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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평점 :
"요즘 세상에도 탐험을 떠나는 인간이 있다.
이것은 내가 어니스트 새클턴과 함께 남극을 탐험한 이야기다."
로 <우리의 남극탐험기>는 시작한다.
뭔가 좌충우돌이 있을 것 같고, '남극'이라니 시원할 것 같았다.
영국 어니스트와 한국인인 내가 만나 탐험이라니, 문화충돌도 있을 것 같았다.
읽고나니, 나의 "이러지 않을까?"를 신나게 쳐부수며 앞으로 나아가는 책이었다.
중학교때까지 야구를 했던 야구소년 나.
프로야구의 9회말 투아웃에 해당하는 중학교 야구 7회말 투아웃.
프로팀에서 눈독을 들이는 상대투수에게 두 타자가 연속 삼구 삼진을 맞고
이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자기팀 1번 타자가 안타를 친다.
나는 3번 타자.
19세기 영국 군인이자 탐험가, 남극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한 어니스트 섀클턴.
실패했지만 위대하게 여겨지는 그와 미들네임까지 똑같은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씨는
그러나, 20세기에 태어난 영국남자로, 태어날 때 시력을 잃는 병에 걸려 세상을 본 적 없는
남극 근처는 커녕 밖에 나가는 것도 굳이 좋아하지 않고 탐험은 절대 인생에 없을 사람이었고
51세의 생일날, 일 때문에 한국에 와 있던 너무 바빴던 오후. 숙소를 나오자 소리를 듣는다.
"딱"
지극히 무덤덤한 어투로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이렇게 어이없게 그 인물들이 만나기 시작하며 나도 책에 빠져들었다.
이 둘은 소설책의 주인공답게 정의롭거나, 사회 비판적이거나, 아님 끝간 데 없이 감정적이지 않다. ^^
그저 각자 자기가 가진 삶이 부족하거나, 뜻하지 않은 행운이 오거나 해도 크게 기뻐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맞춰 살다가 한국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자리를 권하게 되고 통성명을 하게 된 뒤 이런 대화를 한다.
"마침내 만났군요."
"그래, 마침내 우리가 남극으로 떠날 때가 온 거지."
김근우 작가의 이야기 흐름은, 독자의 예상과 호흡을 기분좋게 배신한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이상한 구석이 있고, 예측을 뛰어넘는 말과 행동을 하며
그런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우연과 인연으로 만나서
책의 절반이 넘어서야 비로소 남극을 탐험하는 이야기.
그렇게 간 남극탐험에서 해방감을 느끼기가 무섭게 자연의 혹독함을 뼈속까지 겪고도
'포기/굴복은 매너가 아니지'라며 어찌되었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이 이야기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많이 떠오르게 한다.
과학적이거나 영국 특유의 고상한 체 하는 느낌을 빼고, 약간 유쾌한 B급 스타일로 ^^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으며,
-말하는 젊고 쌩쌩한 아가씨곰이나, 자기랑 이름이 똑같은 예전 사람으로부터 듣는 환청, 고스톱치다가 남극가버리는 것 같은-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어도, '얘기 들어보니까 미친놈이 확실함'이 될 수 도 있지만,
미묘하게 얽히고 설키며 시간과 공간을, (그리고 인간과 동물이라는 종족 마저도)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우습게 넘나들며 때론 불가해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작가마저도 이것은 백일몽에 헛소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미에 적었다.
그만큼 술술 읽히고 ^^, 어이없이 재미나며, 책을 붙잡으면 시공간쯤은 가뿐히 잊게 된다.
tip : 한국의 지하철에서 혹은 시원한 카페에서 읽었더니, 더욱 몰입감이 고조되었다.
다가올 명절에, 고스톱 치는 친척들 옆에서 읽어도 이런 몰입감이 들까, 궁금증도 일었다. ^^
끝나지 않는다면 시작할 필요도 없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면 시작해야 한다. p.275
내 탐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만 남극 탐험은 마쳤습니다.
나는 다른 곳을 탐험할 겁니다. p.283
끝나지 않는다면 시작할 필요도 없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면 시작해야 한다. p.275
내 탐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만 남극 탐험은 마쳤습니다. 나는 다른 곳을 탐험할 겁니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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