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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평점 :

마사 누스바움이 <타인에 대한 연민>을 쓴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밤에 느꼈던 통렬한 무력감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이 어쩌다 저 지경까지 갔나....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 새로운 쪽팔림을 갱신하는 현재의 미국은,
놀랍게도 그 전 대통령으로는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변화'의 아이콘으로 삼았고,
후임 대통령 후보로는 여성 정치인이 거의 당선이 확실시되던 나라였다.
자신이 당선되면 멕시코와의 국경을 가르는 장벽을 설치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민자들은 다 가난하고, 범죄자들이며, 위대한 미국을 갉아먹는 존재라고 여기고,
대통령직을 걸고 토론하던, 자신을 보좌하던, 혹은 그저 여성인 존재들에게는
혐오와 비아냥, 성폭력과 다름없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민주주의의 대명사 미국에서 정치철학을 하는 마사 누스바움이 느꼈을
절망감, 무력감, 패배감 등은 그리 낯설지 않다.
정말 한끗차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바뀐다는 것을
우리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성별, 나이, 장애, 성적 취향 같이 선택할 수 없는 요소부터
(이미 여기부터 논란 스따뜨. 푸훗....)
종교, 직업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심지어는 사는 곳 혹은 태어난 곳까지
차별과 편가르기는 마음 먹으면 무엇이든 언제든 어떤 이유든 그냥 가능하다.
반면에 그냥 마음 먹으면 차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돌연변이와 인간의 대결을 다루는, 최애 영화 중 하나 <엑스맨>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마사 누스바움의 이야기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정치적 감정'이라는 다소 학문적 용어로 설명되는 두려움에 대한 그의 탐구는
<정치적 감정>, <혐오와 수치심>, <혐오에서 인류애로>의 전작부터
<타인에 대한 연민>까지 꾸준하고도 집요하게 계속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공포를 낳고, 그 공포감을 혐오로 쉽게 치환하는 과정과
혹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주로 돈으로) 그로 인한 불안이 분노와 질투로
-그런데 그것을 내 보이기에는 자신이 너무 치졸해보이니까- 변화하다가
타인에 대한 혐오, 구별짓기, 사회적 분열로 차근차근 성실하게 진행되는 모습을
오래도록 연구해 온 학자가 '연대'와 '연민'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혐오나 염세적인 생각이 충분히 들 것도 같은데
마사 누스바움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쉽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며
특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취약해지고 정치적으로도 혐오의 정서가 깊게 배인
이 시기에 인류 자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그 무엇도 따지지 않는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과 존중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그게 안되어 차별과 혐오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반문이 불퉁하게 나왔지만
저자가 예를 들어 보여주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연대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혹은 다뤄지지- 않았을 뿐,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세상이 미쳐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짐에도
아직 멸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미래에 희망을 품게 만드는 존재들이 바로 '연대'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연대는 상대방이 내 편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부당하게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으며,
혐오에 반대하기 때문에 연대한다는 이유로 가동된다.

그러면서 '역량 접근법'을 소개한다.
모든 시민은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열 가지 역량을 법적, 그리고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공동체와 국가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중 마음에 와 닿았던 것 몇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생명
: 일찍 사망하거나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만큼 초라해지지 않는 상태로
평균수명까지 산다.
4. 감각, 상상, 사고
:기본적인 수학, 과학, 문자 훈련 등의 적절한 교육으로 함양된
인간적인 방식으로 상상하고 사고하고 추론할 수 있다.
5. 감정
:자신 이외의 사람이나 사룸ㄹ에 애착을 갖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들을 아끼고 그들의 부재를 슬퍼한다.
사랑과 슬픔, 갈망과 감사, 정당한 분노를 적절히 경험한다.
8. 인간 이외의 종
:동물과 식물, 자연계에 관심을 갖고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악나다.
9. 놀이
:웃고 놀고 오락 활동을 즐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고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꽃길만을 걷겠다는 잘못된 관념을 치워야 한다.
나에게 닥친 불행과 괴로움이 다른 사람에게도 생기지 않도록
근원을 찾아 고쳐, 원천적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은 품위를 만든다.
희망은 혐오를 멈추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게서 최악보다 최선을 기대하는 영혼의 관대함이 사랑을 지탱한다,
현실 경험이 없는 내성적이고 허약한 철학자가 아닌
세계를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언제나 자신의 행동 이상으로 성장과 변화가 가능한 존재라는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그의 애씀이 책의 곳곳에서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는, 혹은 제목을 보고 펼치기라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는 말한다.
희망은 선택이고 현실적인 습관이라고.
언제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뒤섞여 있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우리의 감정적 상태에 달려있다고.
당신의 선택은 어떤 것인가.
"정말 끔찍해. 형편없어." vs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두려움으로 미래를 기다리기 vs 희망을 품은 채 미래를 맞이하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