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말통
김다은 지음 / 상수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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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와 '개나 소나' 같은 말들을 묘하게 섞어 놓은 것 같은 

재미있는 제목의 책 <소통말통>을 읽었다.


책 읽기 전 늘 그렇듯, 표지를 찬찬히 뜯어보며 작가의 의도를 숨은그림 찾기하듯 

셜록이 되어 상상해본다.


유일한 컬러인 빨간 1인용 쇼파에 온 몸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흑백의 청소년.

후드를 푹 눌러 쓰고, 이마를 온통 덮고 있는 탓에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표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배 위에 가지런히 올린 두 손을 보아하니 마냥 반항하는 십대같은 느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흑백의 낙타 한 마리는 소년을 감싸안아주는 듯 사막같은 바닥에 고개를 편안하게 굽혀 누워있고

저멀리 혼자서 꿋꿋이 서 있는 선인장과 산산조각나서 깨어진 접시 하나.


친구없이 혼자인 소년이 소통을 거부하며 고통을 겪다가 회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인가? 


소설의 주인공 문복은 고등학생이다.

문복의 학교 교장선생님은 '소통'을 강조하며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양철통을 학교에 설치하고

반별로 양철통의 이름을 지어보라는 미션을 준다.


문복의 반이 제출한 이름은 '말통' 

교장선생님에게 반장이 얘기한 '말이 잘 통하라'는 의미 뒤에 '말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진짜 뜻은 감춰진다.

이야기의 시작이 '말통' 이름 짓기인 점이 의미심장했다.

그야말로 <소통말통>은 주인공 문복이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말 때문에 고통스러운' 말통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어의 의미를 수집하는 예강과 같은 반인 문복의 장래 희망은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소리'를 만드는 게 어떻게 직업이 되냐고, 변변치 않은 십대 소년의 꿈에 지지를 보내지 않는 부모님과 갈등 중이다.

문복의 꿈이 멋지게 포장될 수 있었던 것은 영어교사 덕분이다.

'소리'를 수집하고 만드는 사람을 '폴리 아티스트' 라고 한다는 설명을 듣고 

문복은 친구들로부터 인정하는 눈빛을 받으며 왠지 자신감을 얻고 부모님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가히 '의미'를 정확히 '소리'로 표현해내는 '소통'으로서의 '말'이 통증이 아닌, 통로로 기능한 덕분이다. 

 

문복과 예강이 속한 연극 동아리에서 학교의 강력한 뜻을 따라 '소통'을 강조하는 연극을 준비하며 

학교와 가정에서 겪는 '소통'때문에 겪게 되는 '말통'들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생생함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작가 김다은 교수가 3년간 학교 현장에서 앙케이트와 대화를 통해 포착해 낸 수고로움 덕분이다.



한참 내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나)가 너무나 많아 

내 속에서의 소통도 어려운 십대들의 답답한 성장통도  

초현실주의 작가 이상의 <오감도>를 차용하여 실감나게 표현하였고



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고 인정하지 않는 어른들, 특히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스스로 단절과 차단을 선택하는 고집스러운 면모를 솔직히 묘사하기도 한다.

나의 반항과 화가 가득했던 십대시절의 한 조각을 보는 듯해서, 이제와 웃음이 나기도 했다. ^^






 

또한 한참 성장해가는 소년 문복의 세상을 보는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어른들이 다다다다- 쏟아내는 주문같은 일상의 잔소리, 혹은 틀을 깨지 말라는 세뇌와 같은 말들에

'왜'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모순과 오류를 찾아내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과 같은 명징한 생각들에

반복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따르는 나의 요즘을 반성해보기도 했다.

 

17마리의 낙타를 3명의 아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수학의 문제풀이로도 익숙하게 접한) 노인의 유언.

그 유언으로 인해 각자의 논리를 들먹이며 싸우게 되는 아들에게 

지나가던 낙타몰이꾼이 주는 연륜있는 해답이었던 18번째 낙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속에 맴돌던 존재가 되었다.


