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었던 남자
로랑 구넬 지음, 박명숙 옮김 / 열림원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행복하고 싶었던 남자>라는 책 제목을 보고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행복이 뭘까?

더 구체적으로는 "나에게" 행복은 뭘까?


내가 행복하다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 채워져야 하는 내 기준의 조건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 조건들 중에서 괜히 top 5를 만들고, 순위를 올렸다내렸다 해보았다.


책의 맨들맨들하고 파스텔톤의 표지는 어찌보면 '이런 류'의 책에서는 지나치게 평범했다.

뒤에 적힌 말조차도.


"... 이건 앞으로 너 혼자만 간직해야 할 비밀이야. 그게 뭔지 알고 싶니?"

"네."

"앤디, 네가 잘하고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하게 하지 마라.

네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건 네 몫이란다."


이건 다 아는 얘기잖아....


하지만 띠지(이것 또한 참으로 어여쁘다)의 말이 강렬하게 눈길을 끌었다.


위기가 우리의 일상을 침범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의욕을 북돋아줄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엘르 프랑스


책의 저자 로랑 구넬은 철학과 심리학, 자기 계발에 관한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는 직접 미국, 유럽, 아시아를 돌며 현자들과 만나는 여행 속으로 뛰어들어 인간관계 분야의 전문 카운슬러로 일하게 되었고, 이 책이 그의 첫 소설이다. 

원래 제목은 <가고 싶은 길을 가라>였고 이번에 개정되며 <행복하고 싶었던 남자>로 나온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면 각각의 제목에 각각의 이유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프랑스인이고 교사인 남자 줄리앙은 발리 여행을 마치기 전 현자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지갑도 거의 빈 상태에, 특별히 아픈 적도 없을 만큼 건강하고, 현자라 불리는 치료사를 굳이 만날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저 꼭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난 현자 샴탕선생은 매우 강렬한 방법으로 그와의 첫만남을 연다..

바로 엄지와 검지로 왼쪽 새끼발가락을 꼭 쥐어 엄청난 고통을 준 뒤,

"아픈가보군요."

"당신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선생이 발을 놓아주자마자 순식간에 줄리앙은 순식간에 행복한 남자가 되었다.)


과연 이 사람이 현자일까 싶은 불퉁한 마음으로 줄리앙과 샴탕선생은 대화를 시작하고,

독자들은 이들의 대화, 문답을 읽어나가며 

행복이라는 것, 행복을 정의내리고 선택해가는 것들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나 <미움받을 용기>처럼 

줄리앙은 때론 내 마음을 읽는 듯 질문하기도 하고

샴탕선생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언어로 또박또박 내어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경험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되고, 자신의 확신이 현실을 만들어 낸다는 점.

즉, 믿는 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

그리고 믿는 것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지지와 도움, 조언, 만남 등을 청하지 못하면

살아가는 동안 큰 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


은 두고두고 곱씹고 감상할 빅 픽처를 나에게 선사했다. 




특히, 책 중에 나온 거절당하기 미션은 재미있고 흥미로웠지만,

마음이 현실을 만든다는 믿음의 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줬다.


믿기 어렵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남을 도와주고 싶어한고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하며 기대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보니 나도 다른 사람을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때론 무리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 타인에게 거절을 당하고 만다는 얘기는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들에게 갖는 마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름대로 배려랍시고 혹은 선택의 여지를 남겨준답시고 '거절해도 할 수 없지'의 마음을

품었던 것이 결국 거절을 당했을 때 실망과 외로움, 때때로 씁쓸함을 안겨줬던 경험이

책을 읽으며 솔솔 되살아났다.



거짓된 행복을 만들지 말자.

상태가 아닌 조건을 충족시켜 얻는 행복은 탈을 쓴 불행이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함과 불안감을 숨기기 위해

'불행해지지 않기'를 선택하고 그것이 곧 행복인거라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내 안의 부정적인 속삭임, 세상의 눈치를 보는 자기검열.

그것이 바로 나를 행복으로부터 강렬하게 막는 일상에 침범해 있는 위기.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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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책의 앞뒤로 아주, 심금을 울리는 말들의 대잔치다.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포기하고 싶은 순간, 나와 함께 울어준 책!"

