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서덕 지음 / 넥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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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보면, 일에 파묻혀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밀알만큼 작아지다가

마치 회사의 흔적기관 처럼, 더듬어봐야 간신히 느껴질 때가 있다.

일만의 문제일까?


사실 열심히, 재밌게, 치열하게, 성취하며 씩씩하고 신나게 앞으로만 나아가다가

어느새 있는지도 모르는 인생의 돌뿌리에 턱- 걸리는 경험은 

세상 사람 누구나에게 삶의 어느 순간에 반드시 오고야 만다.


돌뿌리가 말랑거려서 '어, 이거 뭐야?' 하며 살짝 뛰어넘을 수도 있겠고

투명하고 거대한 돌덩이라 쾅- 하고 만화처럼 부딪히기 전까진 있는지도 몰랐을 수도 있고

폭신폭신한 꽃길을 살랑살랑 걸어온 터라, 남들은 툭- 털고 다시 걸을 길에

하염없이 엎드려서 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우리는 남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어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보는 내가 그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멋진' 나의 모습을 스스로 설정해두고 그걸 맞추지 못해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나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 걸까?


그노무-_- SNS 때문에 휴일에도, 휴가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뭔가 분위기 있게 쉬어주고 마셔주고 즐겨줘야 하는, 무엇이든 '잘' 해야 하는 

강박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 보자,

애쓰며 살아가는 마음, 애쓰며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 애쓰며 잘 쉬고 잘 먹으려고 하는

이 '애씀'의 습관과 관성에서 좀 놓여나 보자, 고 하면서

광고회사에서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의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된 작가의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익숙하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8년을 일했고, 잠시 쉬다 다시 일하고 있는 경력이 무색하지 않게 

매 글을 읽으면 내 일상처럼 착- 달라붙어 이것이 저자 서덕의 경험인지 나의 경험인지

몽롱하게 헷갈리는 독서를 하게 한다. (엄청 재밌다가 툭- 눈물이 떨어지기도 한다..)

동작을 하나하나 묘사하거나, 섞여있는 모호한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글쓰기를 통해

'나'와 '내'가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채로 살짝 분리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트라우마가 삶의 군데군데에 불쑥- 끼어들어 내가 원치 않았던 색깔로 그 시간을 물들일 때

감정과 상황을 빨리 잘 해결하거나, 벗어나거나 묻어버리려고만 했지

답을 구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온 몸으로 스며들게 내버려둔 경험이 있었던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어를 나름대로 꼽자면 '쉼'과 '나'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그것이 편안과 안락함을 보장하진 않더라도;)

내가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해내지 않아도 되는 때를 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굳이 주말과 휴가를 기다리지 않고도, 팬시한 어딘가에 가지 않아도  

오롯이 나를 위한 쉼과 휴식 시간을 일상 속 순간마다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채우면서 조바심이 아닌 충족감을 느끼는

'더 나은' 사람이 아닌 '나다운' 사람이 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비법은

어쩜 참 쉽다.


나는 당신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부장이니 어머니니 친구이니 연인이니 하는 호칭에 당신이 가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은 직급이나 더 나은 연봉을 위해, 

더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당신이 좋아하는 소고기를 먹었으면 좋겠다.

소고기가 싫다면 고추 바사삭도 좋겠다.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당신이 당신의 욕망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당신이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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