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에피소드들. 이런 건 읽어도 읽어도 익숙해지지 않네. 종류는 다르지만 당시엔 마땅히 설명할 지적 도구가 없었던(마리 루티 인용) 내 경험들도 떠오르고. 어떤 책에서 마주쳐도 응원하게 되는, 예민하고 조숙한 어린이/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은 참 가혹하다. 차라리 물정 모르고 무감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반반임.


“나는 어머니의 숨겨진 분노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시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머니를 묘사하는 부분 나올 때마다 좋은데, 그의 양육태도에 대해서도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로드의 부모는 인종차별주의라는 도처에 있는 거대한 악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그것을 무시하고 없는 것처럼 대하기‘를 선택했다. 어린 로드는 그것때문에 당연히 혼란스러워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 덕분에 시적 자아(나는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가)를 지킨걸까. 문장이 황홀하다.

세인트마크플레이스의 성체 수녀회 수녀들도 나를 내려다보는 태도이긴 했으나 최소한 그들은 수녀로서의 사명 속에 인종차별을 숨기기라도 했었다. 세인트캐서린학교, 자선수녀회 수녀님들은 대놓고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장식도, 핑계도 없이 인종차별을 일삼았으며, 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집에서도 도움받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땅은 머리를 놀려대자 교장인 빅투아르 수녀는 내가 "돼지꼬리‘ 머리를 할 나이는 이미 지났으니 머리 모양을 더 ‘적절하게‘ 바꿔주라"는 가정통신문을 나한테 들려 보냈다.
전교생이 입던 푸른색 개버딘 교복은 아무리 자주 드라이클리닝을 해도 봄이 오면 곰팡내가 풍겼다.쉬는 시간이 끝나 자리로 돌아오면 내 자리에 "냄새 나"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곤 했다. 블랑슈 수녀에게 쪽 지를 보였더니, 그는 유색인들이 실제로 백인과 다른 체취를 풍긴다는 걸 내게 알려주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 러나 이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못된 쪽지를 쓴 건 잔인한 일이기에, 내일 점심시간이 끝난 뒤 내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이 다른 아이들한테 나에게 잘해주라는 이 야기를 해주겠다는 게 아닌가! - P105

어머니의 결혼반지가 목제 헤드보드에 부딪히는 소리. 어머니는 깨어 있다. 나는 일어나서 어머니 침대로 기어든다. 어머니의 미소. 글리세린과 플란넬 천의 냄새. 온기. 어머니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한 팔 은 쭉 뻗고 다른 팔은 이마에 대고 있다. 어머니가 밤에 담낭의 통증을 가라앉히려 쓰는, 플란넬 천으로 싸놓은 체온과 같은 온도의 더운 물주 머니. 단추 달린 잠옷 아래 커다랗고 말랑거리는 두 가슴. 그 아래, 만져 보라는 듯 잠자코 자리하고 있는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
나는 침대로 기어 들어 가서 어머니에게 몸을 기댄 채 플란넬 천으로 싼 따뜻한 고무주머니를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던져보기도 하고 어머니의 구부린 팔꿈치 사이 가슴 아래 허리의 곡선을 따라 미끄러뜨리다가, 날염한 천싸개 속에서 한쪽으로 세워보기도 하면서 가지고 논다.
이불 속 아침의 냄새는 부드럽고 밝고 약속으로 가득하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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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수 2023-01-24 08:35   좋아요 0 | URL
앗 진짜요 ㅎㅎㅎㅎ 그럼 페미니즘 철학이나 메두사의 웃음/출구는 어떠세용
검은 얼굴 하얀 가면은 왜요? 어려울거란 생각은 하는데요 ㅎㅎ 궁금해요

2023-01-25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