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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 가게에 갈까? - 헬싱키 중고 가게, 빈티지 상점, 벼룩시장에서 찾은 소비와 환경의 의미
박현선 지음 / 헤이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북유럽 스타일.
단어만 봐도 느껴지는 깔끔함과 소박함.
자연을 품어낸 정갈한 디자인과 손때가 묻어 정감가는 물건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욕심이나 허영이 덕지덕지 쌓여있는 과도한 장식도 없고
왠지 어린 날의 추억을 소환하는 귀엽고도 향수어린 생활용품들이
소위 말하는 '스칸디나비아' / 북유럽 스타일이다.
오래 써도 싫증나지 않는 제품.
시간과 그에 따른 이야기가 더해질 수록 귀하게 여겨지는 제품.
"이건 말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 같은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없으면 아쉬울 것 같은 제품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비결은 뭘까?
그것은 가성비, 빠름, 트렌드, 편리함, 유행, 얼리 어답터 같은 말이 어색하지 않은 나라와
비싼 공산품, 쉼, 인건비, 유지비, 다소 불친절한 고객 서비스가 어색하지 않은 나라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 명확해진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서울과 비교했을 때, 인구밀도가 낮은 작은 수도이다.
도심 구석구석에 숲이 존재하며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공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와 접해있어 자연과 마주치는 기회와 시간이 훨씬 많다.
에어컨으로 습도와 온도가 조절되는 실내에 앉아서 "와- 아름답다!"하고 감상하거나
잠시 자연 속에 머물러 있을 지언정 문명의 이기(톱밥을 덮어야 하는 화장실이라니!!!)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어야 '힐링'이 되는 나에게
이국적인 낭만을 걷어낸 핀란드는 다소, 의외였다.
그런 자연의 불편함과 자발적 고립을 기꺼이 즐기는 나라이기 때문에
마냥 편안하고 새 것을 누리다 질리면 버리는 사치를 비정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 아닐까?
자연의 (너무나 당연한) 불편함까지도 소중히 생각하는 핀란드의 정신은
인간의 소비를 되돌아보게 하고,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오래도록 튼튼하게 쓸 수 있는 물건, 싫증이 쉽게 나지 않는 물건,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잊지 않게 만드는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고, 소비하는
그들의 생활에는 고민과 철학이 담겨있고, 행동과 실천으로 생명력을 갖는다.

물론 핀란드 사람이라고 모두가 중고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중고'에 대한 생각과는 결이 다른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중고가 '힙'하거나 '앤틱'한 가치를 소비하는 층과
'저렴하게 -그래서 좋은 것을 사기 전까지 쓰고 말- 물건을 얻는' 층으로 거칠게 나눈다면
핀란드의 중고는 시간을 뒤죽박죽 섞어서 자기를 표현하는 개성과 취향을 소비하고
인건비가 비싸 애초에 물건에 수선이 필요 없거나 최소한만 들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고
언제든 벼룩시장을 열어 주민이나 시민이 주체가 되어 일종의 축제처럼 만나는 '장'이 된다.
집 정리를 위해 판매에 참여하여 아이들이 자라거나, 생활의 패턴이 바뀌어
나에게는 쓸모없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제품들을 취향에 맞는 사람들끼리 사고파는
일종의 '동호회'같은 느낌이랄까?

그저 필요한 물건을 값싸게 획득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중고상점이 아니라
누군가가 애정하였던 물건, 현재까지 있는 브랜드의 오래된 디자인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중고 상점에서 패스트-트렌드로 망가지는 환경을 보호하며
유럽의 새로운 이슈인 난민을 돕거나 혹은 난민이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자립하는 계기,
혹은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실천으로 옮기는 기회가 되는
중고 장터 행사로까지 뻗어나가는 필란드의 중고 가게/행사/시장에 대해 읽다보니
뭉클한 감정까지 든다.
그저 트렌드로 소비되는 북유럽 스타일이 아닌 철학과 가치를 가진 소비를 지향하는 문화가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사실 우리나라도 오래도록 그런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소중히 아껴쓰고 보관하며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그에 얽힌 이야기와 가치를 전달해주는 문화.
친척이나 동네 이웃끼리 아이들의 작아진 옷,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책을
명절이나 때마다 바리바리 싸와서 나누어 가지던 문화.
함부로 버리면 죄 된다, 하며 수리하고 고쳐쓰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던 모습들은
북유럽의 그네들만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북유럽 스타일의 물건을 잔뜩- 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로 펼쳤다가
제품과 물건을 보는 즐거움에 더해, 곰곰히 생각하고 내 주변을 돌아보게까지 만드는
단순하고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책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당신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소비를 할 것인가?
당신의 소비로 어떤 가치를 세상에 전달할 것인가?
지금 당장,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하는 준비에 바쁜 이 때,
쉼표처럼 다가오고 느낌표를 남기고 떠나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