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이다. 이 이름은, 정확히 그녀의 소설은 내가 언제나 관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이다. 특히,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 방>과 같은 소설들은 20대 초반의 나를 꽤 강하게 흔들어 대던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다소 편한 후방의 부대(공군사관학교)에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던 덕에 나에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제법 있었다. 입대하고 어느 정도 계급이 올라가 다소 눈치를 덜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가 되자 난 업무를 위해 사관생도들이 주로 생활하는 구역을 지나게 될 때면 도서관에 들르곤 했다. 이 도서관에서는 나와 같은 일반 사병들에게도 책을 대여해 주었기에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를 수 있었고, 바로 이 시기에 난 그 도서관에 있는 신경숙이라는 이름이 저자로 들어간 책은 모조리 읽었다.

그러던게 언제부터인가 조금은 의식적으로 그녀의 소설을 다소 멀리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난 그녀의 근작들인 <리진>이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소설들을 읽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어딘지 먹먹해지는게 그간 그녀의 소설을 멀리하려 한 이유일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그녀의 신작 단편 소설집 소식을 접하니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과연 난 이번에도 이 책에 손을 뻗지 않고 지나갈까?  

소설가 신경숙씨(48)의 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문학동네)은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간 인터넷서점 예약판매만으로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아직 나오지 않은 책에 대한 관심은 장편소설 < 엄마를 부탁해 > 가 31개국에 수출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한 신씨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읽고 손보면서 내 방, 내 책상으로 완전히 돌아온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곁에 놓였으면 합니다."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에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6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단편소설 7편이 묶였다. 

소설집 < 모르는 여인들 > 을 선보인 신경숙씨는 22일 인터뷰에서 "내 작품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세상의 추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록된 단편소설의 인물은 < 엄마를 부탁해 > 의 '엄마'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오는 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눈물겹게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집약되면서 '엄마'가 탄생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잖아요. 어느 순간, 표면에 돌출된 사람들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듯이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들이 없으면 아무도 빛이 나지 않을 거예요."신씨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들 속엔 익명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성화(聖畵)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 말처럼 소설에는 문득 만나게 되는, 숭고한 장면들이 있다.단편 '어두워진 후에'에 나오는 남자는 살인마에게 엄마, 할머니, 형을 잃은 데다 자신이 피의자로 의심받기조차 한다. 괴로움에 무일푼으로 떠돌던 남자는 한 산사의 매표원인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돈이 없으니 그냥 들여보내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배가 고프니 밥을 사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갈 곳이 없으니 재워달라는 말에도 '그러세요' 한다. 한밤중에 깬 남자는 자신에게 방을 내준 여자와 두 동생이 병든 엄마를 중심으로 엉켜 잠든 모습을 본다. 이 장면이 말하자면 '성화'다.그런 숭고한 모습은 단편 '성문앞 보리수'에서 오랜만에 독일에서 만난 두 친구가 좁은 호텔방에 누워 오래전에 함께 부르던 유행가를 다시 불러보는 장면이라든지, 표제작 '모르는 여인들'에서 직장에 다니는 주부와 파출부가 공책에 메모를 하다가 점점 서로를 위로하는 편지로 발전하는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작가는 "그런 대목을 위해 나머지 부분을 쓴 것"이라고 말한다.수록된 단편들 속에서 신발의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것도 평범한 이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신발은 일상적인 물건이면서도 한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잖아요. 신발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비롯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단편 '세상 끝의 신발'에서 한국전쟁 때 열여섯 살이던 아버지와 열다섯 살이던 낙천이 아저씨는 함께 인민군에 끌려간다. 한의사였던 조부의 약초 심부름꾼이던 중대장은 두 소년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는데, 다리를 다친 낙천이 아저씨는 신발이 해져 자꾸 넘어지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성한 신발을 벗어준다."신발 이야기를 해야겠다"('세상 끝의 신발')로 시작한 이 소설집은 공교롭게도 "남편의 메마른 발가락들을 펴서 하나하나 닦아주었다"('모르는 여인들')로 끝난다.< 엄마를 부탁해 > 에서 치매에 걸려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절이 겨울로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 거리를 헤매는 모습으로 그렸던 대목과 아련히 겹쳐진다.이런 보잘 것 없고 소외된 존재들에게 주목함으로써 작가가 바라는 것은 이 세계의 균형이었다."우리가 현대인이 되는 동안 상실해버린 인간적인 체온과 연민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비밀스럽게 하나씩 낳아서 세상에 섞어놓은 것은, 이 별스럽지도 않은 사람들의 인생이 한쪽으로 치우친 이 세계의 한 끝을 끌어올려 균형을 이루어주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신씨는 그러면서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누추하다고 밀쳐버렸던 것들에서 새로운 에너지 같은 걸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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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기자의 글을 좋아한다. 글이 따뜻하기도 하고 깊이도 느껴진다. 그녀의 인터뷰는 꽤 좋다. 이걸로 책까지 냈었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단순한 흥미거리 위주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인터뷰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종종 놀라운 발견을 이끌어낸다. 

