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의 미술관
최정표 지음 / 파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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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습을 알기 위해 서는 곳은 어디인가. 손을 눈앞에 대고 한참을 바라봐도 결코 자신을 볼 수는 없다. 촛점을 최대한 가까이 당긴다고 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콧끝'이 전부다. 그렇다면 '자신'을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가 봐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유리 뒷편에 있는 얇은 금속층, 거울이다. 거울을 뚫어져라 보면 '금속'이 아니라 실제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아마 '미술관'을 표현하는 가장 은유적인 비유이지 않을까. 한 국가, 사람, 문화의 수준을 알기 위해 최선이라면 그 국가에 살아보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스스로를 보기 위해 촛점을 콧끝에 두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콧끝은 겨우 볼 수 있겠으나 결코 전체를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은 국가와 국민, 시대가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지, 자신들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자신들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흔히 말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사실상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다. 가장 풍족한 지역이며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할 시간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무엇을 남기고자 했고 무엇을 보여주고자 할까. 그 흥미로운 관찰을 '백야의 미술관'이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덴마크의 루이지아나 미술관'은 바닷가 언덕에 지어져 있다. 이곳은 미술관이라기보다 철학을 담은 산책로에 가깝다. 거장들의 조각과 회화가 바다와 숲 사이에 놓여져 있다. 건물은 조용히 자연과 하나처럼 묻혀 있다.

초록색 병에 담긴 '칼스버그 맥주'는 내가 유학시절 적잖게 즐겼던 맥주다. 여기서 '칼스버그 맥주'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칼스버그 맥주'의 창업자가 만든 '카르스베르 미술관'의 이야기다. 이곳에서는 프랑스 인상주의를 만날 수 있다. '소유'가 아니라 '기증'의 방식으로 건축된 이 미술관의 면면은 덴마크 사회가 자본을 어떤 식으로 순환시키는지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나라 중 하나일 것 같은 '노르웨이'에서도 역설적인 작품이 있다. 뭉크의 '절규'다. 고요한 외면과 달라 내면에는 스스로가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지를 떠올린다. 이곳 조각상은 대부분 벌거벗어 있다. 노르웨이는 굉장히 차가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정서적인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하지는 않았을까.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는 유럽 왕정의 권위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유럽이다'라는 자긍심을 듬뿍 가지고 있다. 피카소, 달리, 앤디워홀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시대를 대표하며 비추고 있다. 왕실의 전통과 근대라는 모호한 경계 속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투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다.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황실'이 수집한 작품들이 잔뜩 있다. 쉽게 말해 유럽 예술의 금고다. 정교한 궁전 내부에 마티스와 렘브란트가 나란히 걸려 있다. 몇 걸음을 옮기면 트레챠코프 미술관도 있다. 이곳에서는 농민의 삶, 혁명, 전장에서 죽은 수많은 러시인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미술관은 그저 유명한 작품을 벽에 걸어두고 입장료나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시대와 사람들이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지 했던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다. 국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두지 않는다. 때로는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 타국가의 그림을 걸어두기도 한다. 그림을 핑계 삼아 보여주고 남기고 싶은 모습을 저장하고 전시한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그저 미적인 표출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흔적'이다. 어쩌면 미술관에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빨간색, 파란색 물감의 배열이 아니라, 그 '철학적 고민'과 시대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남기고 보여주고자 했는지 했던 수많은 고민과 시간들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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