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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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골랐다. 한국 지성인들이 남긴 여러가지 문학이나 글을 보면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사실 펴보지 않고 골랐다. 나는 한국 지성인들의 문학 작품이 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 책은 작가인 김호기 님이 한국 지성인들의 작품과 일생을 살펴보며 느낀 생각과 감정 그리고 평가들을 남겼다. 책은 많이 어렵지 않다. 챕터도 짧기 때문에 쉽게 쉽게 넘어간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실제 여기서 소개된 한국 지성인들의 작품이 실려 있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

책에서는 지성인들의 소개와 평가들이 남겨져 있다 당연히, 그들의 작품이 실려 있기에는 분량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책을 읽다가 문뜩 문뜩, 그들의 작품을 몇 가지 찾아보게 되고, 읽는 시간도 그래서 오래걸렸다. 독립운동가와 나라세우기부터 종교와 철학, 문학, 역사, 정치, 법, 사회, 문화, 자연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의 한국지성인들을 활자로 만나면서 쉽게 접하는 지성인들은 가볍게 접하는 에피타이저 느낌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김구나 안창호, 신영복, 한용운, 윤동주, 박경리 등 내가 배경 지식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인들이 이름이 나온다. 그런 이들을 만나면 아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반가움이 든다. 하지만 그 밖에 내가 모르던 사람들이 이름도 꽤나 많이 나온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 중에도 이처럼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들은 대부분 우리의 사상이나 역사에 걸러질 이력이 덜 한 분들이 많다. 가령 똑같은 독립 운동을 하더라도, 자유진영인 남한을 지지한 인물은 조금 더 좋게 포장이 되어 유명해지고 북쪽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거의 잊혀진다.

좋은 문학 작품을 남기고도 인생의 말년에 친일 행위를 하여 문학 자체가 덜 알려지는 경우고 있고, 내가 알던 상식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았던 인물들도 분명하게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들 또한 '지성인'으로 평가하며 문학 자체에서는 평가 절하하지 않는 저자의 객관적인 설명이 돋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담담하게 한국 지성인들에 대한 일대기와 문학 소개를 한다. 그가 친일을 했건, 공산당을 지지했건, 담담하게 그 지성인 자체만을 두고 평가하며 사실을 기록한다. 단순히 재밌다. 재미 없다로 평가 받을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은 다양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책은 흥미로 읽어야 한다기보다, 소장 그 가치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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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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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썼던 책들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토록 내 글들이 부끄러워 졌던 적은 없었다. 감성적인 제목의 '우주를 만지다'는 책을 읽는 도중에도, 육성으로 흘러나오는 '크~'와 같은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작가 님을 위한 박수를 두 어번 칠 정도였다. 물리학이라는 다소 메마를 듯한 용어가 책 이곳 저곳에 있으면서도 전혀 메마르지 않고 감성적인 이 책은 잘 만들어졌다고 표현하기도 죄송스러울 정도다. 강력 추천한다.

책은 권재술 작가 님의 글이다. 나는 글쓴이를 표현할 때, 교수, 선생, 화가 등의 다른 직업이 있더라도 작가 님이라고 표현한다. 어쨌건 그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를 졸업했다. 그 뒤로도 과학 교육에 관한 이력을 꾸준하게 갖고 계신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 '교육학'을 전공한 그의 이력 때문에 깊이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교육학'은 당연히 초보를 가르치기 위해 깊이보다는 기초적인 내용에 대해 다룰 것이라는 나의 막연한 착각 때문이었다. 대단한 착각이다. 책을 읽고는 권재술 작가 님의 학문의 깊이와 문학적 소양이 뼛속까지 느껴진다.

작가의 소재에 나와 있는 작가 님의 사진은 등산복 차림이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저서에도 이 처럼 평범한 자신의 모습을 모여주신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다시 그의 모습을 보고는 존경심이 들만큼 소탈하다. 이런게 진짜 교육자고, 작가이고, 물리학자구나 싶은 그의 철학이 몹시 더 궁금해진다.