그녀가 그림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 어떤 글일지 궁금하다. 서평을 뒤졌는데 못찾아서 일단 출판사 제공의 책 소개를 옮겨놓는다. 

  

 

 

물끄러미,
그림 앞에서, 그 너머를 들여다보며
그림 뒤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겹쳐보며
감정의 수많은 결을 하나하나 쓰다듬어 감지하는,
김혜리 이미지 에세이

“내 안에 고인 물을 조용히 흔들었던,
때로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불붙였던 그림들을
마음 속 화랑의 허랑한 빈 벽에 하나씩 걸었다.
한데 모아놓으면,
그들은 어쩌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내 ‘상상의 미술관’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림과의 인터-뷰
김혜리는 말을 건다. 사람에게, 사물에게. 말을 건네기 전, 그녀는 대상을 세심하게 바라본다. 관찰하고 질문하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이면, 예컨대 대상의 그림자 너머까지 시선을 던진다. 그러고는 대상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인터-뷰의 장엔 언제나 독자를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어렵사리 자신을 내보이며 진심으로 대상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녀는 항상 독자가 나란히 걸을 수 있도록 어깨 옆을 내준다. 김혜리와 동행하면, 그림 한 점을 둘러싼 이야기를 공감각적으로 감지해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감정의 결을 하나하나 쓰다듬은 손길로 빚어낸 듯 유려하기 짝이 없는 그녀만의 감성과 문장에는 특출함이 있다. 그림 앞에서, 그림 뒤에서 우리가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알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김혜리의 문장을 통하면 흐릿하나마 피와 살을 얻게 된다. 그림에게 묻고 싶었던 것들이, 실마리의 서두를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우리는 정의할 수 없던 감정의 실체라는 해답을 찾게 된다. 김혜리의 독백과 방백이 점점이 흩어진 그림 앞의 고백은, 점묘화처럼 그렇게 뒤늦게, 조용히,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먼 고장과 이국 도시의 크고 작은 미술관들은 내가 주민인지 나그네인지 결코 묻지 않았다. 정문에 들어서서 표나 기부금을 내고 라커룸에 배낭을 맡기고 나면, 나는 인생의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고 가볍게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수첩 한 권을 쥐고 한나절을 그림이 걸린 방에서 방으로 소요했고, 생수 한 병으로 끼니를 족히 대신하며 남중했던 태양이 서쪽 창으로 서서히 저무는 광경을 전시실 벤치에 앉아 충만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_서문 中

“근본적으로 오늘날 한 인간이 본업과 취미를 따로 둘 만큼 풍부하게 살기란 불가능하다고 믿어온 내게 그림 보기의 즐거움은 귀족놀이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끝내 내가 등록된 주소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알기에 더 달콤한 도피였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터다. 아,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게 사치를 열망하는가! 희고 중립적인 벽, 더위도 추위도 의식할 수 없는 적정 온도와 습도, 적당한 고요와 속삭임. 많은 현대 아티스트들이 갤러리라는 방습, 방취된 인공의 제도로부터 뛰쳐나오고자 몸부림쳐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평범한 한 관광객에게 미술관의 회랑은 평생 내게 달라붙어온 모든 조건?불온하게도 시대와 국적까지?을 잠시 잊게 하는 희귀한, 그래서 매혹적인 무중력 공간이었다. 그림 한 점 한 점이 독립된 장소였고 국가였다.”_서문 中

