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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 - 일상예술가의 북카페&서점 이야기
정슬 지음 / SISO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보리색에 깔끔한 디자인만 아니라, 제목이 매우 감성적이다. '정슬' 작가 님의 책이다. 그녀는 수원시 팔달구에서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 님이다. 그녀가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겪었던 소소한 일상과 손님들과의 에피소드 그리고 생각들을 적어 둔 책이다. 책에는 큼지막한 사진들이 들어가 있어 읽은 재미가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진이 카페의 내부를 비치고 있어, 이미 북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낭만의 직업일 수 있는 '북카페 사장' 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그녀는 어쩌면 현실적인 고민도 많이 하고 있는 듯 하다. 당신의 취미가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비지니스'가 되는 것 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내가 사는 마을 또한 매우 작은 마을이다. 나의 동네에도 조그마한 북카페가 있다. '봉 봉'이라는 곳이다. 나는 그 카페를 딱 한 차례 방문했었다.
추적 추적 비가 오는 날, 여동생의 소개로 첫 방문을 했었다. 카페와 커피, 비 그리고 책은 3박자가 참 잘 어울렸다. 처벅 처벅 내리는 비를 피해 카페를 들어가니 고소한 커피 냄새가 난다. 커피를 주문하고는 자리에 바로 앉는 사람은 흔치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커피를 주문하자마자 벽면을 따라 정리된 책의 목록을 살펴본다. 그제서야 커피향에 숨겨져 있던, 책 향이 올라온다.
사실 나는 북카페를 당시 한 차례 이용한 이 후로, 단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다.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사실상 힘들기 때문에, 자기 전이나 이동 시 혹은 아이와 놀면서 등 짜투리 시간에 독서를 한다. 자세는 엎그려 일었다가 쌍둥이 녀석들의 엉덩이에 발을 올리기도 하고,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서 읽기도 한다. 빈둥 빈둥 누구의 신경도 쓰지 않고, 책을 읽다가 잠들기도 한다. 나에게 책은 그런 소품인 것 같다.
워낙 집에서는 에너지를 추전하고 밖에서는 소모되는 타입이다 보니, 카페에 정식으로 나가서 책을 읽는 것에 피로도를 느끼기는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다시 북카페를 들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내가 왜 그런 여유가 없었을까? 생각해봤다. 지난 주만 하더라도, 내가 의미없이 보냈던 시간들은 모아도 충분히 두 시간 이상은 됐을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기보다, 그럴 낭만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읽다보니 소소한 재미가 있다. 특히나 '키즈존'과 관련된 이야기 또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쌍둥이 녀석은 이제 4살이다. 다른 건 어느정도 통제가 가능한 나이가 됐는지, 잘 타이르고 말을 하면 어느 정도 납득하며 수긍하는 듯한 것 같다. 하지만 녀석들이 절때로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대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풍선'이다.
예전에 아이들과 롯데월드를 갔을 때 기억이 난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 아이들과 롯데월드에 도착하고 애드벌룬을 타려고 2시간을 기다리다보니,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드디어 심심한 기구 하나를 타고 나니, 모두가 기진맥진해 있었다. 특히나 천진난만하게 아버지를 쫒아다니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아이들에게 재밌는 놀이기구를 마음 것 태워주지는 못하지만, 좋은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헬륨 풍선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얼마에요?"
점원은 얼마라고 이야기를 했다. 도저히 내가 선뜻 사기 아까운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 사줘야겠지 싶었다. 그때 다율이가 비싼 헬륨 풍선이 아닌, 플라스틱 막대기로 고정된 평범한 고무 풍선이 이쁘다고 졸라댔다.
'그래.. 너도 좋고 나도 좋다.'
나는 고무 풍선 2개를 사주었다. 쌍둥이 녀석들을 옆으로 비싼 뽀로로 풍선과 캐릭터 풍선을 든 아이들이 지나갔다. 내심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행복해 하는 표정으로 그 풍선을 며칠 동안 들고 다녔다.
그런 소소한 행복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 고맙기도 하고, 때론 부럽기도 했다.
그 뒤로 부터 아이들의 풍선 사랑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이마트를 구경갔었다. 이마트 입구를 들어가자. 아이들은 화장품 코너에 꽂혀 있는 홍보용 풍선을 보고 자제력을 잃었다. 그 풍선을 빼달라고 얼마나 때를 쓰는지, 원래는 아빠가 잘 타이르면 금새 수긍하는 녀석들이 었는데 풍선을 사달라고 너무 조른다.
'풍선'도 발음에 어려워 '풍셔~', '풍셔~' 이런다. 어찌나 점포에서 보기 안타까웠는지 점원이 풍선 두 개를 꺼내 준다.
아이들과 지내다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상태가 오기도 하고, 주변에 피해를 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는 그래도 최대한 매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은 흰색 백지장이다. 아버지가 하는 모든 행동을 자신의 백색 종이의 무의식 위에 복사해둔다. 언젠가 부모의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말투가 아이에게 베어나올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편이다. 책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일이다. 중간에 아무리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작가의 말을 끊고 내 이야기를 계속할 수는 없다. 물론, 정말 형편없는 책은 중간에 덮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왠만해서는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경우가 많다. 이런 훈련 덕분인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이타적인 감정을 가져 주기도 한다.
북카페란 참 매력적인 공간인 건, 사실이다. 내 주변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신선하고 즐겁고 반가운 일이다. 해외 여행에서 반가운 한국인을 만나는 것 만큼 반갑다. 같은 종족을 찾은 동족감이 든다고나 할까.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은 참으로 매력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영상매체가 대세라고 한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찾고,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며 더 많은 소통을 한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이제는 영상문화가 활자 문화를 대체 할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상을 보는 것은 빠르고 직접적이다. 이는 마치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 것과도 같은 것 같다. 인스턴트 스틱커피를 종이컵에 '스르륵' 비우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넣는다. 그리고 비워진 플라스틱 스틱으로 종이컵을 휘~ 휘~ 젓으면 3초면 달달한 커피가 완성이 된다.
외국에서는 인스턴트 커피가 없다. 한인가게나가야, 이런 인스턴트 커피를 살 수 있다. 처음에는 왜 저들이 이렇게 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이런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바보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커피는 단순히 '섭취한다.'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과 향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배추김치가 발효되거나 와인이 숙성하는데는 값비싼 재료가 많이필요하겠지만, 그 많은 재료들 중 최종적으로 이 맛과 품질을 결정하는 재료는 바로 '시간'이다. 만드는 시간 뿐만 아니라, 먹는 시간 또한 매우 중요하다.
누구도 오랜 시간 숙성한 와인을 소주 잔에 담에 '꼴깍' 원샷하지 않는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음미한다. 책과 커피의 공통점은 그렇다. 즉석적이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지만, 천천히 시간을 들여 숙성되고 먹을때는 음미가 가능하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진 작가의 글인 만큼 '이 책.. 참.. 책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지는 느낌이 드는게 어쩐지 동네 북카페를 바로 가봐야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