"시련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어설픈 위로가 얼마나 폭력처럼 느껴지는지. -신동욱"

"늘 태평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의 밑바닥을 두드려보면

어디에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쓰메 소세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소리도 못 내고 꺽꺽 울어대는 사람에게

"다 안다. 그 속을 누가 알겠어. 사는 게 그렇다. 죽는 게 낫지. 그래도 살아야 되지 않겠나." 

라며 말도 안되는 위로와 그냥 나오는 대로 하시는 말씀을 하실 때.


등을 몇 번씩이나 두드리는 것인지, 쓸어내리는 것인지 모를 투박한 손길로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이랑 대롱대롱 매달린 콧물을 더럽지도 않은지 쓰윽 훔쳐주실 때


오히려 우아앙- 울어버리게 되며 보는 사람, 우는 사람, 위로하는 사람 속이 시원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행복이 나쁜 것이 아닌 것처럼

절망도 나쁜 것이 아니다.

그냥 인생을 살다가, 내가 잘했든 못했든, 그럴 때가 되었든 아니든

운이 좋았든 나빴든, 그저 마주치게 된 시기일 뿐이다.

그 이유를 따져 물어봐야 해결되는 감정도 아니고 (그럴거면 절망이란 단어를 쓰지 않겠지...), 조심한다고 쉽게 건너가거나, 옅게 흐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겪을 만큼 겪고, 누릴 만큼 누리다보면 지나가는 것이 

행복과 절망같다.



내가 절망할 때, 어디선가는 환호와 즐거움이 있을 것이고

내가 기뻐할 때, 어디선가는 슬픔과 절망이 있을 것이다.


절망의 순간. 책을 펼칠 사람이 누가 있으랴마는,

조용히 내 곁에서 존재해왔으나, 기쁘고 즐거웠을 때는 시간과 눈길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위로의 말을 품고 있었던 책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고, 그로부터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이 절망독서라는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다.

그리고 당신이 겪고 있는 다양한 절망이, 이미 지구상의 누군가도 겪었음을 슬며시 알려준다.


- 다자이 오사무와 함께 '기다리기'

- 카프카와 함께 '쓰러진 채로 머물기'

- 도스토엽스키와 함께 '고뇌 속에 틀어박히기'

- 가네코 미스즈와 함께 '외로움을 홀로 견디기'

- 가쓰라 베이초와 함께 '지옥을 돌아다니기'

- <바샤우마상과 빅마우스>와 함께 '꿈을 포기하기'

- 매컬러스와 함께 '쓸쓸한 마음 느끼기'

- 무코다 구니코와 함께 '가족에 대한 절망 맛보기'

- 야마다 다이치와 함께 '삶이라는 슬픔과 마주하기'


당신은 지금 누구와 '함께' 절망의 시기를 걷고 싶은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프고 비참하며 혹독하고 캄캄한 심경을

언어로 풀어내준 작가들의 별빛같은 문장을 골라 가만가만 달래보자.



ps : 번외로 '절망할 때 읽으면 안 되는 책'도 추천(!)해준다. 

     절망의 단계를 넘어선 뒤, 호기심에 꼭 읽어보게끔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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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레이디스 - 혼자인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레베카 트레이스터 지음, 노지양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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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다.

그것도 불과 몇십년 만에, 사회의 근간이라고 생각되었던 대가족 제도도 무너지고 대안으로 떠올라 이상적인 모델로 인식되었던 핵가족 제도도 점차 다양한 형태(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동거 등등)로 변형되는 추세이다.


예전같으면 3n세까지 결혼하지 못한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성들조차

"오죽하면..." "혹시 무슨 문제가..." 라는 시선을 당연히 받고 집안의 근심거리가 되었을테고

4n세까지 아이를 낳지 않은/못한 가정들은 그 가정들대로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입양은 좀 그렇지?" "00-주로 여자-쪽의 문제가 아닐까?" 라는

염려를 동반한 수근거림과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지금도 아주 틀리진 않은 현실이다. 당장 싱글들이 명절때마다 집을 탈출하는 것을 보아라...)