마음속 빈 벽에 그림을 걸어 완성한 상상의 미술관
여기 마흔 점의 그림, 마흔 편의 이야기가 있다. 그림과 이야기, 그 사이의 그림자를 오가는 이 묶음에는 경계가 없다. 지은이는 그 자신이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 즉 소설과 그림 속 세계와 현실을 가르는 벽이 훨씬 부드럽고 투명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간 양 그림이란 2차원을 통과하며 주섬주섬 이야기의 파편들을 저장한다. 그러곤 집에 돌아와 미술관에, 갤러리에 두고 온 그림들을 상상의 미술관으로 소환해 한 점씩 걸어보고, 이야기의 파편을 하나하나 조각한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화가가 몇 번의 붓질로 축약한 수천의 상념이 가진 의미에 목말라 한다.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거칠게, 매끈하게, 때로는 희부옇고 흐릿한 붓질로 세운 삶과 죽음의 세계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겹친다. 상상하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김혜리는 인터-뷰의 당연한 준비과정을 우리 대신 기꺼이 해준다. 한 점의 그림이 가진 이야기 조각들을 더듬어 찾아온다. 그러곤 화가의 취향, 배경, 생각, 의미, 드라마, 빛과 색 사이를 고르며 마치 거미처럼 가느다란 씨줄과 날줄을 몇 가닥 뽑아내 마음의 풍경을 직조해낸다.
얼굴 없는 니케 상부터 인물의 감정과 피로가 팔뚝 아래 핏줄처럼 선명하게 비치는 루치안 프로이트의 그림까지 김혜리가 주목하는 그림엔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공허한 틈이 많이 엿보인다. 그녀는 풍경화건 인물화건 그 안에서 어떤 ‘마인드스케이프’ 즉 심상을 한 움큼 잡아내, 책 밖으로 손을 펼치며 공감을 구하는 눈빛을 보내온다. 그 눈빛은 어쩐지 슬퍼 보여, 읽는 이로 하여금 책 속으로 들어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림 앞과 뒤를 오가게 만든다. 김혜리가 흩트려놓은 단어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아 그림 같은 산문을 함께 완성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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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난 건축과는 무관한 공부를 했고 무관한 일을 하고 있지만 주변엔 건축을 전공한 친구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학교를 다닐 적에도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급기야 지금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한 여인을 만나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만약 다른 공부를 했더라면 건축을 공부했을지도 모르겠단 상상을 하곤 한다. 정 따지고 들자면 건축에 아주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다. 건축,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간'이라는 개념으로서 건축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관련 서적도 여러 권 들춰보곤 한다. 이번에도 서점에서 괜찮아 보이는 책을 발견하여 리뷰를 옮겨 놓는다.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정윤수지음 | 궁리 | 403쪽 | 1만8000원 

저자는 "꽤나 긴 시간 동안 무소속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도시를 배회"했다고 한다. 배회라 이름 붙였지만, 지적인 열망을 안은 탐사였다. 탐사 공간은 멀티플렉스, 모델하우스, 테마파크, 백화점, 극장, 모텔 같은 사람들의 욕망이 직접적으로 투사되는 곳들이다.20~30년 전에는 어떻게 살았고, 20~30년 후에는 어떻게 살까라는 물음을 갖고 도시 공간을 돌아다녔다. 

