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크리스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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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나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편견은 나쁘지 않다. 편견은 쉽게 말해 일반화다. 다양한 정보를 인식하기 쉽도록 패턴화하는 일이다. 일반화를 위해선 수많은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직관력'이 길러지면 이것을 '일반화'라 한다. 편견은 사전적 용어로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한다. 그런데 원래 모든 것은 어느쪽으로나 치우쳐져 있다. 남자와 여자, 백인과 흑인은 전혀 똑같지 않다. 고양이와 개는 전혀 똑같지 않고 시금치와 코끼리도 전혀 똑같지 않다. 우리가 인식하는 대부분의 대상은 이처럼 각각의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 이것이 모두 다르지 않다는 것은 유토피아적 상상력일 뿐이다.

얼마전 디즈니에서 개봉한 '인어공주'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인어공주가 왜 흑인이어 하는가에 대한 말이다. 얼핏 이 말은 듣기 좋다. 그렇다면 왜 인어공주는 '여자'여야만 하는가, 왜 머리가 아니라 '다리'가 인어'여야 하는가. 왜 물밖이 아니라 물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을 모두 편견으로 한다면 서른 일곱의 수염난 동아시아 청년이 인어 공주가 될 수도 있다.

PC사상은 '정치적 올바름'을 뜻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인종, 민족, 언어, 종교, 성별 등에 의한 편견을 없애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모든 인종은 똑같고, 언어, 종교, 성별은 모두 같은가. 그렇지 않다. 모든 인종은 다르고, 민족도 다르다. 언어도 다르고 종교, 성도 모두 다르다. 다른 것을 보고도 다르다 말하지 않고 같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름'이라는 사상을 지키고자, 거의 모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오류를 낳는다. 쉽게 말해 스스로 다름을 보고도 같다 말하는 것이 그렇다. 이들은 또다른 의미의 차별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혐오주의에서 벗어나는 가장 기본된 자세다. 전혀 다르지 않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 말로 또다른 혐오를 낳는다. PC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이들은 다름을 다르다고 말하는 이에게 '선민의식'을 갖는다.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을 남들에게 보이려 한다. 이 도덕적 우월함은 필연적인 '모순'을 만들어낸다. 왜냐면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것은 똑같다'. 그렇다면 성별과 인종, 종교가 모두 똑같은 것 처럼, PC주의와 반PC주의도 같아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존중은 나온다. 인어는 여자여야 한다. 물속에 살아야 하고 백인이어야 한다. 머리보다는 다리가 인어여야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생각은 가끔 편견을 깰 때 발생한다. 지난 10년 남반구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산타가 눈오는 날, 두꺼운 외투를 입고 온다는 편견이 깨졌다. 내가 살던 곳에서 산타는 언제나 반팔로 나왔다. 거기까지가 신선함의 영역이다. 여기서 정도를 벗어나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면, '산타'는 괴상망측해진다. '산타'는 왜 백인이어야 하는가. 피부를 검은색으로 바꿔보자. 산타는 '왜' 남자여야 하는가. 여자로 바꿔보자. 왜 노인이여야 하는가. 3살배기 아이로 바꿔보자. 왜 빨간 옷을 입어야 하는가. 파란색으로 바꿔보자. 왜 사람이어야만 하는가. '사슴'으로 바꿔보자. 왜 선물을 주어야 하는가. 훔치는 쪽으로 바꿔보자. 이제 편견을 완전히 배제한 순수무결한 산타가 완성됐다. 산타는 파란색 옷을 입은 3살 된 검은 피부의 암컷 사슴이 됐다. 이제 반대의 메커니즘으로 루돌프를 '빨간 옷을 입은 백인 노인으로 바꿔보자'. 이런 괴상망측함은 정도를 지날수록 '언어 와해'일 뿐이다.

편견은 나쁘다. 다만, 정도가 지나친 편견이 나쁘다. 우리 사는 세상은 일반론적이다. 우리의 뇌는 다양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인식하기 위해 '패턴화' 작업을 한다. 패턴화 작업은 새로운 정보를 처음부터 학습하지 않고 이전 경험을 활용하여 빠르게 판단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고로 경제적이다. 이것은 효율적으로 생각하고 두뇌자원을 활용하도록 돕는다.

