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에 미쳐서
아사이 마카테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한파는 없어도 겨울이라 그런지, 싱그러운 채소들이 가득한 표지만 봐도 즐겁다.

<야채에 미쳐서>를 설명해주는 표지와 띠지.

요즘 같은 시국(?)에~ 하며 일본의 것들에 대한 호감도가 하락하는 것도 사실이고,

나오키상과 시대소설 대상을 동시에 석권, 50세의 나이에 늦깎이 데뷔, 하는 문구도

바다 건너 이국에서 소설을 내려면 필수조건처럼 달려오는 것 아닌가, 하고 

심드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로 이 책을 펴지 않는다면 독자의 손해!


우리나라처럼 지역색이 강하고 -따라서 지역감정도 강한- 일본의 오사카.

전국의 쌀과 야채가 모이는 '천하의 주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오사카를 배경으로 한 <야채에 미쳐서>는 그 소설의 출생부터 남다르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작가 아사이 마카테가 3번째 쓴 작품으로,

치밀한 시대 고증과 탁월한 심리 묘사로 

시대소설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평을 받는 작가답게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에도시대의 오사카의 모습을 묘사와 사투리로 담아낸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라 당연히 그 뜻을 알지 못했던 차례의 제목도,

모두 간사이(관서)지방의 사투리를 가져다 쓴 것이라고 한다. 

(제목이 나온 페이지의 바로 뒷면에 친절하게 뜻이 설명되어 있다!)


고향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 작가로서의 열망이 모두 녹아든 <야채에 미쳐서>는 

그래서인지 오사카 북 원 프로젝트 (Osaka Book One Project)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사카의 서점과 도매상이 

'한 권은 정말로 좋은 책을 팔자!"는 목표로 만들어진 문학상으로,

책을 파는 서점(혹은 도매상도 허물없이), 

생산자인 작가(가 살아있어야 한다. 이벤트를 해야하므로),

출판사,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상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덴마 청과물 시장과 난바무라 농민의 노점 허가 청원, 

오사카 대관 사사야마 등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그 시대를 차용하고 있다.

에도시대의 에도는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그 절반이 무사인 도시,

오사카는 인구 30만 명 가운데 무사가 3%인 상인의 도시이다.


이렇게 다른 도시를 출신으로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에도출신으로 사무라이 집안으로 시집 갔으나, 자식도 없이 남편을 여의고 

-시댁과 친정의 나몰라라로- 남편이 부임지였던 오사카에 남겨진 청상과부 지사토와

유흥에 돈을 물 쓰듯하는 오사카 상인 재벌가의 장남에다, 

하는 일마다 허술하고 제멋대로인데 채소와 농사에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고 

기존의 상업 관행을 뒤엎으려는 세이타로.


당연히 처음에는 '혐관'으로 만났으나 ㅎㅎㅎ

로맨스의 시작점은 서로에 대한 비난과 오해부터가 아닌가!


작가가 깔아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남녀가 만나 

'야채'와 '새로운 시도'라는 큰 주제 속에서

두 주인공이 어떻게 마음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고 결국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지

독자는 정교하게 놓인 돌을 즐겁게 따라가 주기만 하면 된다.


로맨스만 있으면 재미가 없지.

이 책은 막부에 의해 독점을 보장받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이는 상인들과,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자신들이 열심히 노동한 댓가를 정당하게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농부들을 대비시키며 

에도시대의 일본 사회가 변화를 맞이하며 겪는 갈등의 과정을 스토리에 녹여내어

살아본 적이 없는 과거의 일본을 경험하게 해주고

지금, 여기에서의 유사한 상황이나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연상하도록 한다.



일본 사람들의 사고방식, 문화, 풍토, 표현 방식을 독자가 한조각이나마 맛볼 수 있도록

탄탄하게 짜여진 대사를 읽다보면, 

(행복한 결말은 예상되지만^^) 스토리에 몰입은 한순간이다. 

음식과 맛을 다루는 일본 특유의 섬세한 묘사는 분명 책을 읽고 있지만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풍부한 상상이 가능하다. 



다 아는 그 맛을 감칠 맛나게 표현하는 것이 요리사와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야채에 미쳐서>는 책의 등장인물을 

어느새 가상 캐스팅하며 읽게 만드는

"이 집, 시대극 로맨스 잘하네" 라고 할 만한 맛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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