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숲 - 동화와 신화 속에 숨겨진 26가지 생각 씨앗을 찾아서 10대를 위한 생각의 숲 시리즈
브렌던 오도너휴 지음, 허성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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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나 철학자는 그 단어 자체가 왠지 깊이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고요히 사유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철학책이 나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와 신화를 적극적으로 철학의 세계에 활용하고,

아이들을 '철학 탐험대'의 대원으로 임명(!)한 다음,

숲의 길잡이 철학 대장과 함께 모험을 떠나자며 초대한다.


삶에 있어 가치관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사상'이나 '~주의'로 암기식으로 철학을 배우게 되며 

흥미와 관심을 잃어가는 기존의 교육에서 탈피한 시도가 멋지다.


청소년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철학의 즐거움을 느끼게 노력한

저자 브렌던 오도너휴는 아일랜드의 철학 교육자로서,

대학교와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 사람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철학에 도입해서, 청소년 (혹은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할 것이며, 그 근거를 무엇으로 들 것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탐구하도록, 

그리고 자신의 삶에 '질문'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잃지 않도록

철학을 재구성하고 책으로 냈다.


서양 학생에게는(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도 있지만

중국의 노자와 장자 등 동양의 사상도 소개되어 반갑다.

(드디어 그들에게도 동양 철학의 깊이를 느끼게 할 수 있게 되었군 ㅎㅎㅎ)



책 안에 실린 일러스트는 색채감이 풍부하고 깔끔해서 매력적이다.

컨셉 아트같은 일러스트는 재미있는 스토리에 시각적 만족감까지 더해준다.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대부분 겪는 문제와 철학을 부드럽게 연결시킨다.





닭, 소, 돼지고기를 먹는 육식과 채식. 음악과 그림에 대한

철학자들의 얘기와 논리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것이 신기했다.

토론의 주제로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첨예한 대립이 있는 문제도 있지만

우리가 딱히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거나, 이제야 비로소 인식하게 된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을 펼쳐가도록 격려하는 저자는,

철학의 숲을 거닐다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길을 잃는다는 건 곧 길을 알게 된다는 뜻이라는 멋진 말을 해준다. ^^




외부의 문제나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는 철학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철학까지.

26가지의 생각 씨앗이 스토리를 만나 어떻게 철학 숲을 만드는 지 궁금하다면

<철학의 숲>을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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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태 시제 개념을 잡습니다
오석태 지음 / 사람in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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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우리말과 다르니까, 단어만으로는 제대로 된 표현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어려운 '문법'에 한 번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보다.


이 책은 사람in 의 OKer 시리즈로 영어의 수, 태, 시제의 개념을 잡도록 도와준다.

저자 오석태는 영어 콘텐츠 개발 전문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영어의 말과 글을 찾고 익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저자는 

성인 영어 학습지를 개발하고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말에 있어서 수를 민감하게 다루지 않지만

(두서너개, 두어달, 한 두개, 우리 집 처럼 숫자가 우다다- 섞여서 사용되며

 그 말이 혼란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려려니- 하고 넘어간다.)


주어를 1인칭, 2인칭, 3인칭의 단수와 복수로 나누고,

그에 따라서 동사의 수가 결정되며

동사의 수도 동사의 시제에 따라 단수/복수/혹은 원형으로 사용되는 영어는

확실히 한글과는 쓰임과 형식이 다르다.

그래서 문법의 형식과 내용의 이해를 신경쓰며 수, 태, 시제를 정확하게 사용해야

대화하는 사람간에 오해가 없이 올바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Grammar in Use처럼 '수, 태, 시제'에 집중해서 

문장을 확장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시켜준다.

 


<수 태 시제 개념을 잡습니다>는 정독이 필요한 책이다.

그리고 연필과 노트가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그저 눈으로만 읽고 이해한다면 자기의 지식으로 딱- 붙지 않는 기분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한 문장을

수 일치, 태의 전환, 시제 변화의 3가지 코스로 빨래하듯 탈탈 돌리며 ^^

문제집 풀 듯이 이리저리 바꾸다보면

연습과 노력이 배신하지 않는 결과를 조금씩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초에 세운 영어 공부의 꿈이 아직도 조금의 온기를 ㅠㅠ 품고 있다면

그 불씨를 이 책으로 되살려 보면 어떨까? ^^

적어도 수, 태, 시제만큼은 이만큼~ 연습했어! 하는 뿌듯함을 느끼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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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퇴마사 1~3 세트 - 전3권
왕칭촨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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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연휴, 두께만으로도 뿌듯-하고 표지에서 설레며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짜로)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아쉬운

<당나라 퇴마사>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총 3권의 책으로 구성된 당나라 퇴마사는

중국 문학/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이 총집합된

말 그대로 종합세트같은 책입니다.

