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의 미술관
최정표 지음 / 파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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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습을 알기 위해 서는 곳은 어디인가. 손을 눈앞에 대고 한참을 바라봐도 결코 자신을 볼 수는 없다. 촛점을 최대한 가까이 당긴다고 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콧끝'이 전부다. 그렇다면 '자신'을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가 봐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유리 뒷편에 있는 얇은 금속층, 거울이다. 거울을 뚫어져라 보면 '금속'이 아니라 실제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아마 '미술관'을 표현하는 가장 은유적인 비유이지 않을까. 한 국가, 사람, 문화의 수준을 알기 위해 최선이라면 그 국가에 살아보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스스로를 보기 위해 촛점을 콧끝에 두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콧끝은 겨우 볼 수 있겠으나 결코 전체를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은 국가와 국민, 시대가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지, 자신들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자신들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흔히 말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사실상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다. 가장 풍족한 지역이며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할 시간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무엇을 남기고자 했고 무엇을 보여주고자 할까. 그 흥미로운 관찰을 '백야의 미술관'이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덴마크의 루이지아나 미술관'은 바닷가 언덕에 지어져 있다. 이곳은 미술관이라기보다 철학을 담은 산책로에 가깝다. 거장들의 조각과 회화가 바다와 숲 사이에 놓여져 있다. 건물은 조용히 자연과 하나처럼 묻혀 있다.

초록색 병에 담긴 '칼스버그 맥주'는 내가 유학시절 적잖게 즐겼던 맥주다. 여기서 '칼스버그 맥주'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칼스버그 맥주'의 창업자가 만든 '카르스베르 미술관'의 이야기다. 이곳에서는 프랑스 인상주의를 만날 수 있다. '소유'가 아니라 '기증'의 방식으로 건축된 이 미술관의 면면은 덴마크 사회가 자본을 어떤 식으로 순환시키는지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나라 중 하나일 것 같은 '노르웨이'에서도 역설적인 작품이 있다. 뭉크의 '절규'다. 고요한 외면과 달라 내면에는 스스로가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지를 떠올린다. 이곳 조각상은 대부분 벌거벗어 있다. 노르웨이는 굉장히 차가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정서적인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하지는 않았을까.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는 유럽 왕정의 권위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유럽이다'라는 자긍심을 듬뿍 가지고 있다. 피카소, 달리, 앤디워홀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시대를 대표하며 비추고 있다. 왕실의 전통과 근대라는 모호한 경계 속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투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다.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황실'이 수집한 작품들이 잔뜩 있다. 쉽게 말해 유럽 예술의 금고다. 정교한 궁전 내부에 마티스와 렘브란트가 나란히 걸려 있다. 몇 걸음을 옮기면 트레챠코프 미술관도 있다. 이곳에서는 농민의 삶, 혁명, 전장에서 죽은 수많은 러시인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미술관은 그저 유명한 작품을 벽에 걸어두고 입장료나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시대와 사람들이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지 했던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다. 국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두지 않는다. 때로는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 타국가의 그림을 걸어두기도 한다. 그림을 핑계 삼아 보여주고 남기고 싶은 모습을 저장하고 전시한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그저 미적인 표출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흔적'이다. 어쩌면 미술관에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빨간색, 파란색 물감의 배열이 아니라, 그 '철학적 고민'과 시대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남기고 보여주고자 했는지 했던 수많은 고민과 시간들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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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들에게
한종윤 지음 / 다산글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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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실제로 '꿈일기'를 쓴다. 그는 다양한 인터뷰나 책, 에세이 등에서 자신이 아침에 일어나면 꿈을 기록하고 그것을 '창작의 소재'로 삼는다고 말했따. 그렇게 '제3인류', '티나토노트', '죽음' 등 다양한 작품들이 꿈을 통해 영감을 얻었고 차후 더 많은 소재들이 꿈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란 '꿈'이라는 것의 속성이다.

'창작의 소재'

한 학생을 만났다. 학생은 스스로 꿈도, 잘하는 것도 없다고 했다. 그탓으로 선생님께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편을 들어주자면 그것이 '나쁜가'하는 것이다. 창작 소설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 받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꿈'을 '창작의 소재'로 삼았지, 이루고저 하는 목표로 두지 않았다. 그것은 꿈이 갖는 속성이다.

