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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야환담 채월야 2
홍정훈 지음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월야환담 채월야, 제목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으스스하고 신비롭고 또한 도란도란한 이야기다.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 떠오른 것은, 찌는 듯 더운 여름날밤 마당 평상에 앉아서 모기향 피어놓고 가족들과 환담을 나누는 영상이었다. 열기란 사람을 약간 광기에 젖게 만들지만 차가운 달과 담소는 그 광기를 식혀주니까 말이다. 흠, 그러나 그런 가족적인 영상이 그다지 어울리는 소설은 아니었다.
'미친 달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한다.'
이 말은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상징어구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진마사냥꾼 실베스테르 신부는, 자신으로 인해 흡혈귀사냥꾼의 길에 들어선 주인공 한세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세례'였다. 평범한 세상에 속해있던 한세건이 미지의 세계로 들어선 기념세례. 흡혈귀를 상대하려면 필수적인 마약 사이키델릭문 또한 그 이름부터가 광기서린 달을 은유한다. 달은 예로부터 지구상 생명체들에게 묘한 마력을 뿜어왔다. 또한 흡혈귀들이 활동하는 시간대인 밤을 밝히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달이다. 정말로, 흡혈귀와 그 사냥꾼만의 세계로 들어선 한세건에게 내려주는 세례말로 이 이상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작가 홍정훈은 <비상하는 매>, <더 로그>등 많은 글을 썼지만 솔직히 별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탐미적이고 현란하고 약간은 슬프고 냉소적인 그런 분위기가 정말 내 취향과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런 작가의 모든 것이 그대로 녹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월야환담 채월야>만은 너무나 끌린다. 실베스테르 신부나 진마 팬텀 등 여전히 탐미적인 경향이 난무하고, 흡혈귀나 조직폭력배와의 전투씬 등 폭력성도 짙지만 그것들은 어쩐지 '여과된' 느낌이다. 전작들처럼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고 한 번 걸러져서 전달된달까. 그래서인지 더 깔끔하고 더 세련되고 더 편안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일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난 이 월야환담에서 비로소 홍정훈이란 작가의 대단함을 알게 되었다.
폭주한 한 흡혈귀에 의해 졸지에 부모님을 잃은 고등학교 소년 한세건, 처음엔 실베스테르 신부보다 존재감이 약했지만 갈수록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정신적인 황폐함에서 오는 광기와, 본연의 성실함과 강직함에 의한 자기단련, 이 두가지 요소가 세건이란 주인공에게 점점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 아닐런지?
이처럼 주인공답게 존재감이 확실한 주인공과, 개성만점인 조연 실베스테르 신부. 그리고 그들의 안식처 오컬트샵 아르쥬나라든지, 흡혈귀들의 조직 테트라아낙스, 흡혈귀의 피를 매매하는 브로커 등 독특한 공간들은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한다.에피소드 식으로 제 1야, 제 2야 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성도 무척 깔끔하다. 밤(야)이 더해질수록, 월야환담 채월야의 세계는 확장되고 인물들은 성장하거나 진면목을 드러낸다.
일상이 지루하고, 우리가 사는 삶이 매일 똑같다고 한탄스러워질 때 월야환담 채월야를 펼쳐들라고 권한다. 지루함 따위, 단번에 날아가버릴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