이런 일반화는 새로운 상황이나 정보에 대해 빠른 적응력을 키웠다. 이에 대한 생존력을 향상시켜켰다. 수 세기 전, 배를 타고 대륙을 건너왔던 백인을 마주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총, 균, 쇠'에 의해 멸종을 당했다. 완전히 새로운 이들과 마주하는 것은 일정의 위협이기도 하다.

일반화는 추상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 시킨다. 이것은 문제를 이해하고 관련성을 파악하는 속도를 높인다. 패턴을 인식하여 일반화하는 작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습'의 기본이다. 신경학적 연구에 따르면 뉴런 간의 연결성과 신경 회로 형성은 '반복'에 의해 이루어진다. 반복에 의한 패턴 학습은 '신경 회로'를 넓혀 학습능력을 크게 만든다.

2000년이 넘은 공자의 말은 지금도 널리 사용된다. 2000년이 넘은 구닥다리 격언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아직 사회 저변에 공자에 대한 신뢰는 남아 있다. 공자는 이처럼 '정의'하지 않는 사회를 경멸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질서가 무너진 사회를 경험했다. 그가 말하길 '군군신신부부자자'라고 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이것이 모두 편견이면 임금은 신하답고, 신하는 임금다우며, 아들다운 아버지, 아버지 같은 아들이 나온다. 그것은 얼핏 신세계지만, 결국은 분열이다.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세계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모든 것은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질서가 사라지면 사회는 분열된다. '정치적 올바름'은 결국 '올바름'을 말하는 듯 하지만, 분열의 '형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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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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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인간에게 쏟아진 정보의 양은 대략 85쪽 분량의 신문을 매일 40종 읽는 것과 같았다. 이 정보는 텔레비전, 라디오, 독서를 모두 합친 양이다. 다만 2007년에는 그 양이 3배로 늘었다. 대략 174종의 신문을 읽는 정도의 정보량이다. 이때가 스마트폰이 출현한 시기니, 그 뒤로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을 것이다. 정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집중도'가 떨어짐을 의미한다. 처리할 정보가 많아 대충 훑고 빠르게 넘긴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붐비는 슈퍼마켓을 뛰어다니며 필요하다 싶은 물건을 마구자비로 계산대 위에 올리는 바와 같다. 정보가 많으니 진득하니 살펴 볼 여유가 없다. 영양분은 어떤지, 가격은 어떤지, 경쟁사와의 차이는 어떤지에 대해 살펴 볼 여유는 없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이처럼 정보의 과부하에 의해 몰입을 상실한다. 사람들은 점차 긴글을 싫어하고 필요한 정보만 선별적으로 찾아낸다. 이런 훑기식 읽기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정보 선별 과정은 습관이 된다. 인간의 뇌는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스스로 자체 변형을 한다. 이를 '뇌의 가소성'이라고 부르는데, 자주 사용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뇌의 구조가 재배치된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빠르게 캐치하기 위해서는 '망상활성계'라는 두뇌 필터 시스템이 가동된다. 고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확증편향'과 '정보의 비대칭'을 야기하게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SNS는 이를 체계화하여 아예 알고리즘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고로 사용자가 본인의 관심사에 맞춰 필터링 된 정보 속에 갇히기 된다. 이를 '필터버블'이라고 한다. 흔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렇다. 생각이 편협해지고 깊은 사고를 할 수 없는 뇌의 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SNS를 비롯한 IT기업들은 사용자로부터 수익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들의 수익 구조를 살펴보면 대체로 '광고주'로부터 수익이 발생한다. 광고 수익은 그들의 '체류시간'과 '클릭률'을 통해 계산된다. 고로 대체로 많은 IT기업들은 사용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한 온갖 노력을 한다. 이처럼 주의력을 끌려는 노력들이 많아지면 당연히 주의는 산만해진다. 그렇다고 이 IT기업들이 '사용자'의 '정신건강'까지 유념하진 않는다. 이들에게 직접적인 수익을 발생시키는 쪽은 '광고주' 쪽이지 '사용자' 쪽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IT기업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한다. 마치 그것이 공공재인 것 처럼 당연시 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광고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한 기업들은 현재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 했다. 앞서 말한 IT공룡 기업들은 사용자의 '주의력'을 연료로 삼아,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주의를 끌어당겨 붙잡아두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자극을 주기 때문에 컨텐츠의 속도는 빠르고 분량은 짧다. 이 짧은 컨텐츠에는 많은 정보를 담을 수는 있지만, 생각할 여유는 주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한 주제에 대해 꽤 긴 시간의 논리 흐름을 따른다. 이 과정에서 비판적인 생각과 비교를 할 수도 있다. 갑자기 어린 시절의 생각을 떠올리기도 하고,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다른 생각에 빠질 때도 있다. 이렇게 정보와 함께 섞여 새로운 생각을 탄생시키는 전체의 과정을 '독서'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의 주의력을 빼앗을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그들로 부터 체류시간을 얻어 낼 것인가. 그것을 고민하면 수익성은 올라간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에서 현대인의 대부분은 주의력을 상실했다. 우리는 그렇게 집중력을 도둑 맞는다. 가상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실감하지 못 할 수도 있다. 또한 아주 천천히 오랜 기간 진행된 일이기에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마치 끊은 물의 개구리처럼 말이다. 피부에 와닿을 수 있도록 이 상황을 현실로 옮겨보자. 사회는 마치 '조지오웰' 소설의 '빅브라더'처럼 모든 상황을 감시한다.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정보를 취합한다. 이후 생각마저 읽어 낸다.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보다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주의를 끌어 당긴다. 관심있게 지켜보던 상품을 매순간 옆에 진열해 두며, 싸게 판매한다고 구슬린다. 이들의 집요함은 밥 먹는 동안에도, 화장실에서도, 혼자 있을 때나 누구와 함께 있을 때도 여지 없다. 난데없이 불쑥 찾아와서 주의를 끌어 당긴다. 이들의 영업실력은 수준급이기에, 이들이 만들어내는 '영업소득'은 이들을 세계적인 마케팅 회사로 만들었다.