여러분은 '중드'를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전 1. 장편 (기본 20편은 넘어가는;;;)

2. 무협(과 강렬한 액션신)

3. 화려한 미술(아름다운 의상, 분장, 장소)

그리고 인연이 얽히고 설키며 끝내 가슴 절절한 러브/의리/브로맨스 라인이 펼쳐지는 몰입감 넘치는 이야기.

가 생각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알고도 먹는 그 맛'이라고 어느 먹방에서 봤는데

이 <당나라 퇴마사>가 바로 그런 맛입니다.

일단 배경은 당나라.

문물과 사람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던 그 시절.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운 왕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암투, 배신, 음모가

(그렇죠! 이것이 중드의 매력!!!) 펼쳐지는데,

<당나라 퇴마사>는 거기에 중국 특유의

황홀하고 판타지가 가득한 귀신/퇴마를 얹었습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에서 괴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황실을 지키는 금오위의 관리 원회옥의 아들이며

도교의 대현원관의 수제자인 원승은 (남다른 스펙의 주인공 등장ㅎ)

도술과 지략을 모두 갖춘 엄친아입니다. 그런데 낮은 자존감;;;;

여기서 기존의 중드/ 중국 문학이랑은 조금 차이가 나요.

엄청난 긍정 마인드가 가득한 햇살같은 미남자거나,

내공이 깊지만 병약 지략가, 같은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온화한 성격에 조심스러운 태도가

조용히 사람들을 자기 곁으로 끌어당기는 그런 남자에요.

그래도 주인공은 주인공. 권력(=황실)에 여기저기 연이 닿아있는 원승이

결국엔, 당나라 조정에서 운영하는 퇴마사의 수장이 안 될 수가 없지요.

여기만 보면 완전 판타지지만,

소설의 배경은 실제 당나라 현종이 복위하기까지의 시절을 따온 것이라

현실성이 가미되어 더 흥미진진한 팩션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끕니다.

모후의 위세로 폐위(!)되었다가

모후의 사망 후 간신히 황제에 자리에 오른 중종은,

위태로운 황제 자리를 위협하는 황족,

즉 자신의 가족들과 정치와 목숨을 오가는 정쟁을 벌여야 하는 모습은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 뿐이라는 사상,

황위를 위해서는 가족이고 혈연이고 정이고 다 소용없게 되는 비정함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높여줍니다.

사건은 처음엔 항상 작은 것으로 시작됩니다.

공주의 보물을 훔친 용의자가 감옥에서 탈옥하고 그 사람을 쫓다보니

그림에서 요괴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죽이는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고,

주인공은 주화입마에 빠져, 마음 속의 악귀를 없애지 않으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빠집니다.

하나의 사건은 다음 사건으로 연결되고,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더 큰 사건이 있음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말 그대로, 독자를 끌고 달려나갑니다.



사람들의 탐욕, 질투, 원망, 분노 같은 짙은 색깔의 욕망은

악귀가 움트게 되는 씨앗이 된다는

책 속의 말은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한낱 감정 혹은 목표일 뿐이었던 욕망이,

점차 사람들을 잡아먹는 경우와

귀신이 사람들을 해치는 모습이 절묘하게 얽혀드는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의 판타지의 형태로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표현됩니다.

(개인적으로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부적이 진짜 영화화 되었을 때

어떤 CG로 선보일 지도 기대됩니다)



<당나라 퇴마사>는 중국 웨이보에서 주최한 웨이소설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요.

작가인 왕칭촨은 중국의 무협, 역사, 미스터리 분야 작가로 유명하다고 해요.

실제 역사와 인물을 소설에 녹여내어 독자를 몰입시키고,

묘사 하나하나가 섬세해서 글을 읽은 대로

그 모습이 머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비주얼로 떠올라요.

예전에 무협 장르를 본 다음,

장대함에 압도당해서 쉽사리 중드에 도전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추천한 작품을 달리기 시작했는데,

좀 더 많은 중국 배우를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상 캐스팅 놀이를 하며

더 재밌게 세계관을 상상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당연히 이 책도 '새로운 무협소설의 부활'이라는 평과 함께

독자와 평론가 모두에게 엄청난 인기를 끈 덕분에

판권이 팔려 영화 및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나오면 꼭 찾아볼거에요!