하지만, 산업사회를 거치며 대가족제도가 무너졌듯

정보화 사회에 도시생활이 대도시를 비롯하여 중소도시까지 널리널리 파급된 지금

'혼자' 살아가기에 부족함은 '함께' 살아가기에 부족함보다 과히 적진 않은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레베카 트레이스터는 <뉴욕>매거진 기자이며 <엘르> 객원 에디터로 활동했다.

주로 뉴욕의 신문, 잡지분야의 정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관찰한 여러 칼럼을 발표한 사람으로 현재 미국의 페미니스트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싱글 레이디스>는 미국 각계각층의 100명 이상의 싱글 여성을 인터뷰한 글이다.

1960년대의 29세 이하 미국여성의 기혼율이 60퍼센트였던 데 반해, 현재 20퍼센트만이 기혼 상태라는 상황에서 독립적인 여성 세대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지 역사적, 사회적 자료를 더해 기술한다.


차례 소개

1. 저런 여자를 조심해 : 비혼 공화국의 정치사회적 힘

2. 노처녀에서 비혼까지 : 싱글 여성들의 역사

3. 도시의 성별 : 도시 생활과 여성의 자립

4. 루시퍼 성냥처럼 위험한 것 : 여자들의 우정

5. 나의 고독, 나 자신 : 혼자 있는 시간

6. 가진 여성들 : 일, 돈, 독립성

7. 가난한 여성들 : 성차별과 인종 차별 그리고 빈곤

8. 섹스와 싱글 걸스 : 처녀성 대 난잡함을 넘어

9. 사랑과 결혼 : 싱글 시대의 선택

10. 아이는? 언제쯤? : 홀로 엄마 되기


이 책은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에서 출발하지만 '싱글'의 정의를 단순히 여성으로 한정짓지는 않는다는 데서 '독창적인 목소리'를 들려준다. 

특히, 불평등의 역사가 단순히 남성우월주의, 인종주의, 기존 체제의 변화에 대한 저항감 및 시민의식의 한계가 아닌 '경제적 독립성'의 달성이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지는가로 기인한다고 분석한 점은 매우 동감이다!


결혼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과 안정적인 지위를 

경제적 안정이 깨진 가정에서 '이혼'으로 포기하게 되는 과정과

경제적 안정과 독립성을 갖춘 세대들의 출현으로 변화하는 현실

즉, 1. 성별이나 성정체성, 인종이나 종교로 차별받지 않는 안정적인 일자리로의 진입이 가능해짐     2. 능력으로 고용을 지속하거나 단절되었던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짐

    3. 다양성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핍박하는 것이 줄어든 사회

을 다양한 (100명이 넘은 인터뷰의 진가가 드러난다!)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전개했다.


특히 동성애자 커플들이 합법적인 결혼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고

1인가구가 싱글의 삶에도 결혼한 사람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 및 경제적 혜택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냥 살명 되지 굳이 저렇게까지' '이기적이네. 싫은 건(결혼과 육아로 희생되는 개인적인 자유, 시간/성정체성에 반대하여 기존의 성역할에 적응하거나 숨기고 사는 것 등) 안하려고 하면서 받을 건 다 받으려고 하네'라고 핀잔 듣기 일쑤인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에선

이미 꽤 평등을 이룬 것처럼 보였던 미국도 형편이 우리보다 조금 나을 뿐, 실제론 그리 녹록하지 않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뭐랄까... 착잡한 동지애가 느껴졌달까? 


결국 싱글이든, 기혼이든, 남자든, 여자든, 주류이든 비주류이든

타인의 생명과 자유, 권리와 존엄을 해치지 않는다면 모두 혼자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3가지 권리를 동등하고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생계유지 (교육의 기회, 직업 및 직장) 2. 안정적 주거지 3. 정서적 연대감





1950년데 65세 이상 미국인 열 명 중 한 명이 혼자 살았다. 

오늘날에는 수명이 연장되고, 기존의 기혼상태의 성인도 이혼, 사별등으로

세 명 중 한 명이 혼자 산다고 한다. 


