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초기에 일본의 산업정책은 더 직접적이었다. 초기에는 국가 주도적으로 공장을 세워 산업화를 시작했으나 이후 수익구조가 '민간'에게 넘어감녀서 '미쓰이, 미쓰비시'와 같은 대규모 자본 집단이 만들어졌다. 유학생을 대규모로 서구로 보내고 동시에 외국 기술자를 일본으로 불러 들였다.
같은 시기 조선은 다른 선택을 했다. 조선은 '질서유지'를 위해 '개혁'을 뒤로 미루었다.
'개항'을 '경제문제'가 아니라 '안보문제'로 인식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봤을 때, 조선인들은 안보적으로 나름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일본이 국가 주도로 인력을 재편하고 산업을 키우던 시기, 조선은 정치 불안과 민란을 위해 개혁을 '위험' 요소로 여기고 '체제 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구가 겪었던 것과 같은 단계에 진입한다.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고 생산량은 늘었다. 공급이 늘어나 국내 시장만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일본 역시 '넓은 판매처'를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내부 수요를 키우려고 했으나 한계는 분명했다. 사업을 하다보면 공장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공급이 과잉되면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온다. 고로 '시장확대'는 필연적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서구 국가가 문을 두드렸으나 끝까지 버텨낸 두 시장인 '청'과 '조선'이 남아 있었다.
청과 조선은 여전히 완전히 열리지 않은 시장이었다. 조선과 청은 서구에게는 꽤 거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시장이었으나 일본에게는 달랐다.
지리적으로 가가웠고 군사적 접근도 용이했다. 또한 이미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고로 일본 역시 서구가 했던 판단을 그대로 하게 된다.
1876년 일본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선의 문을 연다. 강화도 조약은 통상조약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은 시장 개방에 가까웠다. 일본 상품이 들어오고 조선의 쌀과 자원이 빠져나갔다.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을 더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결국 근대화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역사를 감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선과 악, 가해와 피해의 구도로만 정리하면 그 시대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동아시아의 선택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이미 공급 과잉을 전제로 돌아가는 체제로 넘어가 있었고, 그 질서에 들어가지 못한 국가는 의지와 무관하게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그 구조에서 비교적 빠르게 적응한 편이고, 조선은 그 구조에서 '체제 안정'을 더 중요하게 봤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 보기에 앞서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하는 질문을 하는 쪽이 좋은 것 같다.
조선이 무능하고 일본이 단순히 '앞서 나가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다기 보다 무수한 우연과 흐름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민 작가의 '메이저 유신'을 읽으면서 단순히 '일본'이 먼저 개항해서 '근대화했다'라는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 일본 역시 조선처럼 많은 갈등과 선택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니, 흥미로웠다. 일본의 근대사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 '박경민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