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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 새하얀 밤을 견디게 해준 내 인생의 그림, 화가 그리고 예술에 관하여
이세라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을 정말로 읽기 전까지,
그러니까 책 제목을 읽고, 표지를 보고, 저자의 소개를 읽을 때까지는,
아니, 오히려, 책날개와 띠지에 있는 저자에 대한 정보를 읽었을 때만해도
책에 대한 감흥이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었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편견이 더욱 컸다.
'보여지는 직업'인 방송인, 젊음(1987년생), 여성이라는 요소가 어우러져
책의 저자 이세라님에게 덧씌워지는 편견과 오해로 인한 고민이
'팔자 좋은 사람의 고민'일 수가 없는 이유에 나도 일조한 셈이다.

본인을 소개하며 소설과 시를 질리도록 읽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예고에서는 문예창작을, 대학에서는 국문과에서 시와 소설 비평을 공부하며
식민지문학의 연구자가 되기를 꿈꾸었다던 사람이 졸업 직전에
기상청 기상캐스터로 일하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책을 읽을 수록 느꼈던 것은 저자는 문화콘텐츠에 담긴 '관점'을 해석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즐겨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보도하는 것을 능숙하게 잘 해낸다는 것이다.
단지 짧게 스치듯 지나가는 -그러나 중요한- 기상정보 캐스팅을 하며
쏟아지는 시선과 편견을 감내하던 사람이
오래도록 보고 생각하고 느끼며 감상할 때마다 다른 감정을 전해주는
예술 작품을 보는 관점을 키우고,
자신의 감상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는 '도슨트'의 역할을 잘 해내는 모습은
-그런 의미에서 책도 출간했을테고-
뭐랄까, 헤매고 방황하며 거칠고 차가운 외부에 머무르다
결국엔 스스로 길을 찾아 -혹은 만들어- 남이 아닌 본인이 재미를 느끼며
무엇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에 들어와 있는
편안함을 찾은 것 같아 안심과 대견함을 느끼게 한달까?
그래서 이 책은
예술은 어렵고 재미없을 것이다, 혹은 나와는 상관없는 분야, 같은 선입견으로
감상하려는 시도를 차마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며
인생의 어두운 시간을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방전은 이러했다며
힘과 위로, 혹은 경험을 나누는 고백이자 응원이다.


화가와 작품. 으로 다가오는 미술에서
저자 이세라는 그 미술의 대상/주제의 마음과 상황에 더욱 집중한다.
그래서인지 책에서는 인물화를 꽤 많이 소개하고 있다.
동일한 인물을 다룬 작품의 시간적 변화나 화가의 차이에 따라
보는 '시선'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보여준 뒤,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과 화가, 모델, 주제에 대해 다각적인 정보를 더한다.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다른 예술작품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저자의 시각에서 혹은 책을 읽는 독자의 시각에서도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하나의 작품을 응시하고, 그에 얽힌 스토리를 읽다보면
연상되는 다른 작품과 자신의 인생의 조각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술의 주체가 되고 싶지만 '대상'으로 남기를 강요당하고
그에 대한 해석에 조차도 외면받은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사려깊은 해석과
응원과 용기를 주는 관점과 감상은 책의 저자와 독자라는 거리를 넘어
서로의 '맨얼굴'을 내어 보이며, 공감과 연대의식이 마음 속에 조용히 피어나게 한다.

누군가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선과 색이
'인식과 사고를 확장'하게 되는 새로운 시도로 포착되고
그것이 삶의 궤적을 바꾸게 하는 영향력을 갖게 하는 예술의 힘.
그 힘으로 홀로 웅크리고 버티며 새하얀 밤을 지나 보냈던 사람들의 수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상처가 자기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조금 더 마음이 열리고,
세상의 강하고 빛나는 것들 이외의 것들에게도 연민과 사랑을 품게 되는 세상을
책에서 자주 만나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