인간이 더 이상 전통적인 가족 단위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의료보험, 가사노동, 돌봄서비스 같은 부분에 공동체적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고, 

시민간의 연대의식이 '생존'을 위해 더욱 강해져야 한다.


책의 뒤편에 있는 말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저 '우리'안에 들어가는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나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상이 알게 하자!

우리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얼마나 센지

우리가 얼마나 즐거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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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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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도 탐험을 떠나는 인간이 있다.

 이것은 내가 어니스트 새클턴과 함께 남극을 탐험한 이야기다."


로 <우리의 남극탐험기>는 시작한다. 

뭔가 좌충우돌이 있을 것 같고, '남극'이라니 시원할 것 같았다.

영국 어니스트와 한국인인 내가 만나 탐험이라니, 문화충돌도 있을 것 같았다.


읽고나니, 나의 "이러지 않을까?"를 신나게 쳐부수며 앞으로 나아가는 책이었다.


중학교때까지 야구를 했던 야구소년 나.

프로야구의 9회말 투아웃에 해당하는 중학교 야구 7회말 투아웃.

프로팀에서 눈독을 들이는 상대투수에게 두 타자가 연속 삼구 삼진을 맞고

이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자기팀 1번 타자가 안타를 친다.

나는 3번 타자.



19세기 영국 군인이자 탐험가, 남극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한 어니스트 섀클턴.

실패했지만 위대하게 여겨지는 그와 미들네임까지 똑같은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씨는 

그러나, 20세기에 태어난 영국남자로, 태어날 때 시력을 잃는 병에 걸려 세상을 본 적 없는

남극 근처는 커녕 밖에 나가는 것도 굳이 좋아하지 않고 탐험은 절대 인생에 없을 사람이었고

51세의 생일날, 일 때문에 한국에 와 있던 너무 바빴던 오후. 숙소를 나오자 소리를 듣는다.

"딱"


지극히 무덤덤한 어투로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이렇게 어이없게 그 인물들이 만나기 시작하며 나도 책에 빠져들었다. 


이 둘은 소설책의 주인공답게 정의롭거나, 사회 비판적이거나, 아님 끝간 데 없이 감정적이지 않다. ^^

그저 각자 자기가 가진 삶이 부족하거나, 뜻하지 않은 행운이 오거나 해도 크게 기뻐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맞춰 살다가 한국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자리를 권하게 되고 통성명을 하게 된 뒤 이런 대화를 한다.


"마침내 만났군요."

"그래, 마침내 우리가 남극으로 떠날 때가 온 거지."


김근우 작가의 이야기 흐름은, 독자의 예상과 호흡을 기분좋게 배신한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이상한 구석이 있고, 예측을 뛰어넘는 말과 행동을 하며

그런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우연과 인연으로 만나서 

책의 절반이 넘어서야 비로소 남극을 탐험하는 이야기.

그렇게 간 남극탐험에서 해방감을 느끼기가 무섭게 자연의 혹독함을 뼈속까지 겪고도 

'포기/굴복은 매너가 아니지'라며 어찌되었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이 이야기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많이 떠오르게 한다.

과학적이거나 영국 특유의 고상한 체 하는 느낌을 빼고, 약간 유쾌한 B급 스타일로 ^^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으며, 

-말하는 젊고 쌩쌩한 아가씨곰이나, 자기랑 이름이 똑같은 예전 사람으로부터 듣는 환청, 고스톱치다가 남극가버리는 것 같은-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어도, '얘기 들어보니까 미친놈이 확실함'이 될 수 도 있지만,

미묘하게 얽히고 설키며 시간과 공간을, (그리고 인간과 동물이라는 종족 마저도)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우습게 넘나들며 때론 불가해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작가마저도 이것은 백일몽에 헛소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미에 적었다.

그만큼 술술 읽히고 ^^, 어이없이 재미나며, 책을 붙잡으면 시공간쯤은 가뿐히 잊게 된다.


tip : 한국의 지하철에서 혹은 시원한 카페에서 읽었더니, 더욱 몰입감이 고조되었다.