책은 물리학을 '삶'에 녹였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시간과 공간이라는 여러가지 과학적 현상들을 '에세이'와 '시' 인문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책의 뒷 편에 김상욱 교수와 김선영 작가, 유성호 교수, 함기석 작가의 추천서들이 적혀 있다. 책 한 권 더 팔기 위해, 지인들에 부탁하고 임의로 짜집어 넣은 다른 추천서들과는 달리, 나 또한 그들과 너무나도 공감하는 감정을 갖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하는 구나.' 를 배운다. 여타 책들 중에는 사실 읽는 시간이 아까운 책들도 꽤 있다. 다만 이 책은 넘기는 페이지 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한 시선들이다. 이 책은 읽어가며 페이지 모서리를 접지 않았다. 너무 공감되고 뼈 있는 삶의 지혜와 감성이 다시 이 책을 들었을 때, 새로움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나의 욕심에서 이다. 깨끗하게 읽은 이 책은 내가 다시 삶에 감성이 메마른 시점에 찾아 읽을 것이다.

다만 책을 읽다가 육성으로 뿜어나온 '크~'의 감탄사가 발현된 몇 구절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다. 76페이지에는 지구가 생명체로 만원인 곳이라고 설명한다. 조그만 빈터도 잡초가 자라나며 그 공백의 자리를 채워가는 생명의 공간이다. 그렇듯 인간의 몸에도, 땅에도, 공기에도, 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며 의사와 농부는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죽이는 일을 훨씬 더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랬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밭에 있는 수 많은 잡초를 뿌리 채 뽑고, 건조한 하늘 밑에 말려버리며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살포하기도 한다. 의사 또한 몸 속에 성정하고 있는 일부 '인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균'을 독살 시켜 버린다. 우리는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죽일지 스스로 정당하게 판단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철저하게 인간 만을 위한 이기적인 살육은 우주 전체에서는 전혀 정당하지 않다. 인간을 포함한 물리학을 사랑하는 작가 님의 넓은 시선을 확인한 좋은 구절이다.

선택에 관한 구절에서도 절로 눈이 감겨 글을 음미할 만큼 좋은 구절이 있었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선택지들 중 하나를 선택하며 인생을 채워나가는데, 우리에 의해 선택된 미래는 시간이 흐르며 과거로 변해간다. '시간은 곧 미래를 죽이는 킬러'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킬러는 모든 것을 죽이지 않고, 단 한 개만 남겨 놓는다. 그렇게 남겨진 것이 우리의 과거이고 역사고, 인생이라고 한다.

우리는 매 순간을 선택한다. 우리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선택지들은 미래라는 다음 단계를 확인해보지 못하고 소멸해버린다. 우리가 선택한 미래만 겨우 다음 단계를 확인하고서 과거로 진화해간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난 어째서 이런 생각도 못해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미래는 가능성이자 꿈이다.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많은 꿈과 미래를 살해해오면서 살았다. 나의 선택에 의해 죽어진 수많은 미래와 꿈들의 희생 뒤에 겨우 '나'라는 인생이 존재하게 됐다. 얼마나 철학적인 문장인가 싶다. 이런 철학적 문장이 여러가지 '물리학 이론'과 섞여가며 엄청나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소제목이 끝 날 때마다, 이어지는 '시'들 또한, 흔히 요즘 말하는 '뼈 때리는' 구절들이다.

오늘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기 싫어 했다. 아침 일찍 '유튜브에서 콩순이 인형을 가지고 인형놀이를 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영상에는 초콜렛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 나왔다. 아이들은 인형 놀이를 하는 사람을 부러운 듯 보았다. 아이들의 손이 꼼질 꼼질 거렸다.

"아빠, 나도 초콜렛 만들어 먹고 싶어요."

하율이가 말했다.

"아빠가 이번 주말에 꼭 사올께~"

오늘 아침있었던 일화를 지나고 책을 폈을 때, 가슴을 후벼파는 책의 구절이 있다.

"내일 하자"라는 말은 아이와 어른에게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어른에게는 내일은 금방이지만 아이에게 내일은 먼 미래라고 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느낌이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했따. 시간은 그 사람의 출생에서 현재까지의 경험이 전부이고 내가 35년을 살았고 아이가 4년을 살았으면, 아이와 나의 시간의 느낌은 그 만큼 비례하여 다르다는 것이다. 아마 나에게 일주일 뒤면 아이에게는 7주 뒤나 다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입이 삐쭉빼쭉했지만, 알겠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면 당장 이마트로 가서 사버리면서, 아이들에게는 수 주를 기다리게 했던 모양새다. 어쩌면 내가 아이같고 아이가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학은 어렵지만, 흥미로운 소재였다. 이처럼 시로의 충분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과학과 문학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있던가 싶다.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란 서평이다.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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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선 자본주의 - 미국식 자유자본주의,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누가 승리할까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정승욱 옮김, 김기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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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해서!!"

