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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엄청난 소설을 만났다.
시작은 영웅에 대한 독백으로 연다.
선이 악을 물리치고,
남을 위하는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
신은 귀가 먹고, 붓다는 기억에서 멀어졌다고 말하는 소설 첫장의 화자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얼굴을 바꾸고, 사회의 어두운 세력의 힘을 처절하게 느끼고
인생의 가장 어려운 전투인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에서도 온전히 진,
집세 콜렉터(렌트 콜렉터)에 대해 온전히 알아버린 사람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다시 첫 장을 펼쳤을 때 어쩌면 제대로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호하게 경계가 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렌트 콜렉터>가 독자에게 주는 경험은 이런 모호함과
정확하게 실체가 잡히진 않아도
누구나 대략적으로는 알 것 같은 흐릿한 형체를 더듬어 보고
어둠 속에서도 실낱같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러나 결코 강렬하지는 않은)
희망에 대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꿈꾸게 한다는 것이다.
유구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나라 캄보디아.
그러나 크메르 루즈 시절, 자국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지식인들-이
무자비하게 학살 당한 뒤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삶 자체는 완전히 달라졌다.
<렌트 콜렉터>의 이야기에서 주축을 맡고 있는
두 인물 상 리와 소피프 신은 그렇게 만났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간신히 비나 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악착같이 집세를 걷는 사람과
그 원수같은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안 다음,
글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렌트 콜렉터 소피프는 상 리의 요청을 거칠게 거부한다. 처음에는.
그러나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도 희망과 낙관을 잃지 않는 상 리의 철학적인 질문과
비참한 현실 너머의 미래를 꿈꾸며 '글'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익히는 모습에
소피프는 점차 두텁게 쌓아올린 견고한 자기방어/혐오의 벽을 허물게 된다.


상 리가 글을 읽으며 그녀의 주변 인물도 점차 변화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글 읽기가 남편을, 아이를
생각하고 꿈꾸는 존재로 바꾸고
고통과 절망, 두려움과 좌절감 그로 인한 분노가 너무나 컸던 나머지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암소' 라고 불리며 상종조차 하고싶지 않은 여자로
스스로의 인생을 던져버리고팠던 소피프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고 보듬으려 한다.

문학이 삶과 연결되고
삶 속에서의 질문이 문학 속에서 발견되며
문학을 매개로 서로의 삶이 밧줄 처럼 연결되어 서로를 지탱하게 되는
이 두 여자의 놀라운 이야기가
캄보디아 최대 쓰레기 매립장에서 연꽃처럼 피어나는 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감동과 탄식이 함께 터져 나온다.
인간의 인내력과 올바른 것을 지킬 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아름다운 스토리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은 멋진 이야기를 만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