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 - 일본의 퀀텀점프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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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일본 에도 앞바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군함들이 나타났다. 당시 일본의 배는 대부분이 목선이었다. 일본 배들이 '풍력'에 의존하던 시기다. 바람이 멈추면 배도 함께 멈췄다. 반면 미국에서 온 군함은 달랐다. 검은 군함은 '증기선'이었다. 석탄을 태워 움직였고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댔다. 바람과 상관없이 전진했고, 연기를 내뿜었다.


 선체는 검게 칠해져 있었고 대포가 노출되어 있었다. 이 배가 일본인들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다. 익숙한 배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사회는 '쇄국정책'으로는 더이상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도쿠가와 막부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개항을 둘러싸고 그들은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 내부 통제력도 약해졌고 막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1868년, 정치 권력은 막부에서 천황 중심의 정부로 다시 넘어갔다. 이 정권 교체가 '메이지 유신'이다.


 같은 시기, 조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역시 오랫동안 쇄국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도 서양 세력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었고, 이양선이 해안에 나타나 통상요구와 무력 시위를 하곤 했다. 본질적으로 조선이 받은 충격은 일본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여기서 '일본'과 '조선'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조선은 체제를 바꾸기보다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외세의 접근은 '막아내야 할 위협'으로 인식했고 통상 거부로 이어졌다. 덕분에 내부 권력 구조는 유지됐다.

 반대로 일본은 권력 구조부터 바뀌었다. 막부를 해체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 운영 체계를 다시 짰다.


 19세기 중반 미국과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공급력 폭발이 일어났다.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기계가 물건을 생산하면서 공급이 늘었는데 그것을 소비할 수요처를 찾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는데 물건을 판매할 판매처, 값싼 원료를 사올 수입처가 필요했다. 이 시기를 경제사에서는 '산업자본주의의 과잉 생산 단계'라고 본다.


 조금더 크게 보자면 '제국주의'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동아시아'의 입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꽤 다르다. 당시의 미국인구는 일본보다 적은 수준이었고 조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인구가 2500만에서 3500만 수준인 반면 청나라의 인구는 4억에 이르고 조선 인구도 2000만에 가까웠다.


 당시 서구의 입장에서 동아시아는 '문명화 해야 할 지역'이전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거대 소비 집단인 편이다.


 당시 '쇄국정책'에 대해서 지나친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동아시아 삼국이 쇄국을 유지하려던 이유는 지금의 무역 경제 논리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생산설비가 불균형한 두 국가간의 자유무역은 곧바로 후진국가의 국내 경제 붕괴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삼국의 경우에는 농업 중심 경제다. 화폐보다 '곡물'이 실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생산성이 낮고 미곡반출은 인건비 상승과 물가 상승으로 직결됐다.

 서양 공산품이 대량 유입될 경우, 값싸고 품질이 일정한 물품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경우에 국내 수공업 전통 산업이 바로 붕괴하게 된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쇄국은 '시대착오'라기보다 '경제 방어 정책'에 가까운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역시 '조선'과 마찬가지로 개방이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다만 1853년 검은 군함의 등장으로 일본은 '개방' 여부가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도 '제너럴 셔먼호'가 등장한다.


 여기서 차이점이라면 일본 앞바다에 온 '검은 군함'은 미국의 '해군 군함'이었고 '조선'이 마주한 배는 '미국 민간 상인'이 운용하는 '무장상선'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군함'을 통해 '외교 요구'를 받은 상황이고, '조선'의 경우에는 '민간 상선'이 '무단 침입'한 사건에 가깝다.


 이처럼 배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만들었고 결국 일본은 '개항'을, 조선은 '쇄국'을 선택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제도'였다. 제일먼저 '신분제'를 폐지했다. '사무라이'가 사라지고 '농민, 상인, 무사'는 법적으로 같은 신분이 됐다. 이는 프랑스나 미국에서 말하는 '사회적 평등'이라기 보다 '인력 동원'을 위한 정비에 가까웠으나 어쨌건 '일본사회'도 역시 근대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분명했다.