저자는 "날로 비대해져가는 메트로폴리스, 맹진하는 속도와 휴식없는 노동과 번들거리는 물신의 네온사인으로 가득찬 무국적의 글로벌폴리스"라고 공간을 진단했다. 특히 '메트로'와 '글로벌'이 수식하는 '폴리스'에 들어찬 인공 공간을 두고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인공 공간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주눅들고 있다"라고 서문에서 적었다.저자는 첫장에서 광화문광장을 조명한다. 이 글엔 '일그러진 구경거리와 균형 잃을 삶'이란 작은 제목이 달렸다. 광화문광장은 광장인가. '역사성 회복'과 '국가 상징 가로'를 내세운 곳이다. 세종대왕 동상과 역사문화 전시관, 역사물길, 해치상 같은 국가 상징에 부합하는 장식물에다 출입이 금지된 꽃밭이 주인인 듯하다. 이탈리아 건축학자 프랑코 만쿠조가 광장의 특징으로 제시한 '만남' '의견교환' '산책' '휴식'은 광화문광장에서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이다."거대한 중앙분리대에 가까운" 광화문광장에 상주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경찰은 일상적으로 순찰을 돌고, 지하 해치마당으로 이어지는 통로엔 서울시 홍보 영상이 흐른다. 저자는 "거대한 국가주의적 이벤트와 서울시정 홍보만이 가능한 공간, 그곳을 광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라며 " '국가상징의 거대한 공간'이 되는 순간, 관제화되거나 박제화되는 운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인공 공간은 자본의 거대 전시장이다. 저자가 '가설무대의 삶'이라며 예로 든 것은 '견본 주택'에서 시작한 모델하우스다. 이곳은 더 이상 구체적 설계도면과 모형을 보여주는 데가 아니다. "주택 경기의 심리적 지표이자 대형 건설사의 전쟁터"다. 클래식 공연과 미술강좌를 열며 '도심 문화 공간'을 표방하는 이곳은 "브랜드 가치의 공세적인 마케팅으로 귀결"되는 곳이자 "우리 욕망을 대리해 세팅해놓은 임시 가설물"이다.백화점 또한 욕망의 신전이다. 세계 최대 백화점을 표방한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같이 신개발, 재개발 부지에 들어선 초대형 백화점들은 해당 지역의 장소성을 말끔히 제거한 터 위에 들어선 자본과 소비의 욕망이자 물신이다. 저자는 "백화점은 우리 앞에 새롭게 건조되고 새로운 경험 공간을 계속 제공한다. 그 공간 생산의 궁극이 전 국민을 '소비하는 인간'으로 재조직하는 데 있다"고 한 요절 문화비평가 이승욱의 진단을 인용한다.테마파크는 "인위로서 무위를 구현하려는 욕망의 공간"이다. "달이 비추던 세계, 달빛 때문에 제 그림자 길게 논두렁 위로 일렁거리던 세계, 어머니 손잡고 외갓집 가던 고갯마루의 세계, 너른 마당에 솥단지 걸쳐놓던 세계, 집 마당이나 뒤란이나 언덕이나 논두렁이나 가는 곳마다 '놀이방'이었던 자연과 육친의 관계를 맺었던 세계"와 단절된 곳에 인공의 테마파크가 있다. 테마파크는 책 제목인 '인공 낙원' 뜻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일부러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현실의 고통이나 대립을 일시적으로나마 잊어버리"려고 자임하는 곳이다. 용인에서 시작한 테마파크는 산하 곳곳으로 퍼져간다. 저자는 어느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만들어진 테마파크의 과장된 장시과 조형을 두고 "거꾸로 세워진 현대의 지옥문"으로 비유한다.저자가 그나마 위안을 찾은 인공 공간은 경기장이다. 축구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이력과 무관치 않을 터다. 그는 6만명이 꽉 들어찬 상암동 서울월드컵 경기장을 두고 "현대 사회의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에 이 아름다운 열정의 용광로가 없다고 상상해보자. 그 얼마나 삭막한 콘크리트 더미이겠는가. 경기장은 세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회복하려는 현대인의 합창 무대"라고 말한다.책은 '도시 인문학'에 가까운 인문 에세이다. 저자는 국내외 문학과 비평 문헌을 넘나들며 인문학적 성찰을 담아냈다. 공간을 두고 벌어진 사건을 추적하며 사회학적 비판을 녹여냈다. 저자가 인공 낙원을 탐사하며 얻은 결론은 또 다른 물음이다. "과연 삶이란 가능한가."<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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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할 때부터 눈여겨 보던 하루키의 신작. '잡문집'이라는 특성 때문에 행여 정식으로 출간하기 애매한 이런 저런 (다소 질이 떨어지는) 남은 글들을 대충 모아서 내는 기획물이진 않을까 걱정을 했다. 서점에서 들춰보아도 아직은 판단이 정확히 서진 않지만 일단은 '하루키'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큰 관심이 가는 책. 마침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간단한 리뷰가 실렸길래 옮겨 놓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1979-2010>은 그야말로 ‘잡문’의 모음이다. 에세이와 책의 서문 및 해설, 이메일 질문에 대한 답변, 문학상 수상 소감과 연설문,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을 비롯한 미발표 짧은 픽션 등…. 작가 생활 30여 년 동안 이런저런 계기로 쓰긴 했지만 책으로 묶이지는 않았던 글들이다. 다양한 성격과 형태의 글이 섞여 있기 때문에 얼핏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작가 하루키 및 인간 하루키의 솔직한 내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그의 출세작 <노르웨이의 숲>의 제목은 비틀스의 노래 에서 따왔는데, 비틀스의 노래 제목은 사실 ‘노르웨이산 가구’를 가리킨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하루키는 “노래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르웨이산 가구’도 아니”라며 “가사의 맥락을 살펴보면 Norwegian Wood라는 말의 애매모호한 울림이 이 곡과 가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전집(전 8권)을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한 하루키는 “카버의 작품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점은 소설의 시점이 절대 ‘땅바닥’ 높이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나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모국어 일본어를 머릿속에서 일단 외국어처럼 만들어-즉, 의식적으로 언어의 생래적 일상성을 탈피하여-문장을 구축하고, 그것을 이용해 소설을 쓰고자 노력했다”며 “나의 창작 작업은 번역 작업과 밀접하게 호응한다”고 소개했다. 이영미 옮김/김영사·1만4800원.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9세 때였다. 그 전에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솔직히 글을 써본 경험도 변변히 없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소설가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나 스스로도 매우 놀랍습니다. 거의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30년을 묵묵히 한결같이 달려온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2)가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로 등단한 1979년부터 2010년까지의 흔적을 톺은 책이다. 미발표 에세이와 엽편(葉片)소설, 각종 수상 소감 등 실로 '잡다'한 69편의 글을 손수 엮었다. 10개의 범주로 나눠 문학론, 번역론, 재즈론을 펼치고 대담 형식의 해설도 더했다. 
 
