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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말통
김다은 지음 / 상수리 / 2017년 11월
평점 :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와 '개나 소나' 같은 말들을 묘하게 섞어 놓은 것 같은
재미있는 제목의 책 <소통말통>을 읽었다.
책 읽기 전 늘 그렇듯, 표지를 찬찬히 뜯어보며 작가의 의도를 숨은그림 찾기하듯
셜록이 되어 상상해본다.
유일한 컬러인 빨간 1인용 쇼파에 온 몸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흑백의 청소년.
후드를 푹 눌러 쓰고, 이마를 온통 덮고 있는 탓에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표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배 위에 가지런히 올린 두 손을 보아하니 마냥 반항하는 십대같은 느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흑백의 낙타 한 마리는 소년을 감싸안아주는 듯 사막같은 바닥에 고개를 편안하게 굽혀 누워있고
저멀리 혼자서 꿋꿋이 서 있는 선인장과 산산조각나서 깨어진 접시 하나.
친구없이 혼자인 소년이 소통을 거부하며 고통을 겪다가 회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인가?
소설의 주인공 문복은 고등학생이다.
문복의 학교 교장선생님은 '소통'을 강조하며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양철통을 학교에 설치하고
반별로 양철통의 이름을 지어보라는 미션을 준다.
문복의 반이 제출한 이름은 '말통'
교장선생님에게 반장이 얘기한 '말이 잘 통하라'는 의미 뒤에 '말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진짜 뜻은 감춰진다.
이야기의 시작이 '말통' 이름 짓기인 점이 의미심장했다.
그야말로 <소통말통>은 주인공 문복이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말 때문에 고통스러운' 말통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어의 의미를 수집하는 예강과 같은 반인 문복의 장래 희망은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소리'를 만드는 게 어떻게 직업이 되냐고, 변변치 않은 십대 소년의 꿈에 지지를 보내지 않는 부모님과 갈등 중이다.
문복의 꿈이 멋지게 포장될 수 있었던 것은 영어교사 덕분이다.
'소리'를 수집하고 만드는 사람을 '폴리 아티스트' 라고 한다는 설명을 듣고
문복은 친구들로부터 인정하는 눈빛을 받으며 왠지 자신감을 얻고 부모님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가히 '의미'를 정확히 '소리'로 표현해내는 '소통'으로서의 '말'이 통증이 아닌, 통로로 기능한 덕분이다.
문복과 예강이 속한 연극 동아리에서 학교의 강력한 뜻을 따라 '소통'을 강조하는 연극을 준비하며
학교와 가정에서 겪는 '소통'때문에 겪게 되는 '말통'들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생생함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작가 김다은 교수가 3년간 학교 현장에서 앙케이트와 대화를 통해 포착해 낸 수고로움 덕분이다.

한참 내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나)가 너무나 많아
내 속에서의 소통도 어려운 십대들의 답답한 성장통도
초현실주의 작가 이상의 <오감도>를 차용하여 실감나게 표현하였고

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고 인정하지 않는 어른들, 특히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스스로 단절과 차단을 선택하는 고집스러운 면모를 솔직히 묘사하기도 한다.
나의 반항과 화가 가득했던 십대시절의 한 조각을 보는 듯해서, 이제와 웃음이 나기도 했다. ^^


또한 한참 성장해가는 소년 문복의 세상을 보는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어른들이 다다다다- 쏟아내는 주문같은 일상의 잔소리, 혹은 틀을 깨지 말라는 세뇌와 같은 말들에
'왜'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모순과 오류를 찾아내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과 같은 명징한 생각들에
반복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따르는 나의 요즘을 반성해보기도 했다.

17마리의 낙타를 3명의 아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수학의 문제풀이로도 익숙하게 접한) 노인의 유언.
그 유언으로 인해 각자의 논리를 들먹이며 싸우게 되는 아들에게
지나가던 낙타몰이꾼이 주는 연륜있는 해답이었던 18번째 낙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속에 맴돌던 존재가 되었다.
소통이 안되는 문제에 대한 책의 솔루션은
1. 불통의 사막을 공유의 사막으로 바꾸는 사고의 전환과
2. 남거나 모자람 없이 제대로 유산을 나눌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
철학적이고 유쾌한 책 <소통말통>에서 찾아낼 말통을 고칠 당신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