 1871년에는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했다. 지방 영주가 세금을 걷던 구조를 없애고 '국가'에서 직접 세금을 거뒀다. 이때부터 일본은 '국가' 단위 예산을 운용할 수 있게 됀다.


 또한 '세금'을 걷는 방식 역시 변화했다. '지조개정'을 통해 세금을 쌀이 아니라 현금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조치 하나로 일본 경제의 기준이 '곡물'에서 '화폐'로 이동한다. '쌀'이 반출되면 '물가가 상승'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기반이 만들어지면서 자유 무역구조에서 버틸 수 있는 최소 조건이 만들어졌다.


 근대화 초기에 일본의 산업정책은 더 직접적이었다. 초기에는 국가 주도적으로 공장을 세워 산업화를 시작했으나 이후 수익구조가 '민간'에게 넘어감녀서 '미쓰이, 미쓰비시'와 같은 대규모 자본 집단이 만들어졌다. 유학생을 대규모로 서구로 보내고 동시에 외국 기술자를 일본으로 불러 들였다.


 같은 시기 조선은 다른 선택을 했다. 조선은 '질서유지'를 위해 '개혁'을 뒤로 미루었다.


 '개항'을 '경제문제'가 아니라 '안보문제'로 인식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봤을 때, 조선인들은 안보적으로 나름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일본이 국가 주도로 인력을 재편하고 산업을 키우던 시기, 조선은 정치 불안과 민란을 위해 개혁을 '위험' 요소로 여기고 '체제 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구가 겪었던 것과 같은 단계에 진입한다.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고 생산량은 늘었다. 공급이 늘어나 국내 시장만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일본 역시 '넓은 판매처'를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내부 수요를 키우려고 했으나 한계는 분명했다. 사업을 하다보면 공장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공급이 과잉되면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온다. 고로 '시장확대'는 필연적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서구 국가가 문을 두드렸으나 끝까지 버텨낸 두 시장인 '청'과 '조선'이 남아 있었다.


 청과 조선은 여전히 완전히 열리지 않은 시장이었다. 조선과 청은 서구에게는 꽤 거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시장이었으나 일본에게는 달랐다.


 지리적으로 가가웠고 군사적 접근도 용이했다. 또한 이미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고로 일본 역시 서구가 했던 판단을 그대로 하게 된다. 


1876년 일본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선의 문을 연다. 강화도 조약은 통상조약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은 시장 개방에 가까웠다. 일본 상품이 들어오고 조선의 쌀과 자원이 빠져나갔다.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을 더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결국 근대화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역사를 감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선과 악, 가해와 피해의 구도로만 정리하면 그 시대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동아시아의 선택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이미 공급 과잉을 전제로 돌아가는 체제로 넘어가 있었고, 그 질서에 들어가지 못한 국가는 의지와 무관하게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그 구조에서 비교적 빠르게 적응한 편이고, 조선은 그 구조에서 '체제 안정'을 더 중요하게 봤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 보기에 앞서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하는 질문을 하는 쪽이 좋은 것 같다.


 조선이 무능하고 일본이 단순히 '앞서 나가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다기 보다 무수한 우연과 흐름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민 작가의 '메이저 유신'을 읽으면서 단순히 '일본'이 먼저 개항해서 '근대화했다'라는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 일본 역시 조선처럼 많은 갈등과 선택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니, 흥미로웠다. 일본의 근대사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 '박경민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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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매일 철학이 필요하다 - 니체, 노자, 데카르트의 생각법이 오늘 내 고민에 답이 되는 순간
피터 홀린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부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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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읽는 뉴스, 대화, SNS, 속한 집단, 태어난 나라, 자란 가정 환경.

이런 것을 생각해 봤을 때, '현실'이라는 것은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창조적 환경'에 가깝다.

말이 어렵다. 조금더 쉽게 풀어보자.

2000년 전 플라톤은 동굴에 갇힌 죄수의 비유를 들어 지식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은 그의 저서 '국가'의 일부다.

