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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전 세계 학습혁명 현장을 찾아 나선 글로벌 탐사기
알렉스 비어드 지음, 신동숙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4차 산업혁명'은 이제 익숙하게 된 말이고 어디에서나 써먹는 말이 되었지만
과연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예전 기계가 노예/인력의 대부분을 대체한 것처럼
이젠 훨씬 복잡해지고 고도화된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였고
지금 존재하는 직업의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협감이 드는 정도이고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지 (혹은 이미 어느정도까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책의 내용이 궁금했다.
이 책은 남들보다 1등급이라도 앞서기 위해 어떤 학습법이 적용되는지
아니면 유난히 선행학습을 시키는 학부모들의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지에
관한 책이 아니다.
꽤나 두꺼운 (558페이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기 어렵지 않았던 것은
이것은 비단 '아이들'에 관련된 책이 아니라는 점과
다양한 형태의 학습이 평생에 걸쳐 일어나야 하는 점,
왜 인간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고민할 질문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 뿐 아니라,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지
그리고 그 시대를 맞아 낙오되지 않고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할 지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읽어볼 만한 내용이 실하게 담겨있다.
저자는 영어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10년간 교육계에 몸 담은 사람이다.
전 세계 중에서 교육에 관심이 높거나, 교육에서의 스타트업을 이룬 나라들을
직접 누비면서 교육 전문가 10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21세기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모색한다.

특히, 현재 취학아동들을 두고 있는 부모 세대라면
본인들이 받았던 교육과 현재 아이들이 받고 있는 교육의 변화를
확실히 느끼며 놀라워하거나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고
교육이 단지 교육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 어려운 교육의 시기를 현명하게 넘어가서
준비된 모습으로 사회에 나오기를 바랄 것이다.
아니, 최소한 어려움 앞에 좌절과 포기로 인생의 시간을 허망하게 보내지 않길
무엇보다도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소위 '라떼충'이나 '꼰대'소리를 듣는 어른 세대가 하기에 가장 어려운 일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가성비를 운운하고 효율성을 강조하며,
한 번 벌어진 격차를 메우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상,
나의 아이는 인생의 쓴맛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내려놓고
담대한 마음으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시도하고 도전하고 성장하기를
기다려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부모인 나는 기다려줄 수 있지만, 톱니바퀴처럼 착실히 돌아가는
학교와 사회라는 시스템과 '00는 00해야 한다'라는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나의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부모나 학교만 바뀌어서는 '어떻게 배우는가'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이지만,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여유롭게 대처해야한다.
인간과 기계의 하이브리드 시대이다.
로봇 교사, 인터넷 학습, 온라인 러닝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정말 '인간' 교사는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인가?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단지 직업적 의미의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새롭게 생각하고, 더 잘하고, 더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교사'로서의
어른들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인간의 배움에는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뇌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는 동기, 능력, 자극의 균형을 맞추어 아이들이 행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학습과 경험을 다양하게 하여 지능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자극적인 요소들에 막혀 보이지 않는 '학습'의 재미없음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관심과 참여를 유발하고 창의력과 체계성을 갖추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사실, 이미 익숙한 표현들이어서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뉴욕, 런던, 파리, 헬싱키, 서울, 홍콩 등에서 건져올린
인터뷰와 사례연구/조사에 있다.
기존에 '선진국' 교육이 보다 자유롭고 허용적일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완전히 뒤집은 사례는 영국의 KSA 소개였다.
영국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인 KSA에서
학생들 대다수가 무상급식 대상자일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렵고
입학하는 11세 학생들의 평균보다 뒤떨어졌던 읽기와 쓰기 실력이
학교에서 배운 5년 동안 현격하게 증가한 결과를 가능하게 한
하이멘도르프 교장은 고작 30대 중반에 이른 사람이다.
그는 학생 모두를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우리나라에서 했으면 비난받았을) 단순한 목표에서 출발하여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역시 난리가 났을) 추가 학습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규 수업시간을 오전 7시 25분부터 오후 5시까지로 확대했다.
여름 방학에도 2주를 더 공부하고,
방학기간의 매일 저녁 2시간씩 숙제를 시켰다.
폭넓은 교육보다 깊이 있는 교육을 강조해서
'수학'과 '국어(즉 영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학생들의 공부 근육을 발달시키고 흥미를 강화하고
집중력과 인내심을 키우며 서로를 칭찬하며 예의를 갖춰 대하도록
따뜻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을 두고 생활하도록 했고,
학생들에게 엄청나게 높은 기대치를 적용했다.
매년 새로 입학하는 학생의 수가 60명에 불과하고
교사들이 특정 학년을 도맡아 가르쳐서
아이들과의 관계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우리나라와 혹은 다른 국가의 일반적인 학교와도
매우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어느 나라의 어느 교육이나 장점과 단점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다양한 교육적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을 얼마나 허용하느냐에
학습/배움/가르침의 질적 양적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마냥 비판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이 어느 나라 (미국같은)에서는
선진적이고 아이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학습 방식이라고 권장되기도 하고
창의성을 키워주고 자유를 강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의 교육이
오히려 학생에게 한계까지 가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도록
더 빡빡하게(!) 요구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차이에도 공통으로 수렴되는 '학습혁명'의 원칙은 있었다.
1. 평생 배운다.
2. 비판적으로 사고한다.
3. 창의성을 발휘한다.
4. 품성을 개발한다.
5. 일찍 시작한다. (조기교육이 아닌 유아기 교육.이지만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6. 협력을 강화한다.
7. 가르치는 연습을 한다.
8.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한다.
9. 스스로 미래를 건설한다.
교육의 미래는 학교, 교사, 교육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시스템을 이루는 것은 사람들의 관계이고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 공동의 의견을 반드시 모아,
목표와 성취방법을 바꾸려는 합의, 집단 지능/지성을 이뤄야 한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거다'라고 짚어주지 않는다.
좋은 예를 제시하며 따라하라고, 정답이 여기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에 대해
조금 더 엣지있게 각을 잡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그 합의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변화하고 행동하라고 촉구한다.
결국,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도록 끝까지 지킬 수 있는 힘은 '교육'이며
그것은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과 힘'을 키워주는 인류의 소중한 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