원승과 육충을 어느 배우가 맡을 지 너무너무 궁금해요!!! +ㅁ+



방대한 스토리가 예상되는 두툼한 두께에다 일

거리가 늘어나 신나게 달리지 못해 3권 완독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연휴에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계획 중이에요. ^^

잘 모르는 도술, 중국의 역사를 1차 완독으로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이제는 스토리와 인물의 감정에 집중해서 읽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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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 - 같이는 아니지만 가치 있게 사는
권미주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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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혼은 선택. 이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여성들도 동등하게 교육받고, 직업을 구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는 문이 열리자,

'부부-아이 2명으로 구성된 가족' 이외의 모습을 가진

가족/가정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목에서 '비혼'이 강조되어 보이나,

독자 입장에서 궁금한 것은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에

더 초점이 맞춰서 읽게 되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비혼은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잘 사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혼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 권미주님은

'잘 사는 것'의 정의를 소제목으로 보여준다.

'같이는 아니지만 가치 있게 사는' 이 그것이다.

사람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있을텐데,

개인심리상담가로 살아가는 40대의 작가는

어떤 가치로운 삶을 만들어가는지 알고 싶었다.

20대 중반에 독립을 하고,

30대부터 주로 여성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작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아가 공동체로부터 건강하게 분리되어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우리나라의 모습과

그로 인해 상처받고, 문제가 생기게 되는 사람들의 면면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물론, 작가 자신이 40대 비혼 여성이며,

책을 쓸 때 자신의 에피소드를 주로 들어 이야기해서인지

싱글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겪는

울퉁불퉁한 롤러코스터 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느낌이 강하다.



결혼이나 비혼이나, 결국 '관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맺은 관계에 얼마나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며

끝까지 노력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관계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모조리-는 당연히 아니고

어쩌면 절반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언제쯤 수긍하고 보듬을 수 있는가.를

나의 가족, 친구, 반려동물(혹은 식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맺음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결혼과 비혼을 갈라 각 선택의 우세함을 자랑하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는 바보같음을

애써 탓하지도 않는 모습이 좋았다.

'자고로~'로 시작해서 '~ 다움'을 강요하고 '~해야 한다'로 결론짓는

우리 사회의 강고한 획일주의가

집, 직장, 수입, 인생의 타임라인,

자식 양육(과 교육과 자식의 취업과 결혼과.... 끝없는 인생의 개입),

노후자금, 보험 등등 평생의 계획에 너무너무 많은 간섭을 하게 되는

오지라퍼들을 양성한다는 것에 매우매우매우 공감했다.

다가올 추석도, 누군가에겐 고향에 내려가거나

친지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주 아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사랑과 관심, '남이면 이런 말 하니?' 로 선을 마구 넘나드는 과도한 참견이

개인적인 노력 혹은 자구책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를 좀 더 살기 편하게 만들겠다는 변화와 참여가 되면 좋을텐데.

또.... 정치적인 얘기를 하게 되면 늘(?!) 그렇듯,

명절의 끝자락 말싸움과 다툼으로 이어지겠지;;;;

(그래서 고스톱을 치거나 술 마시며 운동 경기나 보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찾았다! 싶은 것.

사실 자기계발서나 열심히 찾아 읽게 되는 (=결심만큼 실천이 안 되는)

'미니멀리즘' 관련 책을 보아도 인생의 끝, 혹은 '죽음'을 생각해보라는

챕터를 거의 만나게 된다.

작가처럼 매년 신년 다짐을 하듯 유서를 쓰고

마음에 격랑이 일어날 때 다시 꺼내 보면

지금 아등바등하고 속을 끓이는 것이

내 인생 전반을 거쳐 본다면 그럴만한 일인가? 하며 돌아보게 될 것 같다.



작가는 각자의 삶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연대하고 지지하며 살자고 말한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이혼이든 사별이든

삶의 형태가 겉보기에는 어떤 모습이든지간에

결국 자신의 삶은 나와 관계맺은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가치있게 사는 삶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럽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넉넉한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태도를

혼자 또, 더불어 배워가며 사는 것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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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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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기대감을 주는 작가들이 있다.

나의 리스트엔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올라와 있다.


<개미>로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다음, 

그의 상상력이 닿을 다음 지점이 어디인지 궁금했고

엄청나게 치밀하게 쌓아가는 세계관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기대감을 주는 작가라고 해놓고서, 

읽은 작품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도 좀 우습긴 하지만 

'프랑스의 천재 작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초대되어

작가의 작품 말고 작가로서 더욱 노출이 되고난 다음의 기분이 약간.. 뭐랄까...