'주의를 끌어서, 오래 체류하게 하라, 그것이 돈이다.'

그들의 사업구조에 따르면 우리는 고객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다. 그저 주의력만 사용되고 버려지는 이용자일 뿐이다. 고로 우리는 스스로 잠을 줄이면서 '정보'에 노출되고, '대충' 먹으면서 '정보에 노출된다. 그들에게 체류시간이라는 연료를 채워주느라 주의력을 모두 소진해 버린다.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사용해야 할 집중력을 그들에게 써버리고 빈껍데기가 되어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장애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주의력 도둑질'에 의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이런 장애를 벗어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느려지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을 통해 몰입의 경험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집중력을 지키고 온전하게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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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고 이야기 - 공교육의 비밀 병기
임혜림 외 지음 / 포르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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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고등학교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비평준화 일반고다. 이 학교는 교육환경이나 시설은 자사고와 비슷하다. 다만 일반고이기 때문에 기숙사비나 활동비를 제외하면 납부금이 적다. 설립 초기에는 군인 가족들을 위한 학교였다. 직업군인 특성상 근무지 이동이 잦은 편이라, 군인 자녀들은 전학을 자주 다녀야 했다. 이들의 정착을 위해 한민고는 설립됐고 기숙사도 운영한다. 한민고의 특징이라면 '철저한 공교육 중심'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하는 힘에 대해 굉장히 강조한다. 코로나 시기 대부분의 학생들이 많이 상실한 부분이 '자기주도학습'이다. 자기주도학습이란 본인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수행하는 학습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동기부여'가 함께 들어간다. '동기부여'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행위의 본질'이다. '행위의 본질'을 깨닫는 것을 '철학'이라 한다. 고로 스스로 하는 행위에 대해 주체성을 갖고 있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쌍둥이를 기르고 있다. 쌍둥이에게 특별히 명문대 입학을 권고하고 싶진 않다. 살아보니, '명문대 입학'은 별로 중요하진 않아 보인다. 흔히 재벌 총수나 자수성가형 부자들의 학력은 좋다. 삶의 기준을 돈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어떤 분야, 어떤 목적에 달성한 이에게 '부'는 저절로 따라오기도 한다. 어쨌건, 그들을 볼 때, 학력을 통해 그 위치에 올라간 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학과와 상관 없는 업종에서도 두드러진 업적을 갖는다. 가령 가수로 성공한 '박진영 프로듀서'는 연세대 지질학과를 나왔다. 요식업에서 성공한 백종원 대표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나왔으며, 셀트리온이라는 제약회사 창업주 '서정진' 회장은 건국대 '산업공학'을 나왔다. 하이브의 '방시혁' 대표는 서울대 인문학과 출신이다. 그밖에 대한민국, 산업 전반에 걸쳐 명문대 출신들이 대다수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학교 이름을 등에 엎고 성공하지 않았다. 그들의 전공은 완전히 다른 분야의 것이며 그것은 대한민국에서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하면 떠오르는 인물이지만, 그는 지질학자였다. 빌게이츠는 수학과 법학을 전공했고, 마윈은 영어교육을 전공했다. 학창시절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학교보다는 '전공'이 중요하다."