'사람들이 지하 동굴 처럼 생긴 곳에 갇혀 있다고 해보자. 이 동굴 입구는 길고 동굴 전체의 너비만큼 빛을 향해 열려 있다. 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다리와 목이 결박돼 있어서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정면만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 그들의 뒷편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고 장작불 앞에서 사람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다고 해보자.

동굴 속 죄수들은 벽에 생기는 그림자만 볼 수 있으며 그것이 곧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인형극 하는 사람들과 불, 바깥 세상의 존재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들이 아는 세계는 곧 '그림자뿐'이다.

플라톤은 여기 죄수 중 하나가 동굴을 탈출하여 '태양', '나무', '풀' 을 보게 됐을 때, 그전까지 현실로 알건 세계에 대하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 그리고 다시 동굴로 들어가 갇혀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 물었다.

만약 실제 세계를 본 죄수가 동굴 속 죄수에게 다른 현실을 말해 준다손 쳐도 그들이 믿을리 만무하다.

여기서 얻게 되는 포인트는 이것이다.

'우리도 동굴속 죄수처럼 얼마든 나만의 현실에 갇혀 있을 수 있다'

이 대목을 보면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 세계관 속에 인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가상세계라는 인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객관적 진실'을 담고 있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정말 그림자가 아닌 실제 '현실'이 맞는지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했던 나를 둘러 싸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려보자,

자신이 읽는 뉴스, 대화, SNS, 속한 집단, 태어난 나라, 자란 가정 환경.

태어난 국가와 장소에 따라 우리는 결코 다른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지극히 주관적 세상만을 경험한다.

인구 1억 2천만의 '에티오피아'는 대한민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많으며 고로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생활 수준을 볼 때 결코 '대한민국'이 표준이 될 수는 없다.

'에티오피아'에서 도시 거주 중산층 시민의 월 소득은 10~20만원 수준으로 직장인 한달 커피값 수준이다.

이들은 전기가 없는 지역이 다수이고, 상하수도가 없는 지역도 다수다. 다만 우리의 경우, 주변 지인에 비해 소득이나 자산 차이를 비교하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때로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태어난 곳에 따라 '뉴스'와 , '대화' 내용은 달라진다. 또한 그 영향은 SNS에서 어떤 컨턴츠를 선택하느냐에 영향을 끼치고 '알고리즘'의 필터버블에 따라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에 대한 '확증 편향'적 사고를 가지게 된다.

즉, 우리가 믿는 세계만이 유일한 세계라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연 그런 세계일까.


가만히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예술',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돈',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관계'가 그 세계의 중심이다.

모두가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 즉, 그림자만 바라 볼 뿐이고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결코 공감하지 못할지 모른다.

아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살면서 '쌍둥이'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본 기억이 없다. 학교 다닐 때, 쌍둥이가 있었는지도 어쨌는지도 모른다. 다만 쌍둥이가 태어나고보니, 집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쌍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간판'이 보였다.

이런 것을 '빈도착각' 혹은 바더 마인호프 현상이라고 한다.

이는 '빨간차 이론'이라고도 부르는데, 어떤 대상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대상이 이전보다 훨씬 자주 눈에 띄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이다.

가령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를 샀다고 쳐보자. 그러면 이상하게 그 다음날부터 해당 브랜드의 차가 도로에서 자주 목격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점차 확증편향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지난 8월, 근력 운동을 시작하고 추천 영상과 피드에서 몇번을 멈춰 읽거나 영상을 시청한 횟수가 많아졌는지, 현재 인스타그램 추천 피드에 '책'과 '운동' 두가지 피드만 계속해서 나온다.

8월 이전, 내 피드에서 전혀 올라오지 않던 '운동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꾸준하게 올라오며 나의 삶이 조금더 확장된 느낌이다.

