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재밌는 괴물 그림책 - 그림으로 배우는 신기한 지식 백과 진짜 진짜 재밌는 그림책
게리 맥콜.크리스 맥냅 지음, 케런 해러건 그림, 김맑아.김경덕 옮김 / 라이카미(부즈펌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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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입장에서 '역사책', '과학책', '상식책' 이런 것들을 꺼내 읽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이 가장 많이 꺼내 보는 책 중 하나는 '괴물책'이다.


 이 책을 어떻게 발견했는가,하면 아이와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구경을 할 때 였다. 아이가 보는 동화책은 너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잔뜩 있는데, 개인적으로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자극적인 그림이 있는 책을 뽑아 보여줬더니 그 책이 이 책이다. 그때가 대략 7살인가 8살이었던 것 같다. 그뒤로 몇번을 이 책을 빌려보다가, 나중에는 아이가 사달라고 이야기해서 사두었다.


 사회에서도 불법이거나 음지에 있던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제도권으로 안전하게 끌어 들이는 일들이 있다. 가령 노점상을 양성화 한다거나, 사채 시정을 법정 금융권으로 유도하거나 그런 일들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식 중 하나는 '강원랜드'다. 강원랜드는 대표적인 제도화 된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다. 음지로 두면 더 음습해지고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일부를 양성화하여 이를 차라리 잘 관리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동의한다.


 아이에게 '괴물'이 있고, '비극'이 있고, '실패'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애당초 모르게 키울 수 있다면 상관 없겠지만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숨길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하는 편이 낫다.


 초등학교 시절 꽤 비싼 대학노트를 산 적 있다. 거기에 무엇을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트를 아주 예쁘게 관리하고 싶었던 마음은 확실히 남아 있다.

 첫 페이지에 무언가를 기록했고 두 번째 페이지에 다른 무언가를 기록하기 전에 나는 첫 번째 페이지를 찢어 버렸다.

 삐뚤빼뚤하게 글씨가 써졌다거나, 앞장에 비해 뒷장에 눌린 연필자국이 불쾌해 보여서 그렇다. 그렇게 완벽하게 유지하고 싶던 그 노트는 정말로 실패를 할 때마다 찢어내면서 완전해졌다. 단 한장도 쓰여지지 않은 '새것'의 상태로 어딘가 뒹굴다가 사라졌다.


 그것이 내가 본 '완벽'의 모습이다. 가장 완벽한 성공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도전'하지 않으면 된다. 쉽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최고의 완벽주의자가 때로는 엉망의 결과를 내어 놓는 이유는 나의 '최선'을 발견하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무언가 100%를 발휘하지 않는 실패하지 않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런 도전과 실패도 하지 않는 '실패자'보다 차라리 '게으른 천재'로 남고 싶은 그 바람은 언제나 이루어진다.


 이유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안해도 되기 때문이다.

 후반에 다다르면 모든 갈등이 마법처럼 풀려지는 '디즈니'같은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일찍 깨우쳐야 하고, 어차피 느껴야 하는 공포나 실패 같은 거라면, '그거 원래 있는거야, 당연한거야,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인식을 어린 시절부터 학습하고 사회로 나가는 편이 낫다.


 살다보니 어린 시절에는 무시무시하던 '괴물'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다. 이유는 세상에는 '괴물'보다 훨씬 무서운 것들이 많으며 대체로 그런 것에는 '사람'과 '세상'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렇다.


 어디서 듣기에 '귀신'이 나오는 영화가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서 그렇단다. 실제로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아무런 감흥이 없다. 차라리 '살인자'라던지, '배신자'가 등장하여 실질적인 위협을 끼치는 영화에서 더 소름이 끼치곤 한다.