소통이 안되는 문제에 대한 책의 솔루션은 

1. 불통의 사막을 공유의 사막으로 바꾸는 사고의 전환과 

2. 남거나 모자람 없이 제대로 유산을 나눌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


철학적이고 유쾌한 책 <소통말통>에서 찾아낼 말통을 고칠 당신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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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레산드로 다베니아 지음, 이승수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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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쁜 표지로 눈을 잡아채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데 비해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표지로 담담히 세상에 나왔다.


사실 책 읽기보다 책 모으기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은 나는 책 이미지를 처음 봤을 땐

'출판사가 신경 좀 쓰지' 싶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젊은 소설가 알레산드로 다베니아'라는 작가의 소개가 흥미로웠고

책장을 펼쳤을 땐 소박하고 담담한 표지에 담긴 조용하고 호소력 짙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시작은 이와 같다.


"지옥은 뭘까?"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난 지옥을 이렇게 정의한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고통."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난 지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난 지옥에 있다.

-아르튀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지옥을 언급하며 시작하는 이야기는 작가가 겪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빛나는 조상들의 수많은 유적들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나라, 이탈리아.

하지만 관광지를 벗어나 이탈리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남부와 북부의 빈부 격차와 그로 인한 테러,

이 모든 것의 뒤에서 자신들의 이익(돈)을 위해 혼란을 조장하고 키우는 마피아가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마피아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남부 도시 팔레르모의 브란카치오이다.

팔레르모는 항구 도시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남부 시칠리아의 중요한 문화 중심지이다.

하지만 팔레르모 지방의 브란카치오 사람들에게 바다는 그들을 가두는 감옥이고 

그 감옥에서 군림하며 왕처럼 사람들을 다스리는 마피아는 코사 노스트라다.


팔레르모의 가난한 동네 브란카치오에서 더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은 

미혼모, 빈곤한 여인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옥스퍼드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피노 신부의 권유로 잠깐 이곳에 들린 

열 일곱 소년 페데리코는 자신이 살고 있었던 나라의 전혀 몰랐던 면을 알게 된다.

브란카치오와 팔레르모를 나누는 철길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 그는 지금껏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삶으로 들어간다.

터진 입술과 잃어버린 자전거는 그 세계로의 입장료이다.


페데리코는 교육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거리의 지혜를 배우며 생존해 나가는 아이들을 만난다.

진창 같은 삶 속에 있지만 언젠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겠다는 희망을 가진 아이들.

마피아에 희생된 가족때문에 두려움과 슬픔 속에 빠져있는 아이들.

힘과 권력에 충성하는 댓가로 허락받은 한 줌밖에 안되는 우월감에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정부와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페데리코는 루치아를 만나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이곳에 머물며 사랑의 씨앗을 심겠다'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돈 피노 신부의 말처럼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사랑을 느낀 페데리코는 

신부를 도와 마피아가 지배하는 브란카치오의 거리에서 아이들을 빼내기 위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중학교를 만들고, 뛰놀며 아이다운 감성을 키울 수 있는 공원을 만들려 한다.


어두운 현실에 고개를 들고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용기

꿈을 꿀 수 있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다른 사람과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돈 피노 신부가 브란카치오의 아이들에게 심어주고자 했던 것은 큰 것들이 아니었지만

그런 작은 희망이 어둠의 세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무서운 싹이 될 것을 안 마피아는 

신부의 생일에 그를 살해한다.


자신을 죽이러 온 자에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담담히 생명을 내어준 돈 피노 신부의 희생으로

브란카치오 마을은 드디어 조만간 소진되어 없어질 어른들의 세상에서부터 벗어나

돈 피노 신부와 그가 심어준 희망을 마음에 품은 아이들이 만들어나갈 시간을 맞이 한다.