그것은 꽤 합리적인 말 같다. 다만 다시 생각해보면,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에 달성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는 모두 명문대를 자퇴했다. 둘 다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 성공했다. 그들이 쌓은 '자산'의 가치를 차치하고 그들이 목적은 분명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알았다.

여기서 목적이란 '주체성'을 분명하게 하는 일이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를 보면 그 가장 아래, '생리적 욕구'가 있다. 그 위로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는 많이 없다. 고로 현대인들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다. 그것은 분명하게도 '주체성'과 연관된다.

나의 인생의 가장 큰 지향점은 '주체성'이다. 꿈을 물어보면 '직업'을 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의 꿈은 '주체성'이길 강력하게 바란다. 얼마 길지 않은 세상을 살아보니, 삶은 '선택'의 연속이지, 미리 짜 둔 계획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고로 열 살에 했던 생각이 스무살에 달라지고, 서른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생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롯데 신격호 회장의 꿈은 '문학가'였으나, 결과적으로 '사업가'가 됐다. 조금 잔인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철학'이 분명한 이들은 다른 분야에도 분명 두각을 들어냈을 것이라고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 사람이 하나를 갖기에도 부족한 능력을 십 수개나 가지고 있었다. 신은 공평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재능을 부여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을 살펴보면, 그저 목적을 달성하는 이들이, 다른 목적에 달성하는 방법도 수월하게 알기도 한다.

만약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분명하게 있다면 나는 우리 아이가 '고졸'이라도 괜찮다고 본다. '고졸'이라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졸'이 더 낫다고 보여진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직함 가득한 명함'을 받을 때가 있다. 너무 어려운 말들이 많아서 '나 같은 사람'은 도대체 그 사람에 대한 가늠도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신을 수식하기 위해, 직함, 가짜 팔로워, 허세 가득한 이름들을 붙이는 것은 '허영심'이다. 때로 우리 사회는 명품 가방을 매고 다니는 것처럼 '학력'이라는 '허영심'을 채우고자 스무살부터 4년 간, 원하지 않는 전공 과목을 꾸역 꾸역 배워 졸업한다.

대학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대학 이름은 목적을 달성하는 연습을 하는 과정에 주어질 뿐이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읽고 생각하는 일'이며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민고'는 학생들에게 주도적인 학습을 강조하고 독서를 강조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교는 가지 않아도 좋지만, 저런 교육 과정에 놓였으면 하는 부러움이 있다. 다만 한민고는 경기도권 학생을 위한 전형과 군인 가족을 위한 전형 밖에 없다고 하니, 조금은 아쉽다. 나중에라도 타지역 학생을 위한 전형이 나온다면 잊지 않고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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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인, 중국상인, 일본상인
이영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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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사람을 만나다보면 국적에 고정관념이 생긴다. 해외 생활 10년, 희미하게 생긴 그것은 차별과 차이의 경계를 아슬히 넘나들었다. 동아시아 문화권은 서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 또한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다. 그래서 더 공통점을 찾게 되고, 더 차이점을 찾게 된다. 표면적으로 비슷한 한, 중, 일. 그러나 이 셋은 생각보다 다르다. 이들이 차이는 무엇일까.

해외에서 간혹 듣는 말이 있다. '한국인을 조심해라.' 유학생 사이에서 통용되던 말이다. '한국인을 믿지 말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말은 일반적이진 않지만 쓰여진 이유도 분명은 있다. 다양한 사람을 겪었다. 국적마다 비슷한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중국인' 커뮤니티는 견고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끼리 돕고 끈끈하다. 항상 그들끼리 모이되, 서로의 경계가 견고하다. 좁은 경험에 따르면 그랬다. 그들에게 사용되는 '만만디'는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 임은 분명하지만, 모든 상황에 그것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답게 달성 목표가 있으면 열정적이기도 하다. 과거 내가 살던 아파트는 중국인 아파트였다. 중국인들의 커뮤니티가 견고하다. 견고하다는 것은 배타적이다. 배타적인 것은 내부 결속이 높다. 그 성향을 확인했다.