 인간은 '공포'가 제도권에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것을 '여가'로 즐기기도 한다. 공포나 스릴러 영화를 즐겨보고 어떤 경우에는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한다. 그것이 허상이고 감정만 남기고 실질 위협은 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삶이 안정적일수록 그런 믿음이 더 강하고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공포를 '유희'하고자 한다. 어쩌면 무서운 이야기를 찾는 아이가 되려 올바른 정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리가 불안하면 공포영화던 추리소설이던 즐겨 보지 못한다. 이건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인데, 꽤 확실한 결과를 내려 두었다.


책장에는 '살인'이나 '범죄'에 관한 추리소설이 가득하다. 아빠도 이런 공포를 즐긴다. 아이가 좋아하는 '괴물책'에 그런 의미를 부여해 본다.


 책은 그냥 괴물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설화에 나오는 괴물들이다. 여기에는 꽤 많은 국가들이 나오고, 꽤 많은 문화와 문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방에 문을 닫고 한참을 떠들던 아이들이 가끔 문을 열어보면 둘이서 머리를 박고 이 책을 들여다보며 한참 이야기 한다.


 '그거 다 거짓말이야'라고 알려주지 않고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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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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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기록한 일기에는 향기를 담을 수 없다. 그것은 '내'가 아닌 '타인'이 기억해 주는 기록에서만 담을 수 있다. 김영하 작가가 말하길, 꼭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체취를 느낄 수 없고 자신의 걸음거리나 말투, 표정을 느낄 수 없으며 심지어 치아 사이에 낀 고추가루 마저 타인이 아니면 알아차리기 힘들다.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은 어쩌면 굉장한 오만일지 모른다. 자신을 타인에게서 완전히 분리하는 작업일지 모른다. '나'라는 것은 애당초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본래 '존재'란 '기억'에 의해 '가능'하다. '나'라는 것은 애초에 '스스로의 기억'으로 완전할 수 없고 '타인의 기억'으로 완성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과 '타인'은 모두 '나'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타인' 또한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다.


 직점 남긴 기록이라도 모두 '내 시선' 속에 갇힌다. 내가 고른 장면, 내가 선택한 단어, 내가 의도한 해석만이 남는다. 어떤 기억 속에서 분명하게 본 것을 타인과 논쟁하고 있었다. '타인'의 오류가 확실할 정도로 생생한 나의 기억을 비웃듯, 제3제가 하나 둘 '타인'의 기억을 옹호했다. 나의 기억에 오류가 있다고 하기에 너무 확실한 기억이지만 관찰자가 더 많이 늘어 날수록 주변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됐다. '내'가 완전하다는 착각이 어쩌면 스스로를 가둬 버리는지 모른다.


 20대 초반, 해외에서 일을 했다. 직업은 꽤 안정적이었다. 큰 이변이 없다면 아마 나는 20대 때 가졌던 그 직업을 그대로 은퇴까지 유지했을 것이다. 괜찮은 조건으로 계약을 마치고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명절에도 자주 마주치지 못하는 '친척분'과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너 거기서 살 생각은 아니지? 거기서는 젊은 시절 경험만 쌓고 삶은 한국으로 와서 살아라."


 귓등으로 흘려 들어도 될 이야기지만 상대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부모님이 여기 계신데, 헛바람 들어서 밖으로 싸돌아 다니지 말고 적당히 놀고 돌아와.'


사실 당시에는 역시 '귓등'으로 들었지만 해외에서 일하다가 문뜩 그말이 떠오르곤 했다. 특히 명절이 되면 화상통화로만 간간히 집에 전화했는데 그때마다 마치 뇌리에 밖힌 듯, 그의 말이 떠올랐다. 마치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이 큰 죄악을 끼치는 것 마냥.


 그의 말이 나의 귀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사건마다 그의 눈빛과 말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이후 나는 귀국했으나 그 말을 했던 당사자는 아마 본인이 그 말을 했다는 사실마저 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 뒤에도 전혀 교류가 없었기도 했다. 다만 내 속에 있는 어떤 무의식을 그 말이 계속해서 자극했고 굉장히 결정적인 순간마다 큰 결정을 바꾸도록 하기도 했다.


