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매일 철학이 필요하다 - 니체, 노자, 데카르트의 생각법이 오늘 내 고민에 답이 되는 순간
피터 홀린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부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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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읽는 뉴스, 대화, SNS, 속한 집단, 태어난 나라, 자란 가정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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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생각해 봤을 때, '현실'이라는 것은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창조적 환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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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어렵다. 조금더 쉽게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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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플라톤은 동굴에 갇힌 죄수의 비유를 들어 지식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은 그의 저서 '국가'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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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지하 동굴 처럼 생긴 곳에 갇혀 있다고 해보자. 이 동굴 입구는 길고 동굴 전체의 너비만큼 빛을 향해 열려 있다. 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다리와 목이 결박돼 있어서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정면만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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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그들의 뒷편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고 장작불 앞에서 사람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다고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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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죄수들은 벽에 생기는 그림자만 볼 수 있으며 그것이 곧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인형극 하는 사람들과 불, 바깥 세상의 존재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들이 아는 세계는 곧 '그림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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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여기 죄수 중 하나가 동굴을 탈출하여 '태양', '나무', '풀' 을 보게 됐을 때, 그전까지 현실로 알건 세계에 대하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 그리고 다시 동굴로 들어가 갇혀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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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실제 세계를 본 죄수가 동굴 속 죄수에게 다른 현실을 말해 준다손 쳐도 그들이 믿을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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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얻게 되는 포인트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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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동굴속 죄수처럼 얼마든 나만의 현실에 갇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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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보면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 세계관 속에 인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가상세계라는 인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객관적 진실'을 담고 있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정말 그림자가 아닌 실제 '현실'이 맞는지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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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했던 나를 둘러 싸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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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읽는 뉴스, 대화, SNS, 속한 집단, 태어난 나라, 자란 가정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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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국가와 장소에 따라 우리는 결코 다른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지극히 주관적 세상만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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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억 2천만의 '에티오피아'는 대한민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많으며 고로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생활 수준을 볼 때 결코 '대한민국'이 표준이 될 수는 없다.

'에티오피아'에서 도시 거주 중산층 시민의 월 소득은 10~20만원 수준으로 직장인 한달 커피값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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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전기가 없는 지역이 다수이고, 상하수도가 없는 지역도 다수다. 다만 우리의 경우, 주변 지인에 비해 소득이나 자산 차이를 비교하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때로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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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곳에 따라 '뉴스'와 , '대화' 내용은 달라진다. 또한 그 영향은 SNS에서 어떤 컨턴츠를 선택하느냐에 영향을 끼치고 '알고리즘'의 필터버블에 따라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에 대한 '확증 편향'적 사고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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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우리가 믿는 세계만이 유일한 세계라는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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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연 그런 세계일까.


가만히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예술',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돈', '어떤 이들의 세계에는 '관계'가 그 세계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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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 즉, 그림자만 바라 볼 뿐이고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결코 공감하지 못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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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살면서 '쌍둥이'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본 기억이 없다. 학교 다닐 때, 쌍둥이가 있었는지도 어쨌는지도 모른다. 다만 쌍둥이가 태어나고보니, 집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쌍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간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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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빈도착각' 혹은 바더 마인호프 현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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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빨간차 이론'이라고도 부르는데, 어떤 대상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대상이 이전보다 훨씬 자주 눈에 띄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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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를 샀다고 쳐보자. 그러면 이상하게 그 다음날부터 해당 브랜드의 차가 도로에서 자주 목격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점차 확증편향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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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근력 운동을 시작하고 추천 영상과 피드에서 몇번을 멈춰 읽거나 영상을 시청한 횟수가 많아졌는지, 현재 인스타그램 추천 피드에 '책'과 '운동' 두가지 피드만 계속해서 나온다.

8월 이전, 내 피드에서 전혀 올라오지 않던 '운동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꾸준하게 올라오며 나의 삶이 조금더 확장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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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눈은 포식자의 그것을 닮아 전방 주시에 유리하다. 다시말해 우리는 고개를 돌리면 우리가 등지고 있는 세상을 볼 수 있을 지언정, 다시 반대쪽 세계를 등져야 하는 필연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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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계를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반대 세계가 가려진다. 즉 우리의 세계는 언제나 완전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현실'이라는 객관적 세계 속에 '나의 현실'이라는 주관적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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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리의 시야각을 넓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엄밀하게 말하면 '이성'이다. 칸트는 이처럼 우리의 세계를 결정짓는 '이성'이라는 것에 오류가 있는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순수이성비판'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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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성을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이성, 혹은 철학적 사고'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이성은 도구이고, 철학은 그 도구를 의심하고 점검하는 행위다. 다시말해서 '철학'이란 꽤 먼 우리와 다른 영역의 학문인듯 보이지만 삶에 매우 밀접한 것이며 그것을 갈고 닭을 수 있도록 괜찮은 철학서 한권씩 보는 것도 좋은 습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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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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