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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히사이시 조 지음, 박제이 옮김, 손열음 감수 / 책세상 / 2020년 7월
평점 :
히사이시 조.
1950년 일본 출생.
중국, 대만, 일본,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영화음악가, 피아니스트, 그리고 간간히 지휘도 하는 음악인.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이건 어떨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
<이웃집 토토로>의 '바람이 지나가는 길', '산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생명의 이름'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이 지금처럼 다각적으로 기억되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Gpr_ISfWFsk
이렇게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는데,
마침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라는 책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뻤다.

책의 처음을 여는 그의 말은 지극히 단순하다.
'나는 작곡가이다' p5.
유려하고 화려해서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그의 음악을 생각하면
꽤나 담백하고 수수한 인사처럼 독자에게 건네는 첫마디이다.
아침에는 아무것도 없었어도 저녁이면 새로운 곡이 세상이 탄생하게 하는 일.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되고 싶은 직업으로 히사이시 조는 '작곡'을 말한다.
지금, 여기서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고전과 현대의 음악이 어우러진
평범한 프로그램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
사람들이 음악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끼고,
동시대의 음악을 관객에게 전하고픈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쓴 히사이시 조는,
무언가를 지극히 사랑하고 잘 해내며 더 사랑하고 싶은 사람의 진심이
얼마나 투명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1장 지휘하다
2장 전하다
3장 깨닫다
4장 생각하다
5장 창작하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제목이 마음에 닿았다.
클래식보다는 가요나 팝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히사이시는,
중고등학생 시절 현대음악
(슈토크하우젠, 존 케이지 처럼 음알못에게는 특이한 클래식;;같은)에
빠져서 작곡과에 들어간 이후에도 클래식 음악
(베토벤이나 말러 같은 음알못에게 익숙한 클래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미니멀한 소리, 패턴을 반복하며 조금씩 변형하여 차이를 즐기는 음악을 좋아한
전위음악 작곡가였던 그는, 이론과 논리, 독특한 개념을 세우는 것에 집중하는 작업이
음악을 듣고 즐거워 하는 사람을 놓치고 있다는 회의감이 들어
새로운 길을 찾게 되었다.
그때 그가 '우연히' 만난 사람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영화/애니메이션 음악을 시작한 이후
현악기, 오케스트라를 사용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클래식'한 영화 음악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대학 시절 클래식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ㅎㅎㅎ)

작곡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소리를 만들어 내고 음악을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히사이시 조는 '음악'이라는 세계에 대해 새롭게 경험하고 눈을 떴다고 한다.
방향성을 제시하는, 우수한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능력을 끌어내는,
때로는 더 훌륭한 작품을 위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연주자와 관객을 설득해 내는 지휘자.
악보를 (특히 클래식 악보를) 해석하고 소리로 구현해 낼 때,
때론 원곡의 작곡가의 지시에 반하는 (그 사람이 베토벤일지라도)
결단을 할 수 있는 지휘자.
이런 경험을 통해 머리로만 작곡하여
자신의 음악과 현실의 괴리를 점점 벌리는 것을 경계하고
작곡, 연주, 지휘를 오래도록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 해 나아가며
깊이를 더 해가고 있는 히사이시 조의 노력과 성장(아직도!)을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거장도 색깔이
각기 다른 세계의 오케스트라(혹은 그 나라의 특징)와 만나
같은 기호의 음표이 다른 소리로 표현될 때마다
'음악'이라는 우주의 무궁무진함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것이 신선하고 멋지게 보였다.
이런 저런 경험은 왠만큼 해봤음직한 나이와 경력에도 불구하고
(물론 자기가 쓴 책이니까 주관적인 가감이 아예 없지는 않겠다고 생각해도)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하는 인생의 주제인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생각지도 않게 얻은 보너스는,
유명한 곡들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는 감상팁(!)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최고의 전문가이자 음악 애호가이며
실제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장인인 지휘자로부터!
'해설이 있는 콘서트'처럼 작곡가가 곡을 쓴 이유, 배경, 담은 감정을 비롯하여
그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기교, 연주와 지휘를 할 때 신경쓰는 점들을
지식과 감성을 담뿍 담아 적어놓아 글을 읽고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소개되는 음악을 찾아 듣게 만들었다. ^^

동시대를 함께 사는 대중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히사이시 조.
스스로 뛰어난 연주자이자 지휘자, 작곡자인 그의
음악에 대한 생각과 철학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음악'이라는 세계를 알아가고자 애쓰는 구도자 같은 모습을 통해
거장은 괜히 붙이는 타이틀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