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삼국지2'였다. 게임 중에서도 매우 고전으로 숫자판만 가지고 정치와 경제, 군사를 움직이는 일이 재미있어, 내가 가장 오랜 기간 빠져 있건 게임 중 하나였다. 그 게임에도 삼국지에 있는 인물은 '숫자화'되어 있었다. 무력 '78', 지력 '59', 매력 '48'. 그 사람이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실제로 그 사람의 다음 가능성이 어떨지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고정되어 있는 숫자만이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고 있었고 아무리 '일 잘하는 사람'이라거나 '성실한 사람'이라는 이라는 것도 그 숫자에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을 결과론적이다.
예전에 서울 청담동 한 회사의 인사과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사람을 관리한다는 '인사'에서 면접을 담당하기도 하고 인사고과를 담당하기도 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채용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엑셀'이다. 정말 잔인하게도 수십명의 사람을 엑셀에 정렬해 놓고 열과 행에 기입된 숫자(나이, 점수 등)의 위를 클릭 한 뒤, '내림차순 정렬'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일정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는 인물의 자소서나 이력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드래그 후, 'Delete' 버튼을 눌렀다. 그들은 화면상에서 빠르게 삭제 되었고 내가 사무적으로 하는 짧은 행위에서 그들은 기회을 잃었다. 이름 조차 읽혀지지 않고 삭제되던 사람들을 나타내는 것은 '숫자'였다. 잔인해 보일 수 있는 이런 것들은 '다수'가 함께 살아가는데 어쩔 수 없는 '효율'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껏 게을렀지만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들은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학벌주의'가 아닌 '근면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날 해야할 학습량을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시험 당일에 갑자기 점수가 잘나오는 방법은 '부정' 밖에 없다. 물론, '부정'으로 점수가 잘 나올 수는 있지만 그것은 뿌리를 갖지 못한 농사꾼의 수확처럼 1회적인 성공일 가능성이 높다. 학업성적이 좋은 그들이 성공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어떤 일을 근면하게 대하는 태도 때문이지, 학교 시험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을 머리 속에 넣었느냐가 아니다. 공부를 못해도 성공할수는 있다. 하지만 공부를 못하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그만큼의 근면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반드시 '숫자화' 할 수 있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어야 한다. 내가 예전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됍니다."
그러면 보통의 강사나 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결과가 좋아야 아름다운 것이다. '최선'이라는 모호한 잣대를 '스스로' 만들어 만족하는 것은 진짜 '최선'을 다한 이들의 '최선'의 격을 격하시키는 일이다. 대부분 학생들이 했던 '최선'은 최선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된다면,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다. 특히나 노력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것들 일수록 그렇다. 보통 숫자화 되지 못한 '최선'은 99까지 차올랐다고 해도 0인 샘이다. 능력에는 반올림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능력은 내림이다. 100도씨에 도달하지 않으면 물은 끓지 않는다. 99도에서 다시 식혀지게 되는 데워진 물은 '끓는 물'에 정의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모든 건 '숫자화'될 만큼 '노력'해야한다. 그 가장 중요한 것은 '근면'이고 책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하드 워킹' 즉, 노력이다. 끓지 못한 만큼의 물은 '뜨거운 물'로 정의 될 수 있지만 '끓는 물'로 정의 되지 않는다. '끓는 물'이 필요한 이들에게 99도씨가 뱉는 '1도 쯤'이라는 변명은 통할 수 없다.
빌게이츠는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우리 성인의 '하드워킹'을 숫자화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돈'이다. '돈은 나쁜 것', '더러운 것', '천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돈'은 '선'한 것이다. 물론 시험 당일 부정적인 방법으로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을 가는 것 처럼 부정적인 돈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이란 것은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심'의 산물이다. 자신이 가장 소유고자 하는 것을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것을 교환해 준 사람은 대게 그들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을 제공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강의'가 될 수도 있고, '글'이 될수도 있고, '컨텐츠'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모으고 싶어하는 '돈'을 내어 놓고 그 재화나 서비스를 받아간다. 그럼 그 것을 모은 사람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 사람이다.
잘 팔리는 치킨가게와 안 팔리는 치킨가게가 있다고 해보자. 둘 다 성실하게 일을 하지만, 한 가게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다른 가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가게는 '돈에 눈이 먼' 것 처럼 비난할 수 있지만, 많은 고객들이 그들을 찾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회에 더 좋은 서비스와 재화를 제공하는 일을 많이 할수록 '부'는 저절로 생겨난다. '돈'만을 쫒는다면 그것은 '부정'한 방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돈'이 결과물이라면 충분히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대략적인 확인은 가능하다. 누구나 손해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갖고 있다면 상대가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을만큼의 무언가를 베풀었을 가능성이 높다. '돈'은 그래서 중요하다. '가난'은 미화되서는 안된다.
'가난해도 행복하면 된다'라는 말은 '합리화일 뿐이다'. 기왕 행복 할 거라면, 부유하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하드 워킹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끔 불쑥하고 나오는 종교적인 이야기가 느닺없지만 분명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예전에 가르치던 학생이 하나 있었다. 공부는 잘 못했고 학원을 나오는 이유도 불분명했다. '졸업하면 직업으로 어떤 걸 갖고 싶냐?'고 물었다. '공무원'이라고 했다. '공무원'이 분명 중요한 직종이다. 학생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하고 싶은거야?' 정말 하고 싶다고 했다. 다시 물었다.
"니가 만약에 수능 만점 나와서 모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수 있어도 그것을 하겠냐고 물었다." 학생이 대답했다.
"그럼 의사해야죠!"
대게 우리가 하는 선택은 '내가 가능하겠다 싶은 범주 내'로 좁아진다. 사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수능 만점이 나와도 공무원을 선택해야지 않을까. 대부분의 학생은 자신이 성적이 만들어 놓은 가능성에서 자신의 꿈을 한정짓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최선이 정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혹은 그 학생이 수능 만점이 되면 가차없이 선택하겠다는 '의사'가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학생은 강의가 끝나고 PC방으로 달려갔다. '의사'라는 직종을 누구에게나 줄 수는 없다. 분명, 그만한 인내를 견뎌낸자들이 받아가는 결실이다. 보통, '돈'의 속성은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정의한 '열심히' 속에 빠져 자기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노력해보고, 조금 더 인내해보고, 조금 더 생각해본다는 것이 '내가 세운 기준'을 폭발적으로 넘어설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숫자화'된 결과값을 내어보여 줄 수 있다. 책은 간략한 명언 한 줄과 작가 님의 경험담이 잘 섞여 있다. 그의 이야기 처럼 이 세상에 노력만한 성공법칙은 없고, 아이디어는 훔치고 모방할 수 있지만, 노력은 훔치고 베낄수 없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