생각 ㅡㅡ;;
내가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읽었더라면 조금은 얻는 게 있을까? 이미 자라버린 나에겐 무의미한 것들.
물론 어느 부분들은 새겨 들은만도 하나 동전을 줍겠다고 연못 바닥을 훑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소모적이다)
기담이라 하지만 별로 기이하지도 않고... 이건 내가 괴담이나 더 많은 기이한 이야기에 익숙해서는 아니다. 하루키가 내 놓는 기담들은 별로 기이하지도 않고 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거나 느끼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하루키가 겪었다는 이야기가 기이했다.
좋아하는 연주자의 연주를 직접 듣는데 그 연주가 그날 따라 별로였고, 하루키는 속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 연주됐으면... 하고 바라는데, 연주자가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곡 두 개를 연주했다는 것. 유명하지도 않은 곡이었는데!
10시 4분전이라는 음반을 사서 나오다가 어떤 청년이 시간을 묻기에 무심코 시계를 보며 답했는데, 그때가 "10시 4분 전"이었다 던가.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운명의 선 위에 서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피아노 조율사가 만난 여자의 귓불에 점이 있어서 오래 전에 다투고 연락이 끊긴 누나를 생각했는데, 누나에게 연락을 해보니 누나 역시, 귓불에 점이 있던 그 여자처럼 유방암이라던 이야기.
이건 기이하긴 하지만 교차하는 우주의 질서 속에 있다는 느낌은 덜하다.
누나처럼 귓불에 점이 있는 여자가 나타난 것은, 다시 동생과 연락하고 싶어 하던 누나의 마음이 보낸 존재라는 것인가, 하늘의 도움이라는 것인가? 그냥 우연 같고, 일반인이 겪기에 약간 기이한 정도.
'날마다 움직이는 신장석'과 '시나가와 원숭이' 편이 조금 눈에 들어오는 정도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어린아이 보다는 크고 어른 보다는 작은 몸집에 잿빛 털이 나있고,
사람처럼 말을 한다.
그리고 그 원숭이의 못된 습관은 이름을 훔치는 것. 마음에 드는 이름을 발견하면 견디기 어렵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만이라도 갖고싶어 하고.
이름을 훔칠 때 그는, 이름 뿐 아니라 그 이름에 깃든 나쁜 점도 함께 가져간다!
하지만 원숭이가 이름을 훔쳐서 자신의 이름을 잊는다니 ㅡㅡ;;
말이 되면서도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본인이 본인의 아픔을 외면하기 위해서 이름을 자꾸 잊는다면 모를까. 이 이야기가 재미 있으려면 뭔가가 달라야 한다.
실제 들은 이야기들을 옮기면서도 주인공이 드러나면 안되니 각색을 하였다 했다.
차라리, 소설가 답게 기본 줄기 이외에 많은 부분을 창작해냈으면 훨씬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부유하고 여유롭고 돈이 있으니 사람들로 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차가운 태도로 우아함을 지키는 작가, 그 작품 속 인물들이 나는 싫다.
하루키는 어떤 곡들의 이름이라던가 하는 것을 작품 속에 많이 적는 사람이다. 꼭 옛날 외국 작가들이 그러했듯.
하지만 그가 적어내는 곡명에 그 곡을 떠올리고 작품속에 그 곡의 느낌을 받는 사람이 아닌지라, 난 싫다. 그의 작품을 향유할 사람은 따로 있다. 그래서 난 그게 싫다. 내가 모르는 곡들, 그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작가가 우아한 몸짓으로 일부의 사람들과만 소통하겠다는 태도가 싫다.
게다가 하루키는 쓸데 없이 세세하기도 하다. 여자 작가도 아니면서, 그렇게 세밀하게 묘사한다고 이해가 잘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중을 해친다.
이를 테면 자동차에 대한 설명. 글 속 여자가 차를 끄는데 그에 대한 설명으로 정확한 자동차 이름을 적고, 색상을 적고, 오토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외는 어떤지 뭐 이런 것까지 적는다. 강박증 환자처럼. 그 세세한 설명이 차 주인에 대한 묘사의 일부라면 공감하지만 그게 아니라서. 그의 그런 설명법은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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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에 어떤 교수라는 사람의 추천사가 있다. 실소한다. 추천사에도 어떤 감명을 받았다는 것은 없다. 다만 줄거리 요약이 있을 뿐. 얼마나 할 말이 없으면 추천사에 줄거리 요약만 하고 있겠는가? 추천사라는 것들이 별 볼일 없기 일쑤이면서 내용 정리 일색인 경우도 있지만, 시집도 아니고, 소설에서 이렇게 줄거리 요약만 한 추천사는 처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