꿈은 망상과 같은 것이다. 무엇이든 꾸어도 괜찮고 추상적이어도 좋으며 대단한 것을 갖고만 있어도 주변으로부터 인정 받는다. 극현실이며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어떤 '순간'과 '시점'만을 잘라내어 그려낸다.

그게 꿈에 관련된 속성이다.

길을 걸아가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걷다가 아무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도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인터넷 SNS에 접속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자, 과연 그 많은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고 살고 있는가.

본래 꿈이란 매일 아침 새롭게 부여 받는 것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최고의 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갑자기 평범한 중학생이 꿈속에서 '파인만의 경로 적분'을 꿈에서 만날 수는 없다. 이미 현실에서 학습한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상상일 뿐이다.

'꿈을 가져라',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수만분의 1의 생존률을 가진 러시안룰렛을 이겼던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 였을지 모른다. 메스컴은 본래 '현실'보다 '꿈'을 좋아하고 '절제'보다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가.

'나'야말로 분명하게 '꿈'도 '잘하는 것'도 없다. 그러고보면 나를 알고 있거나, 내가 알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꿈'이라는 것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처럼 아주 신선한 '창작의 소재'이자 '자극제'가 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무언가에 몰두하다보면 꿈에서 꽤 괜찮은 방향을 보여 줄 때가 있다. 고로 그런 상황에서는 그 '망상'과 '방향'이 현실을 이끌어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삶은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쪽'이 목적지라고 해서 반드시 동쪽 방향으로만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막다른 길이 나오면 뒤를 돌아 설 줄도 알아야 하고, 후진 길을 만나면 조금은 우회하여 남쪽으로 갈 수도 있어야 한다. 방향은 잊지 않되, 분명한 것은 만나는 상황에 대한 꽤 현명하고 유연한 대처다. 그리고 때로는 '꼭 동쪽인 이유가 있겠는가'하는 더 포괄적으로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한번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다. 워낙 운동에는 젬병이라 그날도 엉망으로 포지션을 지키고 있었을 때, 축구를 꽤 잘하는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 친구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 공을 두었다.

조금 높게 올라간 공, 밖으로 걷어내는 공, 반대에 있는 우리 편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 공.

어느날 그 친구는 말했다.

"원하는 곳에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먼저 공을 차고 그것이 '의도'였다고 강하게 주장하면 돼."

그것은 그 뒤로 약간 나의 철학 같은 것을 형성했는데, '선택자체'보다는 '받아들임'의 자세가 '좋은 선택'을 만든다는 것이다.

자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다면, 일단 아무거나 고르고 기가막하게 만족하면 그것은 최고의 선택이 된다.

고집스롭게 철도 맞지 않고 때도 맞지 않는 꿈을 지속하는 것보다 언제나 유연하게 대처하며 '이것이야 말로 꿈'이었다,라고 받아드릴 수 있는 자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를 바꾸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은 80억이나 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한 목표의 의식을 가지고 꿈을 이루고 잘하는 것을 발전해 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삶에 만족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꾸준히 발전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일론 머스크'의 꿈은 게임 개발자'였지, '우주선을 만들고 화성'으로 가는 것이 아니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초에 꿈이라고 갖고 있지 않았으며, 아인슈타인은 '음악가'가 되기를 바랐다. 팝의 여왕 마돈나는 '발레리나'가 꿈이었고 '안젤리나 졸리'는 의사가, 빌 게이츠는 '수학자나 교수'가 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롯데' 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의 꿈 또한 '기업가'가 아니라 '작가'가 꿈이었다.

그들은 과연 꿈을 이루었는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인물들 중 상당수의 책을 읽었을 때, 그들은 '꿈'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아니라 기회를 마주했을 때의 적절한 대응이 중요했다. 또한 '꿈'보다 '현실'에 최선을 다했다.