미국 영화를 보다보면, 미국은 '자유'를 위해 악의 무리에 맞서는 영웅으로 나온다. 2차세계대전과 냉전체제에서도 미국은 세계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피를 내어 놓는다. 얼핏 미국은 세계 평화와 자유를 지키는 수호자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고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공산 진영이 생산물을 공동으로 취하는 의미라면 자유는 어떤의미를 가지고 있나?

사실 미국이 말하는 '자유'란 정치적 이념을 넘어 시장주의에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정부의 경제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을 줄이는 시장주의말이다. 여기서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자유를 주는 이런 시장 자유주의는 17~18세기에 주로 유럽의 신흥 시민 계급에 의해 주장된 제도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말한다. 미국은 시장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본주의를 택한다.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고 공급과 수요를 결정하는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장의 움직임에 전적으로 신뢰한다.

이런 자본주의는 마치 호모 사피엔스처럼 여러 형태의 동족이 존재 했으나 진화 과정에서 여러 동족을 흡수하고 멸종시키며 냉전 이후로는 어느덧 미국식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자본주의로 남았다. 그렇게 미국의 자본주의가 독점해가는 동시에 미국식 자본주의는 '독재'와 '독점'의 폐해에 나오는 여러가지 형태의 폐해를 따랐다. 그 중 그 대안에 맞춰 발생한 중국식 자본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해 갔다.

더 크게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과 이미 미국식 자본주의를 따르고 있는 서방국가들의 침체에 미국은 위기를 느낀다. 미국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위기를 느낀다. 자본주의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달라지는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렇다.

얼마 전, 나는 친한 친구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흔히 말하는 '좋은 회사'에 취직한 후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대기업 직원이었다. 모든 녀석이 그 녀석을 부러워했지만, 그 녀석은 조금 낫은 급여을 받는 것을 인정하지만 '부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주변 친구들은 그 친구의 말이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부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고연봉' 직장을 찾아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말한대로 전문직이나 고연봉 직장인들도 현 자본주의에서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비중도 예전에 비해서 꽤나 커져 지금은 20%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단순하게 '자본'이 버는 돈의 비중을 두는 일이다. 가령 노동으로 부자가 된다는 '노동'의 가치를 두는 사회는 전혀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생겨난 자본의 형태를 또 다른 자본이 생성하는 재도이다. 100원의 수익이 발생한 회사는 수익 전부를 노동자에게 지급하지 않는다. 그 수익을 공장일 짓거나 회사를 확장하는 등 자본을 확장하는 방식에 투자된다. 이렇게 투자된 돈은 더 큰 부를 축적한다.

원래 자본주의의 원리가 그렇다. 시장에는 자본가와 노동가의 계급이 존재한다. 자본가는 자본을 소유하고 노동가의 노동력을 산다. 누군가는 열심히 노동을 투자하여 자신의 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누군가는 전혀 일을 하지 않으면서 자본을 투자하여 돈을 번다. 이런 세상을 일부 사람은 '불평등'이라고 말한다. 요새는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말이 있다. 하루 한 시간 일하여 겨우 1~2만원을 버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불로소득의 임대업이 무척 부러워 보인다. 그리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사회가 확장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하다.

자본가는 그 자본을 통해 또 다른 재화를 획득한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예전에는 영주와 소작농의 구분이 확실했다. 양반과 농민처럼 일하지 않고도 토지에 대한 소유의 권리를 소작농에게 지급 받았다. 지금도 마찮가지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계급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지금은 우리는 얼마든지 소액으로 주식을 매수할 수 있고, 인세를 받을 수 있으며 그 밖에 여러가지 투자 혹은 재태크를 이용하여 돈을 형성한다. 우리 모두는 자본가이면서 노동가이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점점 이런 형식으로 발달해간다.

자신의 노동력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노동력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자본으로 교환하여, 자본력이 만드는 수익으로 바꿀 수 있다. 꾸준히 고배당 주식을 매입하거나 꾸준한 창작 활동으로 인세를 만들 수도 있다. 얼마 후, 자신의 노동력 보다 자본이 만들어낸 수입이 더 커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본가의 타이틀을 얻어낼 수 있다. 금리 1%대의 세상에서 우리는 20억을 소유하면 대졸 초임의 연봉을 자본을 통해서만 획득가능하다.