둘째, 일본의 경우, 비교적 커뮤니티가 견고하지는 않다. 이는 폐쇄성은 갖고 있지만 폐쇄성은 '타국가'에 국한되지 않다. 이들은 같은 일본인들끼리도 연결성이 없다싶은 경우는 외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그닥 강한 편도 아니다. '배척'보다는 '무관심'이 크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해외에서 아르바이트 고용하고 세금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적잖다. 한국인 고용주는 대체로 한국인 직원을 선호하는데 이유는 '성실하고 융통성있다'는 것이 이유다. 다만 이것은 고용주 입장에서 장점일 수 있으나 고용인 입장에서는 법의 보호와 비보호 사이를 '믿음'이라는 모호한 연계 사이에 있다. 일부 악성 고용주는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한인 커뮤니티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런 문제로 고용인들은 언어가 해결된다면 한국인 고용주 아래에서 일하는 것을 피한다.

무역사업을 할 때도 비슷했다. 원칙을 중요시 하는 일본과 다르게 한국과 중국은 나름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나름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꽤 모험이라 여기지만 한국과 중국의 경우, 그것을 사업 수완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한국과 일본은 언어와 문화가 비슷하다. 감정적으로 한국인은 일본인과 더 친밀감을 느낀다. 아마 발음과 어순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 그런 듯 하다.

예전 중계업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수출로 단가마진을 얻었던 적있다. 이 때, 샘플이 현지에 도착했었다. 당시 거래금액은 현지에서도 저렴한 편이었다. 다만 보내는 쪽도 나쁘지 않은 괜찮은 거래였다. 첫 샘플은 40피트 컨테이너가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적인 사업이 동종업계에 빠르게 소문이 났다. 이후 1차 상품이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현지 반응도 좋았다. 이후 2차 상품 거래를 위해 현지를 방문했을 때, 바이어는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바이어는 우리에게 알고 있는 회사냐며 물었다.

거기에는 꽤 익숙한 한국 유통회사의 이름이 있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금액으로 조건이 제시되어 있었다. 바이어는 제3의 제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저 조용히 거래처를 바꿔도 되지만,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생각에 우리쪽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 사업가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이었다. 우리가 흔히 '중국'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되려 믿을 수 없는 쪽은 바이어가 보더라도 상도덕 없는 행동을 했던 상대 한국 무역업자였다.

앞서 말한 세 국가의 특성은 분명하다. 실제로 중국에는 꽌시 문화가 있다. 흔히 말하는 인맥을 통한 사업이다. 영화 '범죄의 전쟁'을 보면 주인공 '최익현'은 굉장히 많은 일을 '인맥'을 통해 해결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많이 사라진 모습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런 비즈니스가 '시스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과 미세하게 알고 있는 문화적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심지어 냉혹한 비즈니스에서 큰 돈이 오고가면 더욱 그렇다.

과거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인공지능이 번역을 완전하게 하게 될 시대에 언어공부의 필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 생각을 모두 배우는 것입니다.'

비즈니스도 그렇다. 단순히 '인공지능 번역기'를 통해, 상품을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거래처의 누군가와 감정적 교류를 하고 문화와 생활방식,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역이건, 사업이건 아무리 냉정하다고 해도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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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어 고전 시가 1 - EBS 장동준 선생님과 함께 만화로 쉽게 공부한다! 고등 생강 시리즈
장동준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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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은 왜 시를 썼을까? 고대인들의 흔적에 '소설'이나 '수필'은 없다. 고대인들은 대체로 '시'를 남겼다. 왜 그들은 '시'를 남겼을까? 인류는 최초의 흔적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림은 별 다른 교육이 없어도 쉽게 의미를 전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보가 점차 많아졌다. 인류는 '추상적인 정보', '감정', '철학'을 남기고 싶었다. 이처럼 '그림'으로 남기기 모호한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다른 수단을 발견해야 했다. 그 당시 인류에게는 또다른 고민이 있었는데, '그림'은 추상적인 정보를 남기기도 어려웠지만 꽤 작업시간이 길었다. 이들은 대체로 동굴의 벽이나, 동물의 뼈, 돌에 기록을 남겨두곤 했는데 그것을 긁어 내는 작업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과 같이 종이와 펜을 가지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 영어에서 '기록하다'와 '긁다'의 어원은 둘다 'scrib'으로 같다.