한종윤 작가는 청소년들과 진심 어린 소통을 한다.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너희는 잘못이 없다'며 그들의 편을 들어준다. 그는 10년 넘게 청소년들을 상대하고 있으며 무기력증이나 ADHD, 우울증, 그리고 인간관계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과 이야기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루지 못한 욕망들을 다음 세대에 전이하고 살고 있는가, 스스로도 이루지 못한 '꿈'이라는 추상적 이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현실과의 간극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있는가. 어쩌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극에 달할 때, 삶은 패배적이고 망상적인 사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잘 하는 것도 없고 꿈도 없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며 매일 유동적으로 바뀌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밤 일어나고 나면 잊혀질 일회성 꿈을 꾸다보면 언젠가 개중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가 '현실에 적용해 볼 법 하네'하고 가볍게 찾아올 것이다. 그럼 그것에 대해 열정을 갖고 해봐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 최선의 삶을 살며 다음 꿈을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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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해부학 수업 - 머리털부터 발가락뼈까지 남김없이 정리하는 인체의 모든 것 드디어 시리즈 7
케빈 랭포드 지음, 안은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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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광활하지만 우주를 구성하는 재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우주 구성 원소는 118개다. 원소들은 원자 단위로 존재한다. 그리고 원자들이 결합한 것이 '분자'다.

요즘 아이가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한창한다. 블록을 가지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레고'를 닮았다. '마인크레프트'와 '레고'의 공통점이라면 많지 않은 소재료를 가지고 쌓고 조립하여 완전히 새로운 완성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우주 그러니까, 만물이라는 것도 그 매커니즘이 다르지 않다.

인간이 지금까지 발견한 원소는 총 118개다. 118개로 우주가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대까지의 추정이지만 그것만으로 '지구'와 '별', '생명체'까지 설명이 꽤 잘 되긴한다. 고로 세상만물을 구성하는 단위는 대략 다 거기서 거기이며 길에서 밟고 지나가는 '미물'부터 '돌', '사람' 심지어는 '매운 라면 수프'까지 모두 같은 레고 블록을 사용하고 있다.

'레고'는 모양과 색깔이 다양한 블록을 갖는다. 이 단위를 어떻게 조립하느냐를 가지고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블록을 이렇게 조립하면 '자동차'가 되고, 저렇게 조립하면 '집'이 되기도 한다. 어떤 블록들은 심지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스스로 움직이기도 하고 어떤 블록들은 꽤 말랑말랑해 보이는 질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특히 수억 년 전에는 여러 원소들이 '물'과 '광물'을 비롯한 다른 '분자'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가 우연히 섞이게 되는데, 이렇게 연결된 유기체가 스스로 복제하는 물질의 특성을 갖게 됐다. 그것이 세포의 시작이다.

단세포 생물이 탄생하고, 오랜 진화를 가쳐 복잡한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복잡한 생명체는 또 여러 '기관'을 가지는데 그것들의 조합 방식에 따라 '인간'이 되기도 하고 '여타 동식물'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몸에는 대략 34조개의 세포가 있다. 그 세포 속은 작은 기계 부품처럼 생긴 구조물들이 있다. 대략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보관하는 핵,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 같은 것들이 있다. 이 소기관들은 단백질이나 지질, 탄수화물, 핵산 등으로 이뤄져 있고 이들은 모두 분자라고 부른다.

핵심은 '조합'과 '상호작용'이다. 객체로 존재하던 단위들이 서로 조합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완성체'를 구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존재가 '인간'이다. 조금더 거시적으로 갔을 때, 우리는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구성하며 인류라는 문명을 구성한다. 고로 '해부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람의 배를 갈라 그 속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눈으로 관찰하고 '이름'을 붙여 명명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작은 단위의 구성체들이 어떻게 조합되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 일이다.

흥미롭게도 모든 구성체들은 남김없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인데,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어떤 것들도 엄밀히 말하면 어떤 방식이든 다른 것과 상호작용하며 우리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니 해부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몸의 지도'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이 조립된 나'라는 것이 어떤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부품들이 어떤 규칙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무엇을 위해 그렇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팡가하는 일이다. 고로 생각은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넘어 갈 수 있다.

'왜 간은 거기에 있어야 하는가', '왜 심장은 뭄추지 않아야 하는가', '근육은 왜 그렇게 붙어 있고, 뇌는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가'이다.

고로 근원적 질문과 철학이 해결되지 않으면 단순히 의학적 지식을 외운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조립과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우리는 생명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신체의 고장이나 치료 혹은 병리학과 의학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앞서 모든 것은 원자로 이뤄져 있고 원자는 우주를 구성하고 있으며, 조합과 상호방식에 따라 '생명'이 되기도 하고 '무생물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즉 다시 말해, '조합'과 '상호방식'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의학'이나 '병리학', '해부학'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천문학', '화학', '물리학' 등 전반적인 통찰을 만들어 낸다.

