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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손정연 지음 / 팜파스 / 2017년 12월
평점 :

제목을 보면 덜컹-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다.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그래도 되나? 엄마와 거리를 둔다는 말은 언뜻, 배은망덕(?)하게 들리기도 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존재.
나에게 이 세상 누구보다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붓는 존재.
나를 위해 자신을 온통 희생하는 존재.
이거나, 일거라고 생각하는(사회에서 강조되는 '모성애'란 개념을 포함하여) '엄마'의 모습이 한쪽 면이라면
심리적, 신체적으로의 분리 불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지시
희생에 대한 죄책감과 보상심리, 함께 살면서 배우게 된 행동양식, 생활방식
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는 깊이 박힌 가시처럼 쿡쿡 찌르는 '엄마'의 다른 한 면이다.
이런 양면성의 관계를 한 치의 틈도 없이 꼭 끌어안고 있다보면
그 따스함을 잃기 싫어 아픔을 깊숙이 새겨 상처를 더욱 덧나게 만들고
결국 '애증' '후회'로 너덜거리는 마음만 남게되는 것 같다.
서로를 위해 적당히 거리를 두고, 혼자서도 행복하고 함께여서 애틋한 관계로 만들어 가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해 좋다고 저자 손정연은 이야기한다.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는
파트 1 : 엄마와 나 사이, 우리가 여전히 불편한 이유
-우리는 조금씩 천천히 어른이 된다
파트 2 :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와의 갈등은 사라질까?
-상대의 욕구와 감정을 알아차려주는 것
파트 3 : 어두운 기억 속에 엄마가 남아 있을 때
-내 불행은 엄마 때문이라는 생각
파트 4 : 나이 들어 간다는 것, 그리고 엄마의 작아지는 뒷모습
-가까운 이와의 이별을 대하는 태도
로 구성되어 있다.
매 파트의 시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나 드라마로 연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친정엄마', '디어 마이 프렌즈', '애자'
열거한 작품들을 본 사람이라면 제목을 머리 속으로 떠올려만 봐도,
엄마와 딸이 눈물짓고, 소리치고, 원망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안아주는 모습들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심리상담가이자 기업에 출강하는 '인문감성코칭' 전문강사로서 얻게 된 사례들, 자신의 경험들 속에서 엄마와 딸의 '사랑과 전쟁'들을 공유한다.
읽으면서 다들 닮은 듯 다른 듯 비슷한 각자의 실체적 경험들이 떠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는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천방법인 마음습관 실천팁을 제시해준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파트 4가 마음을 움직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의 온 우주였던 부모님의 커다랗고 먼 배경처럼 감싸고 있던 모습이 점차 작아져 내 옆으로 다가오는 것이 슬프고도 애틋해진다.
어렸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엄마의 간섭, 잔소리, 가끔 뜻대로 되지 않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 같은 억울함들도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외로움과 좌절감이 이해가 된다.
나한텐 늘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처럼 비춰졌던 엄마도, 결국 그 나이를 처음 살아보는 나와 다름없는 서툰 어른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라, 때론 엄마의 지나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쌓인 좌절감과 죄책감의 뫼비우스 띠로 벌컥 화를 내기도 했던 성공적인 분리/독립을 제대로 못한 나의 모습도 인정이 된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강요할 때, 뒤틀어진 진주같이 아름답지만 그로테스크한 상처의 결과물이 생겨버리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이별'과 '죽음', '쇠락'에 대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약한 아이같은 마음, 분리불안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 모르겠는 답답함이 가득하여 이성보다 감정에 더 휩쓸리는 나에게,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을 잘 발견하자는 이 책이 붙잡고 지킬만한 실마리를 제시해 주었다.
의미치료(logo therapy)로 잘 알려진 빅터 플랭클의 말이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생을 마칠 때까지 각자의 삶에서 순간마다 존재하는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의미'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은 가치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삶을 지켜내는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