사람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창한 구호나 스쳐가는 위로가 아닌

어둠에서 빛으로 고개를 돌릴 수 있는 희망을 심어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돈 피노 신부는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곧 지옥에 있음을 깨닫고 더 이상 지옥에 머물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자신이 본 아름다움이 더욱 풍성해 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한다.


암울하고 어두운 긴 터널 속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나와 

마침내 화창한 이탈리아의 햇살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 안는 듯 따뜻해지는 소설을 만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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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손정연 지음 / 팜파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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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덜컹-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다.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그래도 되나? 엄마와 거리를 둔다는 말은 언뜻, 배은망덕(?)하게 들리기도 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존재.

나에게 이 세상 누구보다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붓는 존재.

나를 위해 자신을 온통 희생하는 존재.

이거나, 일거라고 생각하는(사회에서 강조되는 '모성애'란 개념을 포함하여) '엄마'의 모습이 한쪽 면이라면 


심리적, 신체적으로의 분리 불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지시

희생에 대한 죄책감과 보상심리, 함께 살면서 배우게 된 행동양식, 생활방식

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는 깊이 박힌 가시처럼 쿡쿡 찌르는 '엄마'의 다른 한 면이다.


이런 양면성의 관계를 한 치의 틈도 없이 꼭 끌어안고 있다보면

그 따스함을 잃기 싫어 아픔을 깊숙이 새겨 상처를 더욱 덧나게 만들고

결국 '애증' '후회'로 너덜거리는 마음만 남게되는 것 같다.


서로를 위해 적당히 거리를 두고, 혼자서도 행복하고 함께여서 애틋한 관계로 만들어 가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해 좋다고 저자 손정연은 이야기한다.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는

파트 1 : 엄마와 나 사이, 우리가 여전히 불편한 이유

        -우리는 조금씩 천천히 어른이 된다

파트 2 :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와의 갈등은 사라질까?

        -상대의 욕구와 감정을 알아차려주는 것

파트 3 : 어두운 기억 속에 엄마가 남아 있을 때 

        -내 불행은 엄마 때문이라는 생각

파트 4 : 나이 들어 간다는 것, 그리고 엄마의 작아지는 뒷모습 

        -가까운 이와의 이별을 대하는 태도


로 구성되어 있다.


매 파트의 시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나 드라마로 연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친정엄마', '디어 마이 프렌즈', '애자' 

열거한 작품들을 본 사람이라면 제목을 머리 속으로 떠올려만 봐도, 

엄마와 딸이 눈물짓고, 소리치고, 원망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안아주는 모습들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심리상담가이자 기업에 출강하는 '인문감성코칭' 전문강사로서 얻게 된 사례들, 자신의 경험들 속에서 엄마와 딸의 '사랑과 전쟁'들을 공유한다.

읽으면서 다들 닮은 듯 다른 듯 비슷한 각자의 실체적 경험들이 떠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는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천방법인 마음습관 실천팁을 제시해준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파트 4가 마음을 움직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의 온 우주였던 부모님의 커다랗고 먼 배경처럼 감싸고 있던 모습이 점차 작아져 내 옆으로 다가오는 것이 슬프고도 애틋해진다.


어렸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엄마의 간섭, 잔소리, 가끔 뜻대로 되지 않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 같은 억울함들도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외로움과 좌절감이 이해가 된다. 

나한텐 늘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처럼 비춰졌던 엄마도, 결국 그 나이를 처음 살아보는 나와 다름없는 서툰 어른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라, 때론 엄마의 지나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쌓인 좌절감과 죄책감의 뫼비우스 띠로 벌컥 화를 내기도 했던 성공적인 분리/독립을 제대로 못한 나의 모습도 인정이 된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강요할 때, 뒤틀어진 진주같이 아름답지만 그로테스크한 상처의 결과물이 생겨버리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이별'과 '죽음', '쇠락'에 대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약한 아이같은 마음, 분리불안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 모르겠는 답답함이 가득하여 이성보다 감정에 더 휩쓸리는 나에게,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을 잘 발견하자는 이 책이 붙잡고 지킬만한 실마리를 제시해 주었다. 