     다가올 명절에, 고스톱 치는 친척들 옆에서 읽어도 이런 몰입감이 들까, 궁금증도 일었다. ^^



끝나지 않는다면 시작할 필요도 없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면 시작해야 한다.  p.275


내 탐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만 남극 탐험은 마쳤습니다. 

나는 다른 곳을 탐험할 겁니다. p.283


끝나지 않는다면 시작할 필요도 없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면 시작해야 한다. p.275

내 탐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만 남극 탐험은 마쳤습니다.
나는 다른 곳을 탐험할 겁니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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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피곤한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갈 용기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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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태평하다~

파아란 (그리고 물결도 거의 치지 않는 것 같은) 물 위에 

해먹같이 편안해 보이는 플로팅 튜브 위에서

부담스러운 비키니가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옆에는 읽던 책을 엎어두고 

팔베개를 하고 무심한 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일러스트.


그 옆에

마치 위로하듯, 흰 색으로 박혀있는 글귀


"멈춰 서도 괜찮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이 표지만으로도 이 책을 집어들고 읽고 싶어진다.

특히, 출근을 앞두고 무더위에 잠 못 들고 있을 (게다가 그것이 주말을 지난 월요일밤이라면....)

손에 잡힐 듯 아련하게 멀리 있는 여름 휴가와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을 곳을 열심히 찾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을 도착해서 알게 될 ^^)

여름 휴가 전후로 (나의 부재로 지구의 위기가 닥치거나 적어도 업무에 마비가 올 지도 모르니)

처리해내야 할 일의 목록들이 머리 속에 주르르르륵~ 펼쳐져 있다면 

더더욱 이 책은 집어들고 읽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초조함.

세상이 바라는 생산성을 갖춘 사람이 되지 못하여 점점 도태될 것만 같은 두려움.

나이에 맞는 과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보다 못나 보이는 자괴감.

젊은 날 엄청나게 갈등하고 그것이 아니면 인생이 끝장날 것 처럼 치열하게 살았어도 남은 게 없고 혹은 전혀 그런 삶을 살지 않아 아까운 시간을 무위로 흘려보낸 것 같아 죄책감이 들 때

이 책은 이렇게 묻는다.


"나의 분발은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 추구할 만큼 과연 가치있는 것인가?"


맞다. 이거 인정....

사업장에서 고용주가 직원들을 착취할 때는 저항하면서

왜 자신 스스로를 착취하고 가혹하게 다그치는 것에는 그토록 열정적인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내 삶에 들어와 있거나 아니면 내가 힘겹게 얻어낸 쳇바퀴를 

열정적으로 돌리는 것에서 잠시 내려와 아무것도 하지 않다보면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보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를 나 자체로 보는 것에 좀 더 거리낌없지 않게 되지 않을까?



책 제목은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인데 책을 읽다보면 슬슬 기분이 묘해진다.


자기가 해야할 업무적인 영역에서만 능력을 발휘하도록 셀프 착취 당하다

'나'라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일들 하고 싶어지게 된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인가 싶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고 하면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 부터가 이미 

'이것말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의 시작이었다.

 

자본주의 체계 안에 편입되어 돈으로 사고, 피하고,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조금 귀찮기도 한 몸을 쓰는 일들이 가지고 있는 건강하고 후련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몽글몽글 일어난다.


특히, 운동화빨래 페이지를 읽을 땐, 

학창시절 토요일마다 실내화를 빨며 맡았던 빨래비누 냄새, 조금 따갑기도 했던 비누 거품,

회색이었다가 점점 맑아지는 헹굼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고 할 일이 생겼다.

아마 평생토록 To do list의 첫 줄에 있을, 왠만해서는 '해냈다!'고 지워버리기 어려울 일이다.


타인을 그의 나이, 성별, 지위, 직업, 국적, 외모, 소용, 관계로 보지 않는 것.

나를 나이, 성별, 지위, 직업, 국적, 외모, 소용, 관계로 보지 않는 것.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만의 달력의 새해가

오마르 하이얌의 새해 정의(p.210) 와는 정반대가 될 수 있도록!

그러나 너무 애쓰지 말고, 충분히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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