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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Kiss&Tell이란 책이 있다.
한국에선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뻔뻔하고 핑크빛이 돌며
사람을 현혹하며, 주변사람들에게 그 책을 읽고 있음이 야유 당하는 제목을 달고 있다.
역자는 원제가 폭로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여튼 알랭드 보통의 그 책은 내게 실망이었다.
내겐 새로울 것 없는 연애의 시작과 끝을 그린 소설.
게다가 그들은 학교에서 철학을 배우지만 우리는 배우지 않는다.
그가 듣는다는 노래조차 문화권이 다른 우리에겐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재미 없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보다 더했다.
내용은 재미 없을 뿐더러, 전직 철학 교사였던 작가가 등장 인물들의 입을 통해
철학적 주제를 읊어대며 잘난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작가가 잘난척 하는 책만큼 재수 없는 책은 없다.
게다가 돈 많고 우아한척 하는 부자들을 비웃으면서
자신이 우아한척 하는 르네 아줌마는 뭔데?
진정한 우아함으로 칭송하던 가정부 아줌마가 즐겨 먹는 쿠키 역시 부잣집에서 나온 거 아냐?
이 이중적인 태도를 아이러니한 일화로 알고 웃으라고?
같은 블랙코미디라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재치가 없는,
마냥 검은 웃음은 시궁창 냄새가 나서 싫다.
이미 이 세상은 썩은내 나고 징글징글한 걸로 충분한데,
책에서 조차 그런 걸로 웃으라고?
그리고 작가가 대단한 삶의 교훈이라도 얻은 듯 늘여 놓은 말들,
나 이미 알고 있거든요?
정말 작가라면, 누구나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일지라도,
새롭게 감동으로 다가오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식인을 그렇게 비웃는 다면,
세상 모든 독자가 르네 아줌마처럼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지만,
지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고,
설령 그렇다 한들 그들이 머리 아프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를 들면 당근이나 피망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의 우수성을 알고 있다.
그것을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잘 먹이는 것이 작가의 힘 아닌가?
작가는 세상을 조롱하는 척하면서
독자를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읽는 당신 이해할 수 있어?
머리 아파하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 있어?
그래서 내가 감춰둔 말랑말랑한 케잌들을 먹을 수 있어?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이런 식 아닌가?
책을 읽는 동안 불유쾌해서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는 거다.
내게 이 책을 빌려준 친구는 이 책이 재미 있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이 책 재미 없다고 하자, 친구 왈, 사실은 나도 재미 없었어.
내가 모르는 말 투성이고, 근데 그래서 의미 있었다고 봐. 이러더라.
친구는 파리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모습을 표현한 부분 등에 밑줄을 그었다.
난 파리도, 그렇게 파리처럼 유리창에 머릴 박는 사람도 비웃지 않는다.
그들을 안쓰러워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