노동력은 단리로 성장하지만 자본은 복리 성장한다. 꾸준한 자본에 대한 투자가 우리의 성장을 가속화 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그런 개개인의 경험은 결국 자본주의를 또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낸다. 이것이 홀로 선 자본주의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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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베트남 성장하는 곳에 기회가 있다
이정훈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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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베트남은 딱 1회만 갔다왔다. 가장 놀라웠던 건 베트남의 1인당 국민 소득이었다. 나는 베트남 뿐만 아니라 태국도 방문했었다. 물론 내가 다녀온 곳이 그 국가의 모든 걸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꼈던 건 두 국가 모두가 비슷한 동남아 국가의 이미지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태국과 베트남은 아는 사람을 다 알만큼 엄청난 격차가 있는 나라다. 태국은 세계 GDP규모가 23위인 나름 동남아의 경제대국이다. 인구도 7000만 정도로 남북한을 합한 정도의 규모가 있다. 태국의 1인당 GDP는 7588달러 수준으로 꽤나 높음 편이다. 반면 베트남은 조금 다르다.

베트남의 1인당 GDP는 2500불 정도 수준으로 '스리랑카'나 '앙골라' 보다 적다. 적도기니나 가봉에 1/3 정도 수준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 보다 경제력이 많이 적다. 하지만 베트남은 앞으로 매우 기대가 되는 나라이다. '다이나믹 코리아', 우리나라는 이미 베트남의 가능성을 아주 오래 전부터 엿보고 있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숫자가 8,300개가 넘고 투자규모도 누적이 677억달러 정도이다. 이는 전체 외국인 투자자의 18.7%이다. 투자자는 당연히 투자 대상이 성장할 때 수익을 얻는다.

고로 베트남의 성장은 우리나라의 성장에 간접적 영향을 주고 받는 다고 볼 수 있다. 경쟁국가 일본과 비교 했을 때도 대한민국의 베트남 사랑은 독보적인 편이다. 이런 베트남의 장점은 우리가 이미 중국의 성장에서도 확인 했다 싶이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과 젊은 인력이다. 베트남은 거의 1억이 넘는 인구를 자기고 있고 인구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다 알고 있을 만한 세계 유례없는 '황금 인구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9,727만명으로 전 세계 14번째 인구 대국이고, 베트남의 8090년대 생인 2,30대의 소비자층은 베트남 전체 인구대비 35%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젊은 나라는 풍부한 노동력 이로도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가능성도 엿볼수가 있다. 전체 인구증 53%가 인터넷을 사용하며 그중 90%가 사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그 수치가 우리나라의 절대수치와 비교해서도 절대 지지 않는다. 이는 엄청난 시장이다. 또한 베트남의 중산층 혹은 고소득층 인구는 2014년 1,200만명에서 2020년에는 33,00만 명으로 증거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생산국만이 아니라 소비국으로서도 꽤나 큰 규모이다. 우리나라 내수에 맞먹는 규모가 중산층 혹은 고소득 층인 국가인 샘이다.

이런 시장과 공장이 이토록 대한민국에 가까운 것은 어쩌면 행운에 속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동쪽으로 기술 강국인 일본과 서쪽으로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의 중국을 끼고 있는 황금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커다란 수혜를 보았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일본 시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중국 공장에서 물품을 생산한 후 완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취했다. 다만 이제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갈등이 심화하면서 우리가 찾은 새로운 대한이 필요한 시기다. 기술적인 면에서 우리는 일본과 기술 격차가 많이 줄었다.더 이상 중국과 일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좋은 이유가 생겼다.

베트남은 우리와 역사적으로 상당히 비슷하다. '한'의 역사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보다 어쩌면 더 심한 픽박을 받던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천년 넘게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났다하면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해방할 때 쯤에는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였다. 어쩌면 역사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입장에서 적국이었지만, 어쨌거나 베트남인들은 대한민국에 크게 악감정이 없어 보였다. 그 이유는 그 전쟁에서는 대한민국이 패전국과도 같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자신들이 자주적으로 국가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다. 그것도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말이다. 또한 아주 오랬동안 타 민국과 국가에 지배를 받던 베트남은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고 있다. 삼성전자의 베트남 생산비중은 전체 생산능력의 57~70%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좋은 생산국이 대한민국과 지금처럼 친밀도를 높여가며 역사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데에는 우리는 또 다른 감사함을 느껴야 할 지도 모른다. 기존 무역 상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을 빼고는 정치적으로 겹치는 일도 많지 않다. 책에서 소개하는 롯데마트에 관한 설명은 내가 베트남현지에서도 꽤나 많이 들었던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의 문화에 대한 공부도 충분히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듯하다. 또한 베트남의 삼성이라고 불리우는 '빈 그룹'의 경우는 베트남의 초대형 그룹이지만 실제로 아직도 투자여력이 충분한 기업이기도 하다.

