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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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알게 된 후부터는 소소한 의식처럼 한해 마지막 날에 아무데나 펼치고 읽게 된다. 어제는 앨리스 워커와 어슐러 르 귄의 글이 특히 좋았다.


(자기 엄마 대답ㅋㅋㅋ 몇 대 맞으며 비판 받아야 된다고)



앨리스 워커가 젊은 시절 갓 엄마가 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스스로를 '우리의 젊은 엄마'로 전환해서 서술하는 부분이 놀랍도록 강렬하고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이 '젊은 엄마'는 글 말미에 이르러 "...은 저의 아이가 아닙니다."부분과 자연히 연결된다.


작가는 뉴잉글랜드로 이사가게 되는데 하필 어린 아이와 함께 독감에 걸린다. 낯선 곳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치료를 받으러 이리저리 알아보는데 이 과정에서 (아마도) '진보' 소아과 의사의 위선적이고 차별적인 태도에 불쾌감을 느낀다. 

워커는 이 경험을 "역겹지만, 엄마가 바라왔던, 결국은 이로운 결과를 여럿 남은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엄마와 아이를 사회의 어느 편이든 간에 이 남자와 반대편에 위치시킵니다. 이 여성, 엄마는 아이를 낳기 수년 전에 썼던 이야기를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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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내면에 균열을 낸다. 그 전까지의 모든 개인사를 재위치시키고 소용돌이를 만든다. 너 왜 그래?라는 물음에 한마디로 대답을 할 수 없게 된다. 안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앎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원리를 학습하고 체화했는지의 영역에 속해있다는 것을 새로 깨닫는다.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런 뜻일 거다.


"이제 엄마도 (고열로 어지러운) 그 순간 자기가 구성하고 있는 이야기에서 새로운 차원을 보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손으로 이마를 탁 치며 말합니다. 왜 모든 역사는 현재인가. 왜 모든 불의는 세상 어딘가에서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는가. "진보는 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칩니다. 오직 혁명만이 다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 "그녀 자신"은 엄마 혼자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어느 때건 그녀는 그저 대표였을 뿐입니다."


대표성, 여성운동에서의 통찰, 그리고 이후에 다시 창작의 고통과 자기연민....을 갖게 된 이 "우리의 젊은 엄마"는 글 마지막에서 "우리의 아이"를 재정의한다. "제 아이와 저, 우리는 함께입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이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의 온 존재를 부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자매입니다."209  이 문장은 책의 원제가 in search of our mother's garden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풍성해지는 듯하다. 원문의 문맥은 모르지만 이 자체가 모성 담론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구제해줄 것 같아서ㅋㅋㅋ 왤까. 이제껏 학습해온 엄마 상을 따르려고 하다 보면 아이의 삶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글 처음에서 워커가 뮤리얼 류카이저를 추모하며 말했듯이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의 필요성과 더불어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이를, 자기 아이의 삶을 긍정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선언이 이렇게 성립하게 된다. 



뮤리얼 류카이저, <어둠의 속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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