 따지고보면 모든 것은 '선택'을 기준으로 죽거나 살게 된다. 내가 해외에서 돌아온 순간, 나는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나'를 죽인 것이며, 다시 귀국해서 돌아온 나를 살려낸 것이다. 그렇게 모든 순간, 인생이 극변하는 기준점에서 '선택'은 있고, 그 선택마다 무수한 나 중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죽여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실 나에게 했던 친척 어른은 그 뒤로 내가 한국에서 애를 먹고 있는 동안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 뒤로 어떤 배움이 생겼다. 어떤 사람에게 '충고'를 할 때는 꽤 신중한 편이 좋겠다. 그 충고가 부정적인 방향일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람이 살면서 짓는 죄 중에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죄는 아주 극일부일지 모른다. 앞서말한 친척도 스스로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듯. 나 또한 무수한 말을 뱉었고 그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가능성을 '살해' 했을지 모른다. 이런 사회적, 심리적 원죄를 알고 뉘우치는 것은 정말 싶지 않다. 그러한 자기 인식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오만해서는 안되고 항상 겸손하고 '죄'를 '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실제 '나'의 몇 퍼센트나 알고 있을까.


모르겠다.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하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한번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정확히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머니는 나를 혼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몹시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분명 나의 죄는 아니었는데 어머니는 '분명하게 네가 했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 10살도 되지 않은 억울함이 30년도 더 지난 지금 궁금했다.


  그리고 왜 그러셨냐고 물었다.


그때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답하셨다. 젊은 나이에 일하고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고 스트레스가 쌓여 있지 않았겠느냐, 말씀하셨다.

 그리고 떠올려보니 내가 아이에게 화를 냈던 몇몇 상황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행복하게 지냈지만 어쩌면 아이는 불합리하게 혼났던 그 순간을 기억할지 모른다. 너무 바쁜 언젠가는 아이가 너무 시끄럽게 인형놀이를 한다고 혼을 내기도 했다. 육아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본인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 상대에게 기록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가 이해가 되고, 나의 잘못이 떠올랐다. 참 바보 같게도 나는 30년을 중심으로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중복되는 어머니와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마치 한번 녹화가 되면 지워지지 않는 녹화테이프가 돌아가듯, 나의 모습은 실시간으로 누군가에게 기록된다. 개중 나는 아주 극일부 스스로 인지한 면만 '나'라고 느낄지 모른다.


 '김영하 작가'의 '단 한번의 삶'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김영하 작가'의 소설보다 수필을 더 많이 읽어 본 독자로써.. 그는 역시 수필로도 글맛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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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아기 - 세계적 심리학자 폴 블룸의 인간 본성 탐구 아포리아 8
폴 블룸 지음, 김수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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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정신과 물질, 무엇이 먼저인가'

이 질문에는 두 개의 해석이 있다. 하나는 관념론이고 다른 하나는 유물론이다. 관념론은 정신이 우선한다고 본다. 인간의 의식, 사고, 감정, 신념이 세계의 근본이라는 의미다. 반대로 유물론은 '물질'이 우선이라고 본다. 인간의 의식은 '물질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칼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봤다. 그리고 종교나 도덕도 사회적 산물이라고 여겼다.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해석이다. 하나는 '사람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다른 하나는 '존재하니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모든 현실은 물질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의식, 도덕, 종교, 예술도 모두 물질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즉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그것이 칼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산업혁명 시기, 사회 불평등과 계급 갈등이 심해져가면서 노동과 계급이라는 물질적인 설명은 아주 유용한 해석 방식이었다. 다만 인간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특이하게 이익에 반하는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고, 비합리적인 신념이나 상징을 위해서 목숨도 바친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유물론이 이런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시 '이원론'이 나온다. 이원론이란 물질과 정신은 둘다 실재한다는 생각이다. 이 둘은 모두 실재하고 분리된 실체다. 육체와 정신은 별개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물질과 관념도 마찬가지다.