'드디어 만나는 해부학 수업'은 이름 그대로 제대로 해부학을 '이해'하는 수업이다.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조립도처럼 따라가며 설계 원리를 파악하게 만든다. 공부하는 사람의 배경이 무엇이든 누구나 따라올 수 있또록 설계되어 있고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아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당연한 모든 구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깨가 그렇게 생긴 이유도 있고, 심장이 그렇게 생긴 이유도 있다. 척주가 그렇게 연결된 이유도 있다. 몸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나', '지구', '사회'도 그렇다. 그냥 존재하는 거은 없다.

모두 의도된 구조물들이다. 그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해부학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물리적 조합체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다시 그 조합의 출발점을 돌아가보면 단순 118개의 원소, 몇 가지 분자. 그리고 몇 조개의 세포가 구성원이다. 놀랍도록 단순한 이 재료들이 조합이 되고 상호작용을 하며, 결국 '나'라는 구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해부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의료계 종사자'들만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하는 우리 대부분의 관심가져야 할 내용이 아닐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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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러버스
최정식 지음 / 파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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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표지부터 끌리지 않을까.


 강렬한 색감과 Jazz Lovers'라는 손글씨는 '재즈 음악'을 시각화하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애플뮤직'을 구독하고 가장 많이 듣는 음악 중 하나가 '재즈'다. 이를 '재즈'라고 표현했지만, 이 음악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재즈'가 아니라 '째~즈'라고 읽고 발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음악을 부르는 명사는 꼭 그 음악의 성향을 닮은데, '힙합'은 꽤 '힙합'스럽고 '째~즈'는 끈적끈적하고 리드미컬한 것이 그 음악의 성향을 잘 표현하는 명사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현석은 국악 명인의 아들이다. 해금을 연주한다. 다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피아노, 그리고 째즈.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그 바람 사이에서 흔들거린다.

 글의 소재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은 국악인 '송소희'다. 얼마 전, '송소희' 씨가 나온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국악은 '클래식'이고 '클래식'은 정확한 소리'와 '정형화된 장단'이 있단다. 즉 클래식은 '답이 정해진 음악'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가 이미 정해져 있고 잘함과 못함의 기준도 분명하고 선명하다고 했다. 반면 째즈는 다르다. 째즈는 정해진 답이 없다. 감정의 선만 있을 뿐이다. 구조보다는 즉흥에 의미를 두고 정답보다는 흐름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송소희'의 인터뷰 내용이 아니더라도 '재즈'하면 떠오르는 꽤 유명한 장면도 함께 떠오른다. 중년의 남자와 여자가 즉석에서 '재즈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하는 질문에 음악으로 답하는 영상이다. 짜여진 악보도 없고 정답도 없다. '도입'과 '끝'도 없다. 그저 흐름일 뿐이다. 영상을 보기에 째즈가 무엇인지 답하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답이 됐다.

 주인공 현석은 해금을 놓고 재즈 피아노로 이동을 한다. 어쩐지 클래식에서 째즈로 넘어가는 과정이 단순히 악기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가 않다. 마치 짜여진 틀과 구조에서 자유로움으로, 이성과 기준에서 '감성'과 '감정'으로 넘어가는 듯하다. 답이 정해진 세계에서 '정답이 없는 세계로 이주한 셈이다.

 재즈 러버스는 재즈 평론가이자, 소설가, 영화음악 평론가, 카피 라이터'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최정식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배우 '김미숙'의 배우자로도 알려져 있다. 예술에 관해서 분명한 철학이 있을 법한 이런 배경들이 소설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2021년 일본과 한국에서 먼저 출간했다. 고로 아이러니하게 이 소설은 한국 소설이면서 '원제'가 따로 존재한다. 클래식이라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으로 넘어가는 전개에서 주인공 현석은 '연미'를 만난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째즈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한다. 다양한 째즈들이 소설의 '소재'가 되고 어떤 째즈는 주인공 '현석'과 '연미'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아마 이 소설 또한 표지와 이름처럼 '째즈'를 닮은 듯하다.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이성적인 것인 설명보다는 말하지 않는 잔잔한 감정의 선들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는...


