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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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많이 만난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어쩌면 지극히 일부분이었음에도, 각인된 이미지로 남아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든 괴물의 고통과 고뇌를 더 깊게, 그리고 더 오래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허밍버드 출판사의 고전시리즈, ‘허밍버드 클래식M’에서 만난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뇌리에 꽂히는 

첫모습에 가려진, -혹은 그래서 뒤까지 찬찬히 읽지 못한- ‘혹은 이 시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알려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시작은 다음과 같다. 

‘신이여,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당신께 청했습니까?

 어둠에서 저를 끌어올려 달라고 제가 당신께 애원했습니까?’ <실낙원>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는 서문에서 작품의 탄생 배경을 설명한다.

특히 ‘기껏해야 어린 소녀였던 당신이 어떻게 그토록 흉측한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는가?’ 라는 지극히 무례한 -그리고 숱하게 받아왔던- 질문에

1. 저명한 두 작가의 딸인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 어렸을 때부터, 놀이시간에 가장 즐기던 일도 글쓰기와 몽상하기였다.

3. 나라는 존재에 구애받는 대신, 당시 내게 직접 느끼는 감정보다 더 흥미롭고 요소로

   이야기를 채우며, 가상의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구성하는 식으로 허공에 성을 지어갔다.


이미 메리 셸리는 시대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평가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에게 글쓰기란, 숨쉬는 해왔던 일이자 놀이이며 사고의 유희임을 분명히 밝혔다.

여자나 소녀에게 요구되던 사랑스러움, 낭만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재단하고 제한짓지 말기를

어쩌면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문단으로 데뷔하기를 보채던 남편과, 스위스를 방문해 어울린 바이건 작가를 만나

흐리고 눅눅한 날씨에 며칠이나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자

각자 괴담을 써 보고 나누어 보기로 하자는 제안을 수락한 다음 탄생한 작품이 <프랑켄슈타인>이다.

-참고로 갑자기 날씨가 화창해지면서, 제안을 수락했던 다른 두 명은 알프스로 여행을 떠났고

 오로지, 완성된 것은 이 작품 뿐이란다. -


이렇게 무책임하고, 즉흥적인데다가, 편견을 가지고 누군가를 판단하고 차별하는 것이

고스란히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필연적으로 그가 만들어 낸 ‘괴물’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태로 세상에 불려와, 버려지고 냉대받은 뒤 분노를 폭발시켜

공포감을 주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이끌었다.



작가가 이 소설을 고안할 때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일어날 때였고

과학자, 의사들은 지금까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던 ‘생명’에 가장 가깝게 도달했다는

생각에 고취되어 스스로 창조주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낯설지 않은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놀랄 만큼 발달한 과학기술, 통신기술과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과 

그와 함께 변화의 문턱을 힘겹게 넘는 가치관, 윤리의식까지

그야말로 혼돈의 세계에서 인간/기계/신이 각각의 투쟁 단계에 접어든 것이 요즘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시체의 조각들을 기워서 괴물을 만들어 놓고선

자신이 이룬 업적에 도취되어 한껏 고양되었다가

그 괴물이 흉측하고 야만적인 부분은 감당할 수 없어 버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자기 변호를 읽다보면, 괴물의 처지에 공감이 가게 된다.

시작에 등장한 <실낙원>의 문구가 그대로 그의 절규를 대신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박사와 괴물과의 관계가, 신과 인간과의 관계와도 중첩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까지 미치게 되면

고전이 왜 고전이지 무릎을 탁- 치면서 느끼게 된다.


뮤지컬, 오페라, 영화의 원작소설을 찾아, 현대적 감각의 표지와 매끈한 번역으로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허밍버드의 클래식M 시리즈는,

확실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워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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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오래 바라보았다 K-포엣 시리즈 10
이영광 지음, 지영실.다니엘 토드 파커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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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포엣 시리즈를 좋아한다.

어쩌면 버리지 못한 영어에의 미련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동일한 글을 우리 말인 한글과 남의 말인 영어로 읽는 기분은 묘하다.

내가 이해한 것을 언어를 바꿨을 뿐인데, 

다르게 다가온다는 그 낯섬과 그로인한 설렘은

그래서 이 시리즈의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눈여겨 보게 만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번에 나온 작품은 이영광 시인의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 이다.