몸이 죽어도 마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원론은 유물론과도 관념론과도 충돌할 수 있지만 이 둘을 모두 포용하기도 한다. '폴 블룸'의 '데카르트의 아기'는 이 철학적인 논장의 장에 '심리학자로서 개입'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원론적 직관을 갖고 태어난다.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고, 정신적 존재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갓 태어난 아기'가 필요하다.

'아기들은 움직이는 인형을 보면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표정을 보면 '감정'이나 '목적'이 있다는 추론을 하기도 한다. 불공정한 상황에 분노하고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과 돕는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인간'의 이런 특성은 '사회화 이전' 즉, '말도 하기 전 아기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다시말해서 인간은 도덕성, 이원론, 영혼과 같은 관념론적인 개념을 '학습'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다'라고 배운다. 혹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마라'라는 말도 배운다. 심지어 수천년 전에 죽은 누군가의 영혼을 위해 기리는 일도 한다. 우리 인간은 수만 년 동안,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로 앞서 말한 우리의 본성은 '진화의 과정'에서 얻어진 산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 '말투', '의도'를 본능적으로 해석하려는 심리장치를 진화 과정에서 갖게 되었고, 그것이 곧 정신의 실쟁성을 믿게하는 토대가 되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초월적 진리를 믿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그러한 초월적 진리는 없다는 것.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두뇌'의 자동 반응을 이야기 한다. 다시말해서 '데카르트의 아기'는 철학적 관념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인간이 왜 그렇게 관념론적인 사고 방식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우리가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은 '진화'의 방향이 그랬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태어난 존재라는 것.'

우리가 가진 신념과 감정, 정의와 도덕은 어쩌면 어딘가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진화의 산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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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챙겨
김영희 지음 / 상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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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자면 나도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여행을 취미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여행을 다닌다'라는 의식도 없던 편이지만 대략 생각해보니 그것들이 다 여행이더라... 싶다.

아마 첫 해외 여행이라면 일본 '큐슈' 지역이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곳이다.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을 갔던 기억이 있는데 느낀 바라면, '일본차들은 왜 그렇게 작고 깨끗한가' 또한 질서를 지킬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좁았던 좁은 길 정도의 인식이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질랜드'를 갔다. 목적은 여행은 아니다. 유학으로 갔던 곳에서 '오클랜드'의 구석구석을 다녀왔고 3년을 거기서 거주했다. 이후 뉴질랜드 북섬의 '화카타네' 지역과 네이피어지역에서 수 년을 더 살았고 로토루아 지역에을 방문하여 여행을 했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1~2년을 거주하다가 '랑기오라'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얼마 간 지냈다. 귀국 직전에는 퀸스타운, 시드니, 싱가포르 등지를 여행이나 사업차 다녀왔다.

시간을 더 보내고 베트남, 태국을 다녀왔고 얼마 뒤에는 중국 상하이를 다녀 왔으니, '저는 여행을 잘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대체로 '저는 여행을 잘 다니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는 타입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밖에 국내여행도 적잖게 다녔던 것 같은데...

사실 그 목적을 '여행'이라고 두지 않아서 뭔가 '여행'의 흥분되는 감정을 갖지 못했을 수 있다. 아이와 다녔던 여행에서는 '아이에게 좋은 걸 보여주자'가 대부분이었고 유학하던 시기에는 그게 그냥 삶이었다. 수출을 위해 바이어를 만나러 갔을 때도 그냥 사업차 갔던 것들이다.

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들이 다 여행이었다라고 볼 수 있다.

여행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분명 멀리멀리 떠나지만 최종 목적지가 결국 집이라는 점이다. 최종 목적지가 집이 아닌 여행은 거의 없다. 항상 돌고 돌아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도착하지 않는 여행은 흔히 '이민'이나 '이사'라고 부르니, 결국 내가 돌고돌아, 제주 이곳에서 일상을 살고 있어서 그 모든 것이 여행이 되어 버린 셈이다.

