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저항하라 - 나를 지키고 이끄는 삶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조언
조주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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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감싸고 있는 표지가 굉장히 감각적이다. 작가인 '조주희' 님을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띠지를 보고 난 후 페이지를 몇 페이지를 넘기고 이런 생각을 했다.

'엄청 동안이네?'

'사회적으로 직급이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네?

다시 몇 페이지를 넘기고,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그녀가 불편해 했던 많은 사람들과 상황에 내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반응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책은 요즘 많이 언급되는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 여성으로써 사회에서 차별되는 여러가지 상황과 감정을 그녀는 담백하게 적는다.

어렸을 적, 사촌의 집에 놀러가면, 남녀가 편을 가르고 싸웠다. 어린 아이답게 유치한 주제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다툼을 했다. 유치원을 겨우 졸업했을 나이에, 정작 본인들에게 해당 되지 않는 주제인 '군대', '임신', '힘', '키' 등 시덥잖은 싸움을 했다.

그 싸움은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은 '누가 더 열등한 존재인지 증명하려는 싸움이었다.

'남자는 군대가 가잖아!'

'여자는 임신하거든?'

신성한 국방의 의무와 출산이라는 경의로운 능력을 자신의 열등으로 느끼며 상대에게 어떤 삶이 더 후지진지를 따지고 들었다. 어린 시절 제사나 차례를 지키기 위해 할머니 댁으로 가면, 나와 남자 사촌 동생은 제삿상에 절을 하고 끝나면 제삿밥을 양것 먹었다. 우리가 제사를 하고 있던 사이,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촌 누나들은 제사를 지내는 방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부엌에 쪼그려 앉아 음식을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 기억은 지금도 유효하다. 남자이기 때문에 분명히 갈라진 역할분담이 있었다. 누나들이 차례주는 밥상이 완성되기까지 어른들 옆에 앉아 밥을 먹었다. 밥 먹을 때는 남자 어른들 옆에 작은 상을 차려 작은 어머니와 누나들은 밥을 먹었다. 차려진 밥을 먹고 나면, 치워주길 기다렸고 치워진 밥상을 누나들은 설거지 했다. 그리고 설거지가 끝나면 뻔뻔하게 비슷한 싸움을 했다.

'남자가 더 힘들거든?'

'여자가 더 힘들거든?'

벌초를 떠나는 날이면, 사촌 누나들은 나오지 않았다. 나와 사촌 동생은 아침부터 나와 햇볕이 강한 하루를 잡초와 풀을 베면서 보냈다. 커다란 일을 하지는 않지만, 점점 막중해지는 일에, 나중에는 녹초가 될 정도로 노동이었다. 새벽부터 오전내내 노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여동생이 자고 있다. 이유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누가 누가 더 힘든가?'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면, 보낼 수록 내가 더 불리하다는 열등의식이 커져갔다. 결국, '남녀차별'이라는 주제에 민감한 쪽이 여자들이다. 이는 확실하게도 남자보다 여자의 삶이 조금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한다.

뉴질랜드는 세계 남녀 평등 지수가 10위이다. 우리나라는 100위 권에도 들지 못한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단순히 우리나라 대통령이 남성이고 뉴질랜드 총리가 여자라서 그럴 리는 없다. 고위층에 얼마나 남녀가 평등하게 진출해 있는지를 따지는 문제도 아니다.

뉴질랜드에서 공사장을 가면, 공사장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참 신기할 만큼 젊은 여자들이 많다. 공사장에서 햇볕을 받으며 일하는 여성과 남성은 큰 차이가 없다. 무겁거나 높은 물건을 들 때, 남자가 대신 들어주는 일은 매너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 취급하듯 상대를 무시하는 일이다.

버스를 타면, 버스기사 또한 남녀가 비슷하다. 상담사라는 직업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비슷하다. 우리나라처럼 남성이 많은 직업군과 여성이 많은 직업군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상담사는 거의 여성인 경우가 많다. 공사장 인부들은 남성인 경우가 많고, 항공사 승무원 또한, 남녀 구분 없이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남녀가 같은 일자리 시장을 갖기 위해, 여성과 남성 모두 생물학적인 열등함을 극복해야 한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사람은 키가 작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보니, 일본애들의 키는 작지 않았다. 되려 큰 애들이 많아 보이기도 했다. 사람을 구분할 때, 일반론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이는 큰 오류를 낳는다. 여자는 힘이 약할 수 있지만, 모든 여자가 약하지는 않다. 남자는 힘이 셀수 있지만 모든 남자가 힘이 세지는 않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여자가 힘이 약하니, 여자는 채용하지 않겠어!'라는 사회적 아집은 아시안은 소심하고 눈치보는 게 심하니 '운동 경기 심판에 적합하지 않아!' 따위의 모순 덩어리 차별을 만들어 낸다.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교포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이 말을 안하고 있으면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고 했다. 그럼 그는 '뉴욕' 이라고 대답한다.

편견은 그렇다. 동양인은 영어를 못한다는 편견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동양인도 차별 받는다. 여자는 공동체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편견 때문에, 퀴리부인 같은 훌륭한 과학자도 서류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는 곳이 한국일 것이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꽤나 있다. 게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는데 '대부분 고학력에다 한창 일할 나이의 여성들이 가정과 육아 때문에 일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낭비이고 국가경쟁력의 손실아닌가' 이 부분이다. 언제부터 누군가의 소유인 사업체로 입사하여 남의 일을 거드는 게, 나의 가정과 아이를 보살피는 일보다 더 중요해졌는지 모른다. 이는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갖는다는 전체주의사상이다. 남의 일이나 거들다, 사업주가 내어주는 급여를 받고 생활하는게 삶의 '주'가 되는 일은 어쩐지 슬프다. 어쩌면, 나의 아이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겨놓고 마음 것 남의 일을 도우며 더 능력있는 노예가 되려는 슬픈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떠나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그 부분은 공감이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는 비단 그녀와 나 뿐만아니라, 우리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차이이다.

책의 구성은 초반에 페미니즘에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언론인으로써의 생각이 많다. 좋은 에세이는 꼭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삶과 생각을 읽을 때, 나와 비슷하거나 공감되는 사람의 글만 읽는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더욱 좁아질 뿐이다. 에세이는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을 엿봄으로써 내 식견을 넓히는 일이다. 이 책은 절반은 공감되고 절반은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어쨌거나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나는 또 하나의 식견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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