해를 오래 바라본 사람이 가지는 눈부심, 몽롱함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동공에 남은 잔상같은 시가 실려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시인이자 교수인 이영광씨가 한글로 쓴 시를

부부 번역가인 지영실씨와 다니엘 토드 파커씨가 번역했다.

한글에서 느껴지는 시의 맛이 영어로는 퍽퍽하게 번역되어 있는 부분도 있고

언어의 묘미를 살리는 것은 어려워 했으나, 

의미가 더욱 큰 반향이 되도록 번역되기도 했다.



시인의 시를 읽고 있으니 갑자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토록 태양이 빛나는 순간을

화폭에 담아두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시 안에서도 이미 지나버린 순간에 대한 애잔함과

앞으로 다가올 순간도 -이렇게 애잔하고 아쉬워 하지만

그렇게 덧없이 사그라들거라는 자조 

혹은 모든 것을 깨달은 사람의 회환이나 내려놓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인 스스로도 "시인은 더 잘 더듬으려고 애쓰는, 이상한 말더듬이다." 라고 하였듯,

모호함 속에서도 모름을 주저하지 않는 우울과 명랑이 알맞게 시즈닝 되어있는 시가

책 곳곳에서 독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저 존재하고 있다.

마치, 페이지를 연 독자가 

무언가를 홀로 하고 있는 사람의 방문을 덜컥- 열어버린 것 처럼,

그래서 어떤 쪽은 "죄송합니다" 하고 화라락- 넘겼다가 

다시 설핏- 열어보게 되는, 그런 묘하고도 잔상처럼 어른어른한 시들을 만났다.


시인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시를 배우고, 쓰고 싶어 오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맞이하게 될 세계에 대해

그 비밀스러움을 이미 경험한 사람으로서 희망과 안스러움을 담은 눈빛을 

조심스레 보내는 마음을 느껴본다.


역시, 시는 읽을 때의 마음과 상황을 리트머스처럼 보여준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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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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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잘 알려진 그리스의 철학자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그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가? 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가 남긴 명언 "네 자신을 알라" 라는 말만 알았지 그 뜻을 깊게 새기지 못한 것도

그 말 하나는 단순히 한 문장이 아니라 자체로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 사고의 과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핵심과 정수라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애초에는 "너는 기껏해야 사멸할 인간임을 명심하라!" (즉 신에게 덤비지 마라) 였던 것이

오히려 '신과 대면하여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회복하라'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의 가장 충실했던 제자이자 버금가게 유명한 플라톤이 기록해서 남겼을 만큼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아무런 책도 쓰지 않았다.


그리스 아테네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던 플라톤은

20살 즈음에 소크라테스의 문하로 들어가 철학에 매진하게 된다.

존경하던 스승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청년들에게 신을 부정하게 한다는 죄목으로

정치적 구설에 휘말려 사형을 당한 후에는 큰 실망을 안고 아테네를 떠나 세상을 여행하며

다양한 종파와 사상을 접하고 그것을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펴낼 때 밑거름으로 삼았다.


책은 총 4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이고, 해제와 연표 (그리고 본문의 각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역자 박문재님의 

세심한 배려로 책의 내용을 스스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최초의 윤리철학자이다.

그는 현실정치에 발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르침이 그 시대에 첨예하게 맞서던

기존의 민주정 세력과 스파르타의 법을 차용한 과두정 세력간의 갈등에 휘말리게 된다.

민주정을 비난하고 과두정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였던 (플라톤의 철인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더해, 그의 제자와 친구들은 상당수 과두정 세력에 서 있었다.


풍요로운 철학의 시대만 같았던 아테네는

유명한 철학자와 소피스트들이 모여들어 합리적인 자연철학을 설파하기도 하고

인간중심적인 상대주의적 지식론을 가르치고, 현란한 수사학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던 아테네의 성향과 정치적 의도가 맞물려

유명 철학자들이 속속 불경죄로 추방당하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과거의 어느 날 이루어졌던 일들임에도, 아예 낯설지 않은 것은 느낌적인 느낌일까?

왜 고전은 시대와 공간이 다른 곳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이 책이 가르침을 주었다.


소크라테스는 불경죄와 선동죄라는 자신의 죄목에 대해 스스로를 '변론' 한다.