김영희 작가는 칭찬합시다, 느낌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제작자다. 그 역시 삶에서 필연적으로 다양한 지역을 돌아 다녔을 것이다.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그런 외부 경험을 쌓은 사람은 과연 '삶'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그의 에세이를 살펴보자니, 그에게 '삶'은 곧 여행인 듯 하다.

뉴질랜드 남섬에서 누군가는 수백만원을 들여 큰맘 먹고 찾오는 여행지에서 나는 그들을 마주했다. 나의 머릿속에는 짧은 주말 뒤에 있을 주간 일상의 일정이 있었고 그들의 머릿속에는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삶을 '일상'으로 정의하는 순간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지겠느가. 내가 지금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정만 되어 있더라도 나는 내가 나가 있던 모든 순간을 즐기고자 했을 것이다. 내가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그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거주하고 있는 이 '제주'도 누군가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지'일 것이다. 내가 오늘 그들의 기분을 이곳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과 이순간이 나에게는 그저 일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만 마음속에 갖고 있더라도 나는 오늘 아침을 특별하게 맞이 하지 않았을까.

뉴질랜드에서 '소매품 매장 점장'을 하고 있었을 때, 당시에는 참 당연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낭만적인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이 구매하는 목록이다. 다양한 일상 용품중에서 꾸준한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 중 하나는 '엽서'다.

축하 카드라던지 기념일 카드 같은 것들이 종류별로 있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매일같이 사고 손편지를 주고 받았다. 어떤 이들은 카운터에 엽서를 놓고 빠르게 글을 써서 가짜 꽃과 함께 구매하고 나갔다.

그 당시에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있었고 카카오톡이나 다양한 메신저들이 있었다. 그러나 10대부터 90대 할 것 없이 그 사람들은 그 카드를 사러 매장을 방문했고 '카톡 보내면 되지, 왜 저런 걸 사지?'하던 낭만 없던 청년은 지금에 와서 그들의 낭만을 부러워하고 있다.

삶이란 그런 듯 하다. 효율이나 득실만 따지고보자니 돌이켜봐서 남는게 하나가 없다. 사실 다시보건데 가장 많이 남는 것이라면 '당시' 참 비효율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여행지'에서 잃어버린 스마트폰이라던지, 바가지를 썼던 기억, 상한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

해외에서 다양한 업종에서 일했고 다양한 커리어를 쌓았지만 그것이 지금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 떠올려봤더니 그닥 크지 않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유익한 것은 어쩌면 비효율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여유로움과 낭만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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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지 말 것 사랑을 할 것
슈히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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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비싸고 예뻐도 맞지 않으면 신발은 상처만 남긴다. 벗어 두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있더라도 아프게 한다면 반드시 벗어야 한다. 그것이 신발의 본질이다. 본질을 상실한 '신발'은 반드시 벗어야 한다.

어떤 신발은 익숙까지 시간이 걸린다. 걷다보면 내 성격과 성향에 맞게 신발 밑창이 닳기 시작한다. 발을 감싸는 헐거움도 점차 맞게 된다. '새것'으로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을 때 없던 무언가가 점차 생겨가며 나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과거 가장 좋아하던 신발 중 하나가 있었다. 흔히 '명품구두'였다. 평생 그런 구두를 신을 일이 있을까, 싶은 그 구두를 아껴 신었다. 그러다가 그래, 아끼면 똥된다. 그런 기분으로 아낌없이 신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의 반짝거림은 상실하고 완전히 허름한 구두로 바뀌었다. 얼마나 신었던지 웬만한 운동화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어딜가나, 그 구두만 신었다. 험한 일정이 있을 때도 생각없이 그 구두를 신고 나갔다. 복장은 물론 상황에도 어울리지 않은 '구두'는 어느덧 나를 '상황에 적절치 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꼭 그런 것 같다. 아무리 나에게 맞는 구두라고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반드시 바꿔 신어야 하는 그런 것...