우리의 눈은 포식자의 그것을 닮아 전방 주시에 유리하다. 다시말해 우리는 고개를 돌리면 우리가 등지고 있는 세상을 볼 수 있을 지언정, 다시 반대쪽 세계를 등져야 하는 필연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세계를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반대 세계가 가려진다. 즉 우리의 세계는 언제나 완전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현실'이라는 객관적 세계 속에 '나의 현실'이라는 주관적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시야각을 넓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엄밀하게 말하면 '이성'이다. 칸트는 이처럼 우리의 세계를 결정짓는 '이성'이라는 것에 오류가 있는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순수이성비판'을 쓰기도 했다.

그 이성을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이성, 혹은 철학적 사고'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이성은 도구이고, 철학은 그 도구를 의심하고 점검하는 행위다. 다시말해서 '철학'이란 꽤 먼 우리와 다른 영역의 학문인듯 보이지만 삶에 매우 밀접한 것이며 그것을 갈고 닭을 수 있도록 괜찮은 철학서 한권씩 보는 것도 좋은 습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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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 인생 절반을 지나며 깨달은 인생 문장 65
오평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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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기 형편이 없어 '악평'을 달게 되고, 어떤 책은 감명이 깊어 '추천' 꼬리를 다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당췌 무슨 생각으로 그런 평'을 했는지 모르겠다.

고로 책을 평가하는 일은 시간과 시기를 기만한 일이지 않은가 싶다. 모든 것은 그 시기가 있고 그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시기에 읽었느냐에 따라 '해석'은 천지로 달라진다.

'책은 죽어있는 시계'와 같아서 언제고 한 번은 정확하게 맞는다. 고로 '책'의 완성은 '작가'에 있지 않고, '독자'에 있으며 '독자'의 감정 상태와 시기, 그 밖에 잠시 스치고 지났던 모든 기억과 나이가 복합적으로 적용된다.

'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나름 책을 좋아하다보니 그런 커넥션이 생긴다. 이게 꽤 기분이 괜찮은 편인데 서로 안부를 물은 적은 없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오평선 작가님'과는 맞팔로우 관계다. 그러다보니 심심찮게 활동 내역을 보게 된다.

이처럼 직접적이지 않은 커넥션이지만 은근히 '혼자만의 유대감'을 가진다. 며칠 전에는 아이와 느낌좋은카페(?)를 방문했는데 '오평선 작가님'의 책이 놓여져 있었다.

작가 님의 책은 대체로 그런 분위기에 함께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화초 옆에 놓여 있는 책을 들고 '아빠, 아시는 분이네?'했다. 그러고 다시 곰곰하게 생각해보니, 일면식도 없고 간단한 인사도 나눠보지 못했다.

이야기가 한참 돌았는데, 어쨌건 그런 작가 님들의 책은 일단 먼저 눈이 간다. 오랫만에 '밀리의서재'의 '베스트 순위'에 익숙한 이름이 있길래, 내려 읽었다.

어쩐지 참 술술하고 읽힌다.

기교없이 담백하게 툭툭 내뱉는 문장마다 공감이 갔다. 몇해 전, 라디오스타에서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노래에 대해 가수 '윤종신' 님이 평가했던 내용이 기억에 난다.

서른이 아니라 '마흔 즈음'에 들으면 훨씬 더 공감이 간단다. 그게 불현듯 기억이 난 시기는 말 그대로 '내일 모레' 마흔이 되기 때문일까.

20대에서 30대로 넘어 갈 때,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30에서 40으로 넘어 갈 때는 뭔가 묘하다.

서른이 될 때만하더라도 '성숙'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이었지만, 마흔으로 넘어가니 이제 꺾고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물론 훨씬 나이가 많은 분들이 보기에 우습겠지만 80이라는 평균 수명에서 꺾고 넘어가는 기분이라 그런 듯 하다.

마흔이면 사회적으로 '그런 사람'이 되는 편이다.

20대면 아직 뭘하는 사람인지 정해지지 않은 시기고, 서른이면 한창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편이겠지만 '마흔'이면 대체로 그사람의 정체성은 '그런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씁쓸함 때문에 이 글이 공감이 됐을까... 한참을 읽다가 절반쯤 읽고 난 뒤에 아이를 불렀다.

아이들은 아빠의 책을 대신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목감기가 심하게 와서 눈이 너무 피로하다. 고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그 시간을 제법 좋아한다.