그것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담겨 있고,

크리톤에서는 탈옥을 권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왜 탈옥을 할 수 없는지 /하지 않을 것인지

그리고 '미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신의 생명을 걸면서까지 '미덕'과 '윤리'에 대해 스스로의 사상과 철학을 지켰던 

소크라테스는 결국 상대주의적이고 실용적인 '지식들'이 '지혜'로 불리는 것에 대항했고

그로 인해 플라톤은 스승의 사상을 정립하고 발전시켜 절대적인 세계관과 가치관,

즉 '이데아'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


현실세계에 맞닿아 있지만 경험으로 이루어진 현실을 초월하여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궁극적인 실재, 절대적으로 완전한 이데아.

그리고 그 이데아를 인식하는 지성과 영혼이 이데아를 발견하는 세 가지 방식인

상기, 변증, 에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파이돈과 향연에서 다뤄진다.



책은 소크라테스의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읽는 행위 그 자체로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용은 역시나 이해하기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의 가치와 개념을 이해하고 정의내려야 하는 일이

책을 읽는 도중에 종종 일어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이나 국가의 일에 관심을 갖기 전에

먼저 진리를 아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여긴

'스승'이므로 

그는 끈질기게도 차근차근 자신의 윤리와 정의에 대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준다.


죽음을 앞에 둔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온 철학자에게

다양한 이유와 설득력있는 주장으로 절박하게 부러짐이나 불의를 권하는 사람들에게

이성을 따라 정의로운 것으로 밝혀진 것을 좇아 살아온 스스로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가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정의와 불의, 그리고 정의로움을 지키는 태도가 소크라테스를 계속 살게 해주었다.


소크라테스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논증하는 과정은 

사유하는 철학과 동양/서양의 종교를 아우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모든 대립하는 것은 자신과 대립하는 것으로부터 생성되어

사멸해나가면서 자신과 대립하는 것을 생성해낸다는 것.

살아 있는 것으로부터 죽어 있는 것이 생성되고,

죽어 있는 것으로부터 살아 있는 것이 생성되며,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면서 한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 되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서 죽어있는 것이 되는 것을 이야기 하며

사람이 처음 본 것에서 미를 인지하고 감동하는 이유는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을 품고 있는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그의 철학에서

참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곧 사후세계까지 넘나드는 이데아에 도달하는 

절대적이면서도 순수함을 지향하는 종교적인 색채마저 느껴진다.



'믿을 수 있는 고전'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괜히 그런 말을 붙인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만 읽어서는 서양 철학의 대표자이자 위대한 사상가인 소크라테스의 세계를 

다 이해할 수는 없기에, 두고두고 곱씹어가며 읽으려 한다.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아직도 수업 중이시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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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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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소설을 만났다.

시작은 영웅에 대한 독백으로 연다.

선이 악을 물리치고, 

남을 위하는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

신은 귀가 먹고, 붓다는 기억에서 멀어졌다고 말하는 소설 첫장의 화자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얼굴을 바꾸고, 사회의 어두운 세력의 힘을 처절하게 느끼고

인생의 가장 어려운 전투인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에서도 온전히 진,

집세 콜렉터(렌트 콜렉터)에 대해 온전히 알아버린 사람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다시 첫 장을 펼쳤을 때 어쩌면 제대로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호하게 경계가 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렌트 콜렉터>가 독자에게 주는 경험은 이런 모호함과

정확하게 실체가 잡히진 않아도 

누구나 대략적으로는 알 것 같은 흐릿한 형체를 더듬어 보고 

어둠 속에서도 실낱같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러나 결코 강렬하지는 않은) 

희망에 대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꿈꾸게 한다는 것이다.


유구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나라 캄보디아.

그러나 크메르 루즈 시절, 자국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지식인들-이

무자비하게 학살 당한 뒤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삶 자체는 완전히 달라졌다.

<렌트 콜렉터>의 이야기에서 주축을 맡고 있는 

두 인물 상 리와  소피프 신은 그렇게 만났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간신히 비나 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악착같이 집세를 걷는 사람과

그 원수같은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안 다음, 

글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렌트 콜렉터 소피프는 상 리의 요청을 거칠게 거부한다. 처음에는.

그러나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도 희망과 낙관을 잃지 않는 상 리의 철학적인 질문과

비참한 현실 너머의 미래를 꿈꾸며 '글'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익히는 모습에

소피프는 점차 두텁게 쌓아올린 견고한 자기방어/혐오의 벽을 허물게 된다.