대략 4만 년 정도 쯤, 인류는 역사적 기록을 시작한다. 획이 많은 '그림'을 단순화 하여 '기호'로 만든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들은 기호를 '돌'이나 '뼈', '벽'에 새기기 시작했다. 기록 방법은 문화와 지역마다 달랐다.

크게 동양와 서양을 보면 지리적 위치에 따라 어떻게 문화가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서양의 남쪽 즉, 적도는 아프리카 대륙이 자리하고 있다. 반대로 동양의 남쪽은 태평양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인 이유로 동양은 강수량이 많고, 서양은 적다. 1000mm의 강수량이 돼야 생육환경이 되는 '대나무'는 빠르면 하루에 1미터씩 자란다. 풀이 짧게 자라, 목축에 유리하던 유럽이 동물의 '뼈'나 '가죽'에 기록하던 것과 반대로 동양에서는 '대나무'를 사용하 기록했다. 대나무는 빠르게 자라고 딱딱하여 기록하기 편했다. 이런 이유로 '한자'를 살피면 '글'과 관련한 문자에는 '대나무 죽'이 사용된다. 이 지리적 차이는 쓰는 방식에도 차이를 두었다.

대나무를 긁어내 문자를 쓰던 시기, 중국에서는 딱딱한 곳에 글을 쓰기 위해, 글자에 최대한 '곡선'을 제거했다. 한자에 곡선이 드문 이유다. 대체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새로쓰기를 한다. 또한 대나무의 마디마다 들어갈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었는데 고로 고대 동양의 문학은 대나무 마디 하나 정도에 들어갈 정보를 넣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 '기록'을 하는 방법이 '그림'에서 '기호'로 바뀌고, '기호'에서 '문자'로 바뀌면서 '교육'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문자'를 기록하는 작업속도가 빨라졌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대체로 문자를 다루는 이들은 '소수'이고 이 정보는 다시 '구두'로 '다수'에게 전달돼야 했다. 고로 구전 전통에 적합한 방식인 '시가'가 사용됐다. '시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구문'과 '리듬'인데, '구문'과 '리듬'은 기업하고 전달하기 쉽도록 도왔다. 또한 복잡한 상황에 대해 비교적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려다보니 '은유법', '의인법', '활유법' 등 다양한 수사법이 발전됐다. 그런 이유로 고전 시가는 점차 '고정된 형식'을 갖춰 시작하다가, '기록'을 하는 기술이 발전되면서 더 형식의 파괴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고대문학은 고로 '시'이자 '노래'의 성격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시가'이다.

고전 시가는 크게 고대가요, 향가, 한시, 시조, 사설시조 등으로 나눠지는데, 이는 인쇄술의 발전과 연관있기도 하다. 가장 오래된 '고대가요'의 경우, 문자수가 적고 함축된 내용이 담겨져 있다. 당연의 '의인법'과 '은유법'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고전시가'로는 '구지가'라고 있다. 구지가는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라는 내용의 노래다. 이 노래의 원문을 살피면 가로, 새로 글자수가 형식을 갖춰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가락국의 군중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 줄 임금을 맞이 하기 위해 불렀다. 즉, 이 노래에서 '거북이'는 실제 '거북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구지가는 '부족장'에 해당되는 '구간'이라는 존재 2~300명이 임금을 맞이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불렀던 노래다. 즉, 고전시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기와 배경이다. 고전시가는 조금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쉽게 말해, 단순히 옛 어휘나 한자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대인들은 문학을 대체로 '기록'의 용도로 사용했다. 최초에는 '감정'을 담는 용도 보다 역사의 기록 혹은 주술의 형태였다. 그러다 문자 매체가 발전하면서 점차 감정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진화해 나간다. 그렇게 '시조'가 등장하고 이어 '사설시조'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형식'의 본격적 파괴가 일어난다. 시대에 따라 문학을 구분하고 각 시대마다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본다면 '고전시가'는 우리의 언어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우 재밌는 문학이 된다. 원래 문학이란 '공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언어'나 '문자'로 하는 예술작품이다. 고로 암기하고 풀어내는 대상이라기보다 감상하고 즐기는 대상이어야 한다.

'스터디하우스'에서 출판한 '생강 국어 '고전시가'는 만화를 통해 빠르고 쉽게 내용을 이해 시킨다. 문학 공부가 만화처럼 쉬워야 하는 이유는 문학이 '그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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