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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시간 기록자들
정재혁 지음 / 꼼지락 / 2020년 11월
평점 :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꽁꽁 묶어두어 해외여행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역사 문제 뿐만 아니라 퇴행적이고 자국민을 기만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정치와 국정운영으로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아주 좋지 않은 일본은,
사이좋은 이웃은 없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미묘한 관계이다.
하지만 나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문화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장인'에 대한 예우와 그들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는
일본의 문화는 멋지다고 생각한다.
무언가가 유행하면 전국에서 비슷비슷한 것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다른 무언가의 유행에 밀려, 스르르- 사라지고 말아버리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일본의 그런 분위기가 부럽기까지 하다.
(한때 줄을 서서 사먹었던 00카스테라, 00버블티, 00찹스테이크 등이 떠오른다)
기본적으로 3대에 걸친, 혹은 100년은 바탕에 깔고 시작한다는 일본의 노포들과
젊은 나이에도 가문의 대를 잇겠다고 수련하고 있는 청춘의 모습들은
장인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문화가 바탕이 되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시 재개발이 일어나면서 원래 있었던 상점이 밀려나고,
유행에 뒤처지거나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매출이 급감하여 폐업을 하게 되고,
땅값이 저렴한 지역에서 애써 일구어 놓은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프랜차이즈점들에게 점령당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목격해서
한국인의 '빨리빨리'와 '(남에게 무엇이든)지기 싫다', '돈 많이 버세요' 정신으로는
진득하고 여유있게 세월이 쌓여가는 것을 지켜봐줄 수 없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도쿄의 시간 기록자들>은 그런 문제가 한국의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통과 장인정신의 일본도, 노포가 많고 오래된 것들을 지켜간다는 도쿄에서도
지난 몇 년동안 기나긴 역사가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도쿄에서도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가 20여개나 벌어지고 있고,
백 년의 역사를 가진 노포 백화점이 문을 닫고,
대를 잇지 못하는 장인들은 가업을 포기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MZ세대는 오랜 수련과 개인적 희생을 더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정재혁은 영화전문지, 여행지, 패션지 기자로 10여년을 근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통신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일본어 프로그램에서 레귤러 패널, 일본문화원 리포터로
일본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비교하며 그 문화의 바탕이 된 사회를 돌아본다.
특히 '지속하는 삶으로서, 이어가는 시간으로서 장인의 오늘이 염려되'는 마음이
이 책의 시작점이라는 부분에서 고목의 옆구리에 솟아난 새싹을 바라보는
연민과 안타까움,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오랜 전통의 '장인다움'이 첨단의 도시에서 어떻게 생존해 나갈 것인지,
대를 이어 공방에서 수련하고 기술을 기예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느림의 시간을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과 '오늘'의 시대에도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인지,
그래서 전통이 살아남아 미래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궁리하고 보살피는 저자의 마음이 도쿄의 젊은 장인들과 연결점을 만들었다.
도시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전통의 시간을 현대적으로 한땀한땀 기록해가는
청춘들의 모습은 얼마 전 재미나게 보았던 드라마를 생각나게 했고,
남들이 안된다고 어려울 거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도
전통과 새로움을 결합시키며 열정과 긍지를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모처럼 마음이 뛰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일본만 부러워할 게 아니었다.
수제 막걸리, 전통 차와 과자, 자개나 나전칠기를 응용한 공예품,
찜질방을 연상하게 하는 개량한복에서 탈피해
멋과 매력이 느껴지는 현대적 감각의 생활 한복과 그에 맞는 패션 소품들,
레트로로 조금씩 시도되고 있는 전통과 현대적 감각 콜라보 등,
우리나라 밀레니얼들의 시도가 무럭무럭 자라 융성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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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