상 리가 글을 읽으며 그녀의 주변 인물도 점차 변화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글 읽기가 남편을, 아이를 

생각하고 꿈꾸는 존재로 바꾸고

고통과 절망, 두려움과 좌절감 그로 인한 분노가 너무나 컸던 나머지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암소' 라고 불리며 상종조차 하고싶지 않은 여자로 

스스로의 인생을 던져버리고팠던 소피프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고 보듬으려 한다.



문학이 삶과 연결되고

삶 속에서의 질문이 문학 속에서 발견되며

문학을 매개로 서로의 삶이 밧줄 처럼 연결되어 서로를 지탱하게 되는

이 두 여자의 놀라운 이야기가

캄보디아 최대 쓰레기 매립장에서 연꽃처럼 피어나는 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감동과 탄식이 함께 터져 나온다.


인간의 인내력과 올바른 것을 지킬 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름다운 스토리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은 멋진 이야기를 만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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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서덕 지음 / 넥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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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보면, 일에 파묻혀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밀알만큼 작아지다가

마치 회사의 흔적기관 처럼, 더듬어봐야 간신히 느껴질 때가 있다.

일만의 문제일까?


사실 열심히, 재밌게, 치열하게, 성취하며 씩씩하고 신나게 앞으로만 나아가다가

어느새 있는지도 모르는 인생의 돌뿌리에 턱- 걸리는 경험은 

세상 사람 누구나에게 삶의 어느 순간에 반드시 오고야 만다.


돌뿌리가 말랑거려서 '어, 이거 뭐야?' 하며 살짝 뛰어넘을 수도 있겠고

투명하고 거대한 돌덩이라 쾅- 하고 만화처럼 부딪히기 전까진 있는지도 몰랐을 수도 있고

폭신폭신한 꽃길을 살랑살랑 걸어온 터라, 남들은 툭- 털고 다시 걸을 길에

하염없이 엎드려서 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우리는 남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어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보는 내가 그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멋진' 나의 모습을 스스로 설정해두고 그걸 맞추지 못해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나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 걸까?


그노무-_- SNS 때문에 휴일에도, 휴가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뭔가 분위기 있게 쉬어주고 마셔주고 즐겨줘야 하는, 무엇이든 '잘' 해야 하는 

강박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 보자,

애쓰며 살아가는 마음, 애쓰며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 애쓰며 잘 쉬고 잘 먹으려고 하는

이 '애씀'의 습관과 관성에서 좀 놓여나 보자, 고 하면서

광고회사에서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의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된 작가의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익숙하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8년을 일했고, 잠시 쉬다 다시 일하고 있는 경력이 무색하지 않게 

매 글을 읽으면 내 일상처럼 착- 달라붙어 이것이 저자 서덕의 경험인지 나의 경험인지

몽롱하게 헷갈리는 독서를 하게 한다. (엄청 재밌다가 툭- 눈물이 떨어지기도 한다..)

동작을 하나하나 묘사하거나, 섞여있는 모호한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글쓰기를 통해

'나'와 '내'가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채로 살짝 분리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트라우마가 삶의 군데군데에 불쑥- 끼어들어 내가 원치 않았던 색깔로 그 시간을 물들일 때

감정과 상황을 빨리 잘 해결하거나, 벗어나거나 묻어버리려고만 했지

답을 구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온 몸으로 스며들게 내버려둔 경험이 있었던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어를 나름대로 꼽자면 '쉼'과 '나'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그것이 편안과 안락함을 보장하진 않더라도;)

내가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해내지 않아도 되는 때를 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굳이 주말과 휴가를 기다리지 않고도, 팬시한 어딘가에 가지 않아도  

오롯이 나를 위한 쉼과 휴식 시간을 일상 속 순간마다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채우면서 조바심이 아닌 충족감을 느끼는

'더 나은' 사람이 아닌 '나다운' 사람이 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비법은

어쩜 참 쉽다.


나는 당신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부장이니 어머니니 친구이니 연인이니 하는 호칭에 당신이 가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은 직급이나 더 나은 연봉을 위해, 

더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당신이 좋아하는 소고기를 먹었으면 좋겠다.

소고기가 싫다면 고추 바사삭도 좋겠다.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당신이 당신의 욕망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당신이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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