 어쩌면 째즈는 너무나 '정형화'된 우리의 삶에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이 '자유로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음악이다. 또한 이를 잘 표현하는 소설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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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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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도쿄 출생인 히루마 할머니의 아버지는 약사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약을 처방받은 환자들이 건강을 회복한 두에 '감사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약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아버지가 창업한 약국을 이어 받아 오랫동안 그 약국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2018년 11월, 세계 최고령 약사라는 기네스 기록을 세웠으며 100세가 넘은 지금도 히루마 약국 오즈사와점에서 주1회 직접 근무하며 손자와 함께 약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단순히 '비즈니스' 혹은 '의학적인 철학'이 아니라 꽤 '사람'에 관한 철학으로 약학을 공부한 그녀는 아픈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과정에서 털어놓는 고민들을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다. 건강이라는 것이 꼭 신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과 '마음가짐', '습관' 등 다양한 부분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멘토'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가 했던 조언 중 다음과 같은 조언이 인상 깊다.

*

등을 바르게 펴고 분명하게 고개를 숙이기. 

상대방의 눈을보고 인사하기.

공경하는 마음을 담은 인사는 좋은 하루를 불러옵니다.

*

그녀는 마음을 담아 밝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는 기분좋은 인사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공경하는 마음을 전달해준다고 조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하는 것이, '나'에게도 되려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양 사회에서 관계란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상명하복'의 문화가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

나이 혹은 기수로 세세하게 상하를 구분하고 위에서 아래로의 정보 전달 방향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회이기에 대부분의 동양국가들은 '승리'와 '패배'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즉 흔히 '제로섬'게임이라는 식으로 '승리'를 규정한다.

이런 인식 덕분에 상대가 좋다는 의미가, '나의 손해'로 여겨지기 쉽다. 누군가가 이익을 얻었다면 반대급부로 반드시 반대쪽에서는 손해를 봐야한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감정과 관계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누군가가 이익을 보더라도 함께 이익을 볼 수 있는 'win-win'구조가 반드시 존재한다.

누군가가 기분좋게 인사를 하면 그 '좋은 감정'에 상응하는 '나쁜 감정'을 누군가가 얻어가는 것이 아니다. 고로 상대의 기분을 좋게하면 반대에서 나의 기분 역시 좋아진다.

어떤 의미에서 '약을 짓는 약사'의 처방치고는 굉장히 인간적이다.

다른 조언에서는 꽤 약사다운 조언도 있다.

*

습관이 많아지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몸이 가벼워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여백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

굉장히 공감되는 말이다. 요즘은 스스로 건강에 관해서 신경쓸 여력이 없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건강이 나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는 굉장히 좋은 습관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뜨면 상온에 두어둔 물을 한컵 들이키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 습관이되면 거기에는 '의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의 '의지력'은 '소모품'이라 제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행동을 정신력과 의지력으로만 이끌어가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리의 의지력이 완전히 소모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습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습관은 '의지력'보다는 덜 타오를지 모르지만 지속력을 가진다. 쉽게 말해서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할 수 있게 한다.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은 큰 의지력을 들이지 않으면서 건강을 챙기는 매우 중요한 열쇠다.

히라무 에이코 작가의 조언은 그저 시간을 쌓아온 노년의 지혜가 아니다. 그녀가 약학을 평생 실천하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에서 비롯된 처방이다. 어떤 의사와 약사는 불필요한 치료와 검사를 권유하고 고가의 장비에 대한 운용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과다한 진료를 행하기도 한다.

'사람'보다 '사업'이 우선인 사회에서 '의술'은 분명 과거보다 더 나아졌음에도 우리는 '다른 의사'를 찾아 다니는 아이러니한 사회를 살고 있다. 의사의 진료가 아니라 진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약에 대한 처방뿐 아니라 조언을 함께 내놓으면서 그녀는 더이상 약사가 아니라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어디 '약사'에게만 그러한 철학이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가지는 대부분의 직업은 보통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댓가를 받는 형태로 호구를 해결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철학'은 과연 '사람'에게 있는가, '사업'에게 있는가, 생각해보게 한다. 사필귀정, 매우 높은 확률로 '사업' 또한 '사람'이 기반이기에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가진 '사업'은 반드시 그 진가를 인정 받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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