맞지 않아 아픈 신발을 신고 한참 걸었던 경험도 있다.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신경쓰며 아픈 발 쯤이야, 언젠가 벗어버릴 귀가 시간을 기다리며 참았던 적도 있다. 구두로 빗된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다.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삶의 대부분에 적용되는 철학이 하나 있다.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뭐든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인간관계도, 돈도, 직업도, 공부도 그렇다.

나에게는 꽤 과분한 직업, 연봉, 인간들이 스치고 지나갔던 적이 있다. 그것이 지속 가능했다면 나는 더욱 좋은 위치에 있었겠다. 다만 나는 그것들을 다음 주인에게 양도하고 자리를 떠났다. 내가 비워둔 그 자리 덕분에 누군가는 더욱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았겠지만 나는 한동안 참고 방황하고 힘들어했다. 버텨보려 했던 시간에 대한 '매몰비용'을 탓하며 자신을 허비하곤 했다.

그렇지 않은가. '어린왕자'에서 왕자는 지구에 도착해 수천 송이의 장미를 바라본다. 그러다 사실은 아름답고 고귀한 장미가 지구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여우'가 말한다.

'장미꽃이 소중한 이유는 네가 그 꽃에게 바친 시간 때문이야'

어쩌면 우리는 상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넘겨 준다. '자신의 시간', '자신의 '삶' 말이다.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상대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상대를 아끼는 것은 어쩌면 상대에게 묻혀둔 자신의 시간과 삶 때문일지 모른다.

아주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랑은 상대보다 자신의 시간과 감정에 대한 미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것이 맞는지 모른다. 내가 들였던 시간과 감정 그런 것들이 상대와 관계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나는 내가 내어준 시간과 삶만큼이나 상대의 그것을 앗아왔다.

내가 내어 준 것만 생각하기에 그토록 이기적인 사랑이 다시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빚을 지은 셈이다. 상대의 시간과 감정, 삶을 일부 앗아왔다니...

함부로 그에게 할 수 없는 이유다.

인간관계는, 고로 애초에 ‘좋은 사람’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나의 시간과 감정을 내어주고 상대의 시간과 감정을 앗아오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의 것을 주고 받는다. 그렇게 나의 것을 내어주고 상대의 것을 가져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상대와 나에게 모두 흔적을 남긴다. 신발 밑창에 난 닳아 사라진 흔적들 처럼 말이다.

결국 관계는 지속될수록 삶을 닮은 구두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관계는 그 자체로 유해하다. 나를 깎아내고 상대의 것을 훔쳐 오는 행위다. 그것은 결국 ‘소진’이다. 자신을 소진하고 상대의 것을 소진시키는 행위다. 진짜 좋은 관계는 나를 성장시키고 가끔 아프더라도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한다.

구두도, 사람도, 인연도...

닳았다고 바꿔 버리면 결코 나에게 맞는 신발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아픈데도 버텨서는 안되다.

신발은 분명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지만 신발이 없다고 죽을 수는 없다. 사실 잠을 자고 씻고 생활하는 대부분의 시간에서 언제나 신발은 '신발장'에 있을 뿐이다. 

때로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맨발로 걷는 길은 다소 아플 수 있지만, 그제야 진짜 나의 걸음걸이를 다시 찾게 된다. 결국 서로 얽혀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가끔 자신이 온전하게 되는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 자식과 부모, 하물며 배우자와의 관계도 그렇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지속하는 태도다. 그런 맥락에서 슈히 작가의 신간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사랑을 할 것'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용기와 태도, 그리고 내가 내 편이 되는 사랑의 방식에 대해 담담하고 단단하게 풀어낸다. 지금, 아픈 신발을 벗고 맨발로라도 걷기 시작해야 할 누군가에게 이 책은 작고 확실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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