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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기-되돌아보는 행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행위, 새로운 비평적 지향점을 가지고 낡은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 -는 여자들에게 문화사의 한 장을 차지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우리가 흠뻑 빠져있는 전제들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이 충동은, 여자들에게는, 정체성을 찾는 행위 이상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자기파괴성을 지하는 행위이다. 급진적인 문학비평 작업을 수행하는 것, 그런 충동을 가지는 것은 [물론] 페미니스트의 성향이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상상하도록 인도되어 왔는지, 우리의 언어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옥죄어 왔는지, 이름을 붙인다는 행위가 지금까지 어떻게 남자의 특권일 수 있었는지, 우리가 어떤 식으로 [다시] 바라보고 새롭게 이름 붙이는 행위를 시작할 수 있는지 - 그래서 숨을 쉬며 살 수 있는지 ㅡ에 대해서 어떤 실마리를제공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만약 우리가 낡은 정치 질서가 모든 방향에서 새롭게 일군 혁명에 영향력을 다시해사하게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성정체성의 개념에서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필수적일 것이다. <거짓말, 비밀, 그리고 침묵에 대하여> 리치 산문 재인용 - P166
하지만, 리치가 지적한 바가 있듯이, 이런 ‘특별하다‘는 느낌이 한편으로 우리를 여자이기에 당면하는 여성의 현실에서 해방시켜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우리 자신을 끝없는 죄의식과 분노, 희생자 의식과 좌절감의 늪에 빠지게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서를 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시간을 쥐어짜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약한 할머니, 아픈어머니, 일하느라 녹초가 된 남편,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뭔가를 해달라는 아이들에게 쉽게 짜증을 내거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중산층 주부의 존재양식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우울해하거나,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꿈과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역할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면서, 속으로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라는 희생자 의식과 분노를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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