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아기 - 세계적 심리학자 폴 블룸의 인간 본성 탐구 아포리아 8
폴 블룸 지음, 김수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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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정신과 물질, 무엇이 먼저인가'

이 질문에는 두 개의 해석이 있다. 하나는 관념론이고 다른 하나는 유물론이다. 관념론은 정신이 우선한다고 본다. 인간의 의식, 사고, 감정, 신념이 세계의 근본이라는 의미다. 반대로 유물론은 '물질'이 우선이라고 본다. 인간의 의식은 '물질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칼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봤다. 그리고 종교나 도덕도 사회적 산물이라고 여겼다.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해석이다. 하나는 '사람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다른 하나는 '존재하니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모든 현실은 물질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의식, 도덕, 종교, 예술도 모두 물질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즉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그것이 칼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산업혁명 시기, 사회 불평등과 계급 갈등이 심해져가면서 노동과 계급이라는 물질적인 설명은 아주 유용한 해석 방식이었다. 다만 인간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특이하게 이익에 반하는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고, 비합리적인 신념이나 상징을 위해서 목숨도 바친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유물론이 이런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시 '이원론'이 나온다. 이원론이란 물질과 정신은 둘다 실재한다는 생각이다. 이 둘은 모두 실재하고 분리된 실체다. 육체와 정신은 별개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물질과 관념도 마찬가지다.

몸이 죽어도 마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원론은 유물론과도 관념론과도 충돌할 수 있지만 이 둘을 모두 포용하기도 한다. '폴 블룸'의 '데카르트의 아기'는 이 철학적인 논장의 장에 '심리학자로서 개입'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원론적 직관을 갖고 태어난다.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고, 정신적 존재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갓 태어난 아기'가 필요하다.

'아기들은 움직이는 인형을 보면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표정을 보면 '감정'이나 '목적'이 있다는 추론을 하기도 한다. 불공정한 상황에 분노하고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과 돕는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인간'의 이런 특성은 '사회화 이전' 즉, '말도 하기 전 아기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다시말해서 인간은 도덕성, 이원론, 영혼과 같은 관념론적인 개념을 '학습'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다'라고 배운다. 혹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마라'라는 말도 배운다. 심지어 수천년 전에 죽은 누군가의 영혼을 위해 기리는 일도 한다. 우리 인간은 수만 년 동안,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로 앞서 말한 우리의 본성은 '진화의 과정'에서 얻어진 산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 '말투', '의도'를 본능적으로 해석하려는 심리장치를 진화 과정에서 갖게 되었고, 그것이 곧 정신의 실쟁성을 믿게하는 토대가 되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초월적 진리를 믿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그러한 초월적 진리는 없다는 것.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두뇌'의 자동 반응을 이야기 한다. 다시말해서 '데카르트의 아기'는 철학적 관념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인간이 왜 그렇게 관념론적인 사고 방식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우리가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은 '진화'의 방향이 그랬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태어난 존재라는 것.'

우리가 가진 신념과 감정, 정의와 도덕은 어쩌면 어딘가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진화의 산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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