베트남을 방문하면 어쩐지 대한민국의 어느 시골을 방문한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사람들의 정서나 감정 혹은 문화에 있어서 이질감이 없다. 아마 쌀 농사 짓던 농경민족으로써의 유대감 같은 것이 그들에게 느껴지는 듯 하다. 이 책은 베트남의 IT산업이나 인공지능 등 앞으로 4차 사업혁명에서의 베트남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는 나 또한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 책은 1회 정독이 아니라 수 차례 공부해야할 만큼 중요한 내용들이 잔뜩 있었다. 올 추석을 기회로 이 책을 한 번 더 정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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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키즈가 온다 - 뉴노멀형 신인류 보고서
유종민 지음 / 타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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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세상에 대한 첫 인상을 얻게 되는 시기, 초등학교 저학년 IMF가 터졌다. 뉴스에서는 온갖 '부도'에 관한 내용이 터져 나왔고 망해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대출을 통한 과감한 투자가 미덕이던 시대를 지나 '투자'는 '위험'이라는 인식이 세상에 빠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 내 또래들은 2008년 대학 생활을 했다. 이제 사회 생활을 시작할 나이 미국에서 시작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세계적 금융위기로 번졌다. 내 또래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코로나 금융위기가 다시 터졌다. 세상은 우리 세대를 '트라우마 세대'라고 불렀다.

트라우마 세대의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돈'에 대한 인식은 IMF가 절대적이다.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나 코로나 위기에 대한 위기감 보다 IMF에 대한 인식이 강렬하다. 의식보다 무의식이 관장하던 시기에 받은 충격과 부모가 갖고 있던 인식의 변화가 아이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지 나와 내 또래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 또래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또다른 트라우마를 세긴다. '코로나19' 금융이나 경제 관한 내용이 아니라 '사회 문화'에 관한 내용이다.

나의 또래들이 하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을 살펴보면, 아이 영상이 많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외출시 마스크를 하고 있다. 얼굴을 반이나 덮은 아이와 어른들은 카메라 렌지를 쳐다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사진으로는 알 수가 없다. 아마 마스크 뒷편으로 싱긋 하고 웃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얼굴'이다. 얼굴은 그 만큼 중요하다.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얼굴과 목소리로만 판단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외모에 집착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 표정을 살필 수 없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는 부모의 표정을 숨기고 아이들은 부모의 표정을 통해 감정 전달을 받지 못한다. 부모 뿐만아니라, 외부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어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학습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IMF를 겪고 모두가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성인이 되고 나서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나의 쌍둥이 녀석들은 이제 막 36개월을 접어들었다. 아이들의 인생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세월 간 코로나19는 사회의 문화를 바꾸었다. 낮선 사람의 접촉에 대해 극심한 불쾌감을 보여주기도 하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유튜브를 통해 언어와 문화를 배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왜 쓰는지 이해가 되니 않는 마스크를 써야하는 답답함을 갖고 살아야하고 그것을 쓰지 않았을때 왜 혼나야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밖을 나갈때 양말을 신는 것처럼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의 당연한 의복 문화가 되어버린 이들이게 코로나 19가 사라진 뒤에도 마스크 문화는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코로나가 얼마나 더 지속 될지 모르겠지만, 그 용도를 넘어 이제는 패션아이템이 될 지도 모른다. 마스크 착용은 양말 착용과 같이 새로운 의복 문화로 자리잡고 사람들은 감정을 표출하는 표정을 짓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을 까 걱정도 된다.

심각해져가는 코로나 블루도 만찮가지다. 지난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 죽는 사람은 지금 것 300명이 겨우 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죽는 사람의 수는 1년에 1만 2천명이나 된다. 우리는 코로나를 막는데 선공했지만, 이미 취약한 자살률에 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1년에 1만명이면 10년간 10만명이다. 율곡이이가 왜적을 물리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군인의 수가 10면명이다. 우리의 자살률은 여느 분쟁국가의 전사자 수를 훨씬 윗돈다. 우리사회는 불명확한 적과 이미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샘이다. 그 약점을 코로나19가 파고든다.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날 세대에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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