소파에 앉아 아이의 무릎에 담요를 깔아주고 아이 하나를 '포옥' 안고, 책읽어주는 아이의 무릎에 목을 베고 누워 눈을 감는다.

'참 낙원이 따로 없다'

읽어주는 아이, 듣는 아이, 그리고 아빠.

아이에게만 좋은 시간은 분명 아니다. 아이가 오평선 작가 님의 책 절반을 번갈아 가며 읽어 주었다. 아이에게도 분명 좋은 글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최근에 이상하게 '오평선 작가님'의 책이 눈에 띈다. 또 일상을 살다가 익숙한 작가 님의 이름이 있으면 이참에 인사나 한 번씩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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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필로소피 Q&A - 오늘의 지혜를 위한 철학 문답 365
라이언 홀리데이.스티븐 핸슬먼 지음, 이경희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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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한살 더 성숙해지는 스스로에게, 상대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2026년, 한국나이로 40줄을 압두고 있다. 한번도 실감을 해보지 못하다가 새해가 며칠 남은 지금에서야 조금 실감난다. 우연히 그리고 다행히 30대를 마무리 짓는 2025년 끝물에 괜찮은 습관을 갖게 됐다. 먹는 것, 자는 것, 운동하는 것을 기록하는 습관이다. 매일 꾸준하게 기록한다.

무엇을 먹고 있는지, 얼마나 잤는지, 어떤 운동을 했는지,

이런 것들을 기록하고 보니, 기록없이 살던 이전 생이 '선사시대'의 모습같다. 애당초 '선시시대' 역시 '기록 없는 시대'라는 의미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기록을 하고나니, 수면 부족 혹은 수면불규칙이 보이고, 식단에 영양 불균형도 보인다. 물론 얼마나 운동량이 적은지도 알 수 있었다.

고로 2026년 40대의 '나'는, 2025년 30대의 '나'에게 꽤 괜찮은 선물을 넘겨 받고 시작하는 셈이다.

이것이 기록이 주는 '힘'이다. 몇번 쓰다가 놔두길 반복하던 일기도 시간이 지나서 발견하면 참 소중한 기록이요. 사진을 매일 찍지 못하고, 영상 녹화도 매일 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쩌다 한번하는 그 기록마저 매우 소중한 인생의 한 컷 이 된다.


'라이언 홀리데이' 의 '데일리 필로소피'는 '그 기록을 돕는다.

'라이온 홀리데이는 '스토아 철학 해설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을 미리 정리해두고 매일 묻는다.

살다보면 '물음'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아홉살 아이가 묻기를 '달이 자꾸 저를 따라와요.'했다. 왜 그런지 물었는데 알고 있는 수준에서 충분히 대답하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사실 '질문'이 사라졌기에 답이 필요 없는 경우를 경험한다.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은 무엇이 있나요?'

'나는 특히 어떤 욕구 때문에 자제력을 잃게 되나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되나요?'

이런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 본 적 있나. 혹은 답을 찾으려 스스로를 돌아봤던 적은? 아마 많지는 않다.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궁금해보지 않았던 것들...

어떤 질문은 스스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답'보다 '질문'이 더 귀중하다. GPT, 지식인에게서도 값싼 답은 언제든 찾아 낼 수 있다.


년도는 상관 없다. 2026년 1월 1일에 첫 답을 쓰고, 책상 어딘가에서 방치하다가 2030년 언제쯤 1월 2일 답을 써도 괜찮다. 어쨌건 언제든 그 고민을 살면서 해보는 게 중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데일리 필로소피'는 년도는 상관없이 월과 일만 기록되어 있다. 이런 류의 Q&Q 책은 몇권 제가 가지고 있다.

이런 책의 경우, 앞서 쓴 글과 뒷에 쓴 글이 3~4년 정도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건 인생을 통틀어 한 권에 철학을 정리하는 셈이니, 굳이 1년 동안 꾸준하게 해야한다는 강박도 필요는 없다.

