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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 - 기숙사에 사는 비혼 교수의 자기 탐색 에세이
윤지영 지음 / 끌레마 / 2020년 1월
평점 :

제목보다 흥미로운 것은, 제목 위 부제이다.
'기숙사에 사는 비혼 교수의 자기 탐색 에세이'
단어마다 호기심이 차오른다.
그래서 <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라는
상당히 흔해진 '나이 에세이'의 심드렁함을 확실하게 상쇄하며
독자의 손길을 재촉한다.
나도 그 마케팅에 고스란히 넘어간 독자 1인으로,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비혼이나 교수는 딱히 놀랍거나 궁금하진 않았으나)
마흔이 되어서 기숙사에 살고 있을까?
자기 탐색 에세이라는데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노력과 성공기이려나?
같은 궁금증을 안고 책을 펼쳤다.
<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의 저자 윤지영 교수의 프로필은 대단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대학교 3학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했고,
서른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기부터 넘사벽의 기운이 물씬....)
5년간의 시간강사 생활 끝에 부산의 한 사립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40대 초반에 집을 통째로 정리하고,
1년여 동안 모로코, 터키, 유럽의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대학 기숙사(게스트룸)에서 혼자 생활한 지는 2년 전 부터이고
마흔 즈음에 자기 탐색의 재미에 빠져,
(책에 나온 정보로 추측컨대) 마흔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집안도 좋다.
한국 문학계 종합세트를 달성하는
문학계의 로열 패밀리를 꿈꾸는 교수 아버지의 꿈이
그녀와 그녀의 동생이 박사학위를 받고, 그리고 제부가 교수가 됨으로써
현대소설 전공자의 슬롯만 채우면 얼추 이루어지겠지만
여기서 윤지영 교수의 발랄함과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ㅎ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 길이 진짜 자신이 원하던 것인지 뒤늦게 생각해보고,
어린 나이에 등단했을 때의 스스로를 돌아보며 부끄러워 이불킥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누군가, 무엇인가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꿈과 진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과
'비혼'으로 마음이 굳어져가는 자신 때문에 아버지의 꿈은 미완성으로 남을 것 같다는
'역시 사람은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나 보다.'라는 가벼운 문장의 마침표가
독자와 저자와의 간격이나 벽을 없애버린다.

현대를 함께 살아가는, 나이는 어른이지만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동질감을 많이 느끼고 공감하였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줄 알았고 그렇게 살아왔지만
세상 일이라는 허망한 것이 예상치 못한 큰 파도에 덮쳐져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그래서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이해하기 싫었던 것들,
지레짐작 했었던 것들과 내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잔함과 '그럴 수 있지' 하는 포용이 늘어간다.
그 포용과 애잔해 하는 마음씀이 결국 스스로에게까지 닿게 되어
더이상 나를 들볶지 않고 있는 존재 자체로 수용하게 되면서도,
난 도전과 모험, 호기심과 무모함, 창의성을 모두 버리고
안주하게 되버리고 만걸까? 하며 쉴새없이 흔들리는 자기의 모습이
탐탁치 않음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대학 기숙사에 산다.
청춘의 푸르름과 성인이 된 해방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자부심과 기대감에 충만한 대학생들을 (특히 신입생들이라면 더더욱)
만나고 가르치고, 기숙사의 삶을 공유하며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의 부러움, 회한이라는 말이나 인생 선배라는 말 보다는
앞선 경험으로 얻게 된 지혜(?)나
어차피 말 해봐야 스스로 경험하기 전에는 모른다는 내려놓음,
'내가 해봐서 알지만 ^^', 이리저리 비틀대도 인생에 큰 탈은 안 난다는
해탈의 이야기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달복달 못하고 있거나,
나이 숫자에 맞지 않는 어수룩함을 기꺼이 보인다.
분명 이 책을 읽을 수도 있는 자기 학생을 다음 날 마주쳐야 하는 교수님이. ^^

그래서, 작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것까지 쓴다고? 할 정도의
내밀한 이야기부터, 솔직담백한 감정, 부족한 모습까지.
숨김이나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깊어짐의 시기에 자기 탐색을 시작했음이 다행이라는 고백과
탐색이 시작된 것이지 달관은 멀었다는, 그렇지만 상관없이 계속 해볼거라는 태도에
책으로 처음 만난 사람임에도
왠지 여러 해 알고 지내, 분기마다 카페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단어를 영민하게 다루고, 일상의 사소함에 감성이 폭발하기도 하지만,
생활인의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유쾌한 기분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