의미치료(logo therapy)로 잘 알려진 빅터 플랭클의 말이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생을 마칠 때까지 각자의 삶에서 순간마다 존재하는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의미'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은 가치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삶을 지켜내는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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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사람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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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펼쳐 읽었을 때, 다시 책날개로 돌아와 작가를 찾아보게 되었다.

아무런 편견없이 책을 읽으면 유럽이나 북미 작가가 쓴 것 같은 배경과 분위기의

이야기였다.


이름만 들어도 낯선 남미 파타고니아의 고원 지대.

끊임없이 휘돌아치는 거친 바람의 존재감이 큰 그 곳.

거기엔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살아가는 가우초 네레오 코르소가 있다.

그는 목장 주인의 딸을 죽인 퓨마의 가죽을 가져다 달라는 의뢰를 받고

사냥에 나섰다가 큰 중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헤메이다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젊은 사형수를 만나게 된다.


'가우초'는 죽을 때도 혼자냐? 는 젊은이의 질문에 노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덟살 때 아버지에 의해 목동으로 팔려간 소년 네레오 코르소.

서러운 처지에 매일 밤 우는 그에게 늙은 가우초는 파타고니아 고원의 전설인

바람을 만드는 남자 '웨나'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외롭고 절망에 빠진 네레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된 웨나.


그날부터 웨나에 대한 동경을 품고 바람을 맞이하던 소년이 열 네살이 되었을 때

실제로 한 줄기 바람을 만들어내는 긴 머리카락의 웨나를 보게 된다.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웨나를 찾으며 듣게 된 비참한 아버지의 최후, 웨나에 대해 관심을 보이다 곧 그 존재를 부정하고 네레오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서서히 영향을 받는 네레오의 여정은 장소와 시간만 다를 뿐, 삶의 목표와 목적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내가 보고 만나는 세상이 달라짐에 따라 방황하고 허무해하다 포기하기도 하는 우리 보통 사람의 삶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많은 공감이 되었다.





성공과 행복, 익숙함과 권태로움, 부유함 속에서 무너지는 치열함.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람을 만드는 원천을 찾기 보다는

바람이 부는 대로 휘날리며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자유와 초월이라는 착각.

마침내,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삶을 관장하는 것이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고 

자기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임을 직면하고 깨닫는 네레오의 내면의 갈등.

이 감정의 여정들이 매우 촘촘하게 짜여져 흥미로웠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마윤제 작가가 파타고니아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우습게도(?) 병 치료를 위해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집어든 잡지 때문이었다.

작가는 독일 <슈테른>지의 기자 폴커 한트로이크가 아르헨티나 남부의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목동들의 일상을 취재한 르포를 읽다 

마주친 한 장의 사진에 강력하게 끌리게 된다.

예순여덟 살의 목동 네레오 코르소가 자신의 오두막 계단에 앉아 

낡은 브라질산 권총을 닦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10년이 지나 새로운 작품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다, 

친구의 부탁을 받아 참석한 종교행사에서 만난 

무언가를 절실하게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다시 네레오 코르소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황량한 고원에서 홀로 오두막에 앉아 

낡은 권총을 닦는 노인의 얼굴위의 행복한 표정의 뒷 이야기를 상상하며 

부르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라는 책과 폴커 한트로이크의 기사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 변주하며 소설을 적어내려갔다고 작가의 글에서 밝힌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세계는 판타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극도로 사실적이지도 않았지만, 매우 설득력있고 몰입하게 만드는 감정적인 깊이를 느끼게 했다.