'너무 유명해지셨군요' 하는 어색함(?!)과 약간의 거리두기? ㅎㅎㅎ


그래서 베르베르가 희곡으로 두번째로 <심판>이라는 작품을 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간>이라는 첫번째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천국에 있는 법정이 배경이고 주인공은 폐암 수술 중 사망한 아나톨이다.

주인공이자 피고인이 된 아나톨, 

그를 변호해서 '다음 생'을 유리하게 이끌어 줄 변호사 카롤린

그렇게 쉽게는 안된다며, 삶을 탈탈 털어내는 검사 베르트랑

그리고 음.... 뭐지? 싶을 정도로 우왕좌왕인 재판장 가브리엘이

이 희곡의 등장인물이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심판>

제1막 : 천국 도착

제2막 : 지난 생의 대차 대조표

제3막: 다음 생을 위한 준비


**지금부터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서양인들에게 '내세'는 곧 천국으로 끝.

다음 생이라는 것, 즉 '환생'의 개념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동양(혹은 불교)의 환생 개념을 적극적으로 끌고 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영화 <신과 함께>가 생각나기도 한다.

(변호사/검사/판사의 느낌으로 망자의 죄를 다루는 법정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품의 여러 매력 중에서 가장 끌리는 것이

독특하고도 구체적이며 치밀하게 짜여진 색다른 세계관인데

그런 측면에서 이번 <심판>은 신기함보다는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것을 메우는 작가의 힘은 바로,

유머러스하고 능청스럽게 현실을 소설 속에 옮겨두는 것.


네 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의 등장인물이 대사를 찰지게 주고 받는 것은

정말 이 책은 무대에서 배우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계를 위해 만들어진

'희곡'이라는 점을 곳곳에서 새삼스레 느끼게 한다.


지금은 피고인으로 심판을 받지만 사실 아나톨은 지상에서 '판사'였다.

아나톨을 두고 비아냥대기도 하며 감정적으로 격돌하는 변호사와 검사인

카롤린과 베르트랑은 전생에 부부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대사에는 오롯이 아나톨만 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아나톨은 마치, 슬램덩크의 '왼손은 거들 뿐' 처럼, 혹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그저 옆에 있을 뿐 -혹은 재료로 사용될 뿐- 전생에서부터 얽혀 온

카롤린과 베르트랑의 앙금과 소회가 담기게 되는데

그것이 또 절묘하게 프랑스 -혹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건드리게 된다.

교육, 결혼 제도, 남자와 여자로 삶을 살아가는 다른 무게감과 경험,

법조계나 의료계에서 사람이 사람처럼 존중받지 못하고 일거리로 전락하는 것,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러나 속을 더 파보면

남이야 어떻든 자기의 편안함과 안위를 위해 모르는 척 했던 이기심 등등


천국의 법정에서 다루는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들을 따라가다보면

점점 몰입하게 되어 재판장 가브리엘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지

흥미진진하게 기다리게 되고야 만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가브리엘.

저자는 가브리엘의 입을 빌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운명과 삶,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기도 한다.


천국의 심판을 받는 영혼이 환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엄청난 임무를 맡고 있는 가브리엘은 <신과 함께>의 염라와는 

조금 다르고 많이 닮았다.


환생은 가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별로 그럴 케이스는 없다는 시니컬함을 품고 

지옥의 평안을 지키는 것과 법도에 맞는 판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근엄한 염라와

피고인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 입장을 고려하며 하나씩 죄의 경중을 따지며

판단하는 와중에도 '미안하지만'과 말줄임표, 작은 목소리를 사용하는

가브리엘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확실히 다르지만,

피고인으로 올라온 영혼에 대한 연민과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달라진다는 희망과 긍정이 가득한 따뜻한(!) 저승의 존재다.

 


책을 읽으면서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천국의 시간에 대해 상상해보게 된다.

물론, 아무도 겪지 않아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천국에서의 심판'이라는 상황을 무대에 올려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도 

자신이 주인공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연극과 다름이 아니며

주인공이 아닌 관객의 입장으로 한 발짝 떨어져 봤을 때,

나름의 이유로 덮어두고 넘어가고 소홀히 했던 삶의 반짝이는 조각들과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야하는 가치를 흐리게 하는 인생의 비루함을 생각하게 만든다.


죄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나 천국의 재판장에서 다루어진 죄들에 대해.

우리는 뭐라고 자신을 변호할 수 있을 것인가?


유쾌하고 즐겁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특히나 타성에 젖어 굴러가던 삶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할 지

다양한 방식과 색깔로 계속 질문을 던지는 베르베르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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