무라카미는 책 구성을 두고 "완벽하게 학술적으로 분류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냥 왠지'라는 느낌상의 구분"이라고 말한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읽어주셨으면"하는 바람도 덧붙인다."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벽과 알: 예루살렘상 수상 인사말' 중)" < 위대한 개츠비 > 는 말하자면 일필휘지로, 흘러넘치는 젊은 재능의 정점에서 완성해낸 '주피터'적인 작품이다. 그에 비해 < 밤은 부드러워 > 는 고달픈 상황에서 시들어가는 활력을 총동원해 꾸준한 노력 끝에 완성해낸 작품이다."('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 중)"LP는 CD보다 훨씬 정이 깊다. 수고나 지출을 아끼지 않고 깊이 사랑해주는 만큼 반드시 보답이 돌아온다. CD는 취급이 매우 간편하고, 언제 어디서든 깨끗하고 정확한 소리를 내주지만 LP와 열성적인 청자 사이의 '마음의 교류'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음악에 관하여' 중)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이유를 요약하자면 딱 한 가지라고 한다.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라고. 삶과 죽음,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개개인의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여 멸시당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그는 믿는다.소설보다 잡문이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유효하다고 본 중국 문호 루쉰(魯迅·1881~1936)의 사회비판적 잡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다만 '인간 하루키'가 궁금한 독자들의 오감을 자극하기엔 충분하겠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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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코엑스에 아내와 딸과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관람을 마치고 서점에 잠시 들러 책을 들춰보다 눈에 띤 몇 개 책을 골라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인공 낙원-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
정윤수 글.사진 / 궁리 / 2011년 1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11월 20일에 저장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 미래, 과연 희망 버스는 달릴 수 있을까?
노엄 촘스키 지음, 노승영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11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1년 11월 20일에 저장
품절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
사이먼 스위프트 지음, 이부순 옮김 / 앨피 / 2011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11월 20일에 저장

공화국의 위기- 정치에서의 거짓말.시민불복종.폭력론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1년 10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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