주인공 네레오 코르소의 일생을 따라가며 운명에 대해, 

그리고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갈구하고 실체를 잡아보려는 노력에 대해, 

삶의 여정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과의 인연과 그것이 남기는 흔적에 대해,

죽음을 앞두고 마침내 질문하던 것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고 깨닫는 과정에 대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같은 느낌(?) 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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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역사 건축으로 읽는 역사 - 개념 청소년을 위한 역사 마주하기
시대역사연구소 지음 / 시대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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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가장 진실한 시대의 기록이다.

그림 속에 숨겨진 사회 현실을 파악한다면 

승자에 의해 쓰인 왜곡된 역사가 아닌

진실한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건물은 역사의 부분이고 과정이며 미래다.

건축이 품은 시`공간, 

그리고 그 안에 펼쳐졌던 사건들을 이해한다면 

살아 있는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개념 청소년을 위한 역사 마주하기'를 모토로 시대역사연구소에서 펴낸 책이

<그림으로 읽는 역사 건축으로 읽는 역사>이다.


어려운 양식과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하기 보다는

시선을 빼앗는 흥미로운 그림과 건축물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그 그림과 건축물 속에 숨은 시대의 '원인-과정-결과'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선보여 흥미로웠다. 

따라서 목차의 소개도 건축물이 아닌 주제가 먼저 제시된다.


1부. 그림으로 읽는 역사


2부. 건축으로 읽는 역사


그 시대의 사람들이 향유했던 그림을 통해 시대상을 읽어보는 1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얼마 전 영화로 개봉한 <튤립피버>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튤립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국화, 라는 것만 알았을 뿐 '튤립'에 얽힌 사람들의 투자와 도박을 넘나드는 탐욕과 광기는 모르고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튤립을 재배하고 사고팔며, 말을 타고 음식을 먹는 존재들은 모두 원숭이다.

이 작품은 얀 브뤼헬 2세의 '튤립광기에 대한 풍자'로 그는 튤립 투기자들을 우스꽝스러운 원숭이에 빗대어 표현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된 튤립의 색깔에 따라 높은 값을 받고, 

어떤 색이 나올 지 모르는 구근을 사고팔며 도박과 투자를 하다 

인생을 망치거나 이용당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튤립으로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에 돈을 빌리거나 훔쳐서라도

시장에 참가하는 일반 서민, 농민들이 거래한 것은 실체를 가진 튤립이 아니었다.


그들은 튤립 구근을 표준화시켜 은행권이나 주식처럼 취급하여

여름에만 채취할 수 있는 튤립 구근을 1년 내내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선물거래이다. 

이쯤에서 현재의 비트코인, 선물거래시장, 주식시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1673년 대부분의 투기꾼들이 만기에도 튤립 구근을 갖고 있지 않아 거래가 성사되지 않고, 어음은 부도가 나고, 막대한 채무를 떠안은 3000명의 사람들은 도주해버린 혼란의 네덜란드.


이런 인간의 탐욕은  여러 나라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자료로 보여준다.


과거의 일을 박제처럼 그림에 담은 것이 현재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눈으로 보면 마음에 남는 감상과 영향력이 확실히 다르다.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켜온 과정, 사회구조의 변화, 권력의 형성과정을 

드러낸 2부 건축의 역사는 특히, 방학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가기 전 꼭 한번 읽기를 권하고 싶다.


막상 현지에 가면 바글바글한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스르륵 지나치고야 마는 위대한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시야가 닫지 않은 곳에 있는 스테인리스, 조각상 같은 작품들까지 또렷하고 선명하고 크게 감상할 수 있다.




사진으로 찍어서 여행지에 가면 한 눈에 역사의 흐름/변천사를 알 수 있도록

보기 좋게 정리해둔 연대표도 매우 유용할 듯!!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여 쉽게 읽히지만 속에 담긴 내용만큼은 깊은 

인문학+예술의 콜라보 <그림으로 읽는 역사 건축으로 읽는 역사>


영화, 책, 그림, 건축에서 산발적으로 알아왔던 지식의 퍼즐들을

한데 엮어 맥락화하기에 정말 좋은 책을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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