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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동네 핀란드가 천국을 만드는 법 - 어느 저널리스트의 ‘핀란드 10년 관찰기’
정경화 지음 / 틈새책방 / 2020년 2월
평점 :

제목은 지극히 대비되도록 작성하여, 오히려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북유럽.
단정하고 차분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복지가 잘 되어있는 선진국.의 이미지로
'휘게' 같이 여유롭고 가정을 중시하는 삶의 스타일이 부럽고,
도입하고 싶은 시스템들이 있어 호감으로 다가오는 국가들이다.
(특히 '핀란드의 교육'은 여러 차례 다큐멘터리나 특별 프로그램으로 다뤄졌었다)
반면, 우울감이 높아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고,
살인적인 물가에다 각종 서비스의 속 터지는 속도, 긴 겨울로 고립되는 생활처럼
우리나라 사람이 막상 가서 살기에는 큰 결심이 필요한 -언어도 그렇고-
특히, 핀란드의 주요 사업체였던 '노키아'의 몰락과 그 여파로 경기침체가 이어져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는 뉴스를 보며
"역시 돈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가장 살기 편한 곳이다-" 하고 자조하기도 했다.
헬조선이라고 폄하하고
만날 싸움박질만 하는 정치인들이 지긋지긋하며
갑질, 금수저, 계층의 고착화에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좌절하면서도
어떻게든 지금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의 세대가 살아가야 할
우리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은 이율배반적이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한 가지.
한 나라의 색깔과 캐릭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국내의 '핀란드'에 대한 열망이 노키아의 몰락으로 사그라드는 관심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꽤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평가 척도는 '경제력' 인 것 같다.
'독립적인 시민'과 '사회적 신뢰'를 위해 사회의 자본을 아끼지 않고 쓰는
핀란드의 철학과 색깔의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던 저자 정경화는
<조선일보>에서 교육과 경제를 담당했던 기자이다.
그는 2009년 핀란드로 1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2016년 11월부터 1년간 핀란드에 단기 특파원으로 머물어
핀란드와의 인연이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는 되지만 ^^;
기자로 벼려진 기술과 전문 분야에서의 경험으로
핀란드의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 스타트업을 하는 청년, 실직한 가장 등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 궁금한 점을 묻고, 보고, 들은 것들을 적어
책으로 묶어내었다는 점에서 내용이 궁금했다.

핀란드가 핀란드가 되기 위해서는 세팅값과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대학까지의 무상교육, '기본 소득' 실험 같이 보편적인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핀란드의 조건과 상황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사실 우리가 핀란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1위를 했던 핀란드 교육 때문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1등을 좋아한다.
어느 분야든 1위 국가들의 예시를 보고 매뉴얼을 파악해서 단시간에 복제한다.
목표를 정하고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빠른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
그러다보니 놓치거나 버리고, 무시하고 미뤄두었던 요소들을
-심지어 노키아가 망했을지라도- 최대한 부여잡고 있는 핀란드는 어떤 국가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보여주는 페이지를 골라봤다.



어느 집단이나 어느 시대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지금처럼 전 지구적으로 뾰족한 해결방안이나 끝날 시기를 짐작할 수 없을 때
그 나라의 대응방식에서 드러나는 민낯, 가치관, 생활방식, 욕망들을 보게 된다.
핀란드는 문제를 맞닥뜨리면 '핀란드만의 길'을 찾으려고 한다.
교육에까지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시장주의가 지배적일 때
인구가 적은 핀란드는 '협력'과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교육 개혁을 추진했고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1위를 빼앗겼어도 차분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과 AI시대에 맞는 교육에 인기가 몰릴 때에도
교육의 본질은 협동심과 의사소통능력에 있다는 철학을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유지하며 아이들이 실험하고 협업하고 실패하며 성장할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인내심을 가지고, 부화뇌동하지 않고 지켜가고 있다.

이런 '태도'가 사회 전반에 걸쳐 작용하면서
핀란드는 사회적 합의, 인재를 키우고 기술력을 쌓으며, 외부의 간섭을 조절하여
100여년에 걸쳐 경제 규모를 늘리고, 고난을 함께 극복하는 축적의 시간을 가졌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상적인 복지제도를 세웠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세금을 냈다.
복지제도가 비대해지면서 오히려 공공 시스템에 비효율성이 늘어나기도 하고
엘리트와 기업의 해외유출이 많아지고 산업경쟁력이 떨어져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여 경제적 침체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핀란드의 핵심가치는 두터운 상호 신뢰다.
모든 제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인구 550만 명의 핀란드와 5170만명의 대한민국은 너무나 다른 국가이다.
마냥 부러워하고 따라잡으려고 성급하게 제도와 시스템을 건드리기보다는
핀란드의 방식처럼 우리만의 방식, 특히 긍정적인 중심가치를 지켜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1등'과 '돈만 있으면'을 핵심가치로 남겨야할까?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동네- 핀란드가 천국을 만드는 법>은
'세상에서 제일 00한 동네- 000이 천국을 만드는 법'의 빈 칸에
무엇을 채워넣어야 할지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