5년 전,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한 페이지에 20대와 30대의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재미난 경험도 하게 된다.

대략 3년 전에 혼자 주저리주저리 했던 유튜브 영상이 하나 있다. 그 영상에서 스스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간혹 '유튜브'에서 '알람'이 떠서 보면, 어떤 사람들이 영상에 댓글을 달곤 했다.

재미있는 경험이다. 여기서 2025년을 살고 있는데, 2023년의 내가 불특정 다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상이든 글이든, 기록한다는 것은 참 놀라운 경험이다. 선사시대를 지나 드디어 '역사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니...

주변에 혹은 스스로에게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책 한권'이 아니라 수년 뒤에 삶의 역사를 선물하는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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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기분으로 오늘을 살지 마라 -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신경 끄기의 기술
와다 히데키 지음, 전선영 옮김 / 달콤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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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 요법'이란 일본의 정신과 의사, '모리타 마사타케'가 1910년대에 확립한 심리 치료 기법이다. 불안과 강박, 우울을 없애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행동을 바로 잡는데 초점을 둔다.

가령 이렇다.

화가난다 -> 내버려둔다 -> 차분해진다

속상하다 -> 내버려둔다 -> 차분해진다

밉다 -> 내버려둔다 -> 차분해진다

이 치료요법의 핵심 개념은 '감정'이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불안아니 초조, 강박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 이런 감정들은 수십만 년간 인간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생존하여 후대에 넘겨 주었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 남은 감정이다.

즉, 문제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제거하려는 집착에 있다.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은 그대로 두고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단순히 마음챙김과 조금 다른 것은 이 뒤에 '행위'를 중심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타 요법에서는 기분이 좋아진 뒤에 행동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행동을 먼저 하면 기분은 따라오도록 두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불안이 가라앉으면 해야지'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상태로 하면 망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보통 행동을 중단한다. 다만 모리타 요법식의 대응은 이렇다.

'그냥 불안한 채로 한다.'

'잘하든 못하든, 정해진 행동을 수행한다.'

예를들면 이렇다. 만약 우울한 감정이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면 청소를 해야지'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감정대로 두고, 일단 쓰레기 3개만 버리는 최소 단위의 행동을 강제로 실행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감정'은 '날씨'와 비슷하다. 우리는 비가 내린다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단은 최소한 찜찜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고 일을 처리한다. 그러다보면 날씨는 어느 순간 갠다.

날씨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날씨'를 포함한 상태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로 감정은 평가하지 않는다. 감정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도 하지 않는다. 감정과 상관없이 행위는 지속해야 한다.

혹여 누군가가 화를 내고 있다면 '화내지 마세요!'라고 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화를 '내거나 말거나'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 옳다.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없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면 되고, 내리는 비를 탓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내리는 비'에 큰소리로 대응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아 비가 내리는 구나'하고 그대로 두면 그만이다.

나를 다스리는 방법으로는 그렇다. 또한 태도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는 또한 누군가의 날씨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눈군가가 큰소리로 화를 내고 있다면 나는 '비가 내리는 상황'에 있는 바와 같다. 여기에 어둡고 꿉꿉한 그 감정의 상황에 처하면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면 실제로 대처하기에는 굉장히 난감해진다.


이제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날씨다.'

즉 내가 짓는 표정, 말투, 숨의 형태가 상대에게는 '임의적으로 주어지는 날씨'와 같을지 모른다. 그 말인 즉슨, 남들도 나를 참아주고 있다는 인식을 언제나 하고 있어야 한다.

웃지 않으면 굉장히 기분 안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본의와 다르게 언제나 타인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인지를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나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 좋다.

'와다 히데키'의 '어제의 기분으로 오늘을 살지마라'에는 '감정'을 다루는 좋은 글이 적혀 있다. 어떻게 상대를 대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대해야 하는가. 또한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기분'과 '감정'이라는 것은 '날씨'와 같아서, 좋은 날이 있으면 안 좋은 날이 있고, 안좋은 날이 있으면 좋은 날이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닌지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몫은 그 날씨 아래에서 어떻게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지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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