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할 때부터 눈여겨 보던 하루키의 신작. '잡문집'이라는 특성 때문에 행여 정식으로 출간하기 애매한 이런 저런 (다소 질이 떨어지는) 남은 글들을 대충 모아서 내는 기획물이진 않을까 걱정을 했다. 서점에서 들춰보아도 아직은 판단이 정확히 서진 않지만 일단은 '하루키'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큰 관심이 가는 책. 마침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간단한 리뷰가 실렸길래 옮겨 놓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1979-2010>은 그야말로 ‘잡문’의 모음이다. 에세이와 책의 서문 및 해설, 이메일 질문에 대한 답변, 문학상 수상 소감과 연설문,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을 비롯한 미발표 짧은 픽션 등…. 작가 생활 30여 년 동안 이런저런 계기로 쓰긴 했지만 책으로 묶이지는 않았던 글들이다. 다양한 성격과 형태의 글이 섞여 있기 때문에 얼핏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작가 하루키 및 인간 하루키의 솔직한 내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그의 출세작 <노르웨이의 숲>의 제목은 비틀스의 노래 에서 따왔는데, 비틀스의 노래 제목은 사실 ‘노르웨이산 가구’를 가리킨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하루키는 “노래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르웨이산 가구’도 아니”라며 “가사의 맥락을 살펴보면 Norwegian Wood라는 말의 애매모호한 울림이 이 곡과 가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전집(전 8권)을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한 하루키는 “카버의 작품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점은 소설의 시점이 절대 ‘땅바닥’ 높이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나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모국어 일본어를 머릿속에서 일단 외국어처럼 만들어-즉, 의식적으로 언어의 생래적 일상성을 탈피하여-문장을 구축하고, 그것을 이용해 소설을 쓰고자 노력했다”며 “나의 창작 작업은 번역 작업과 밀접하게 호응한다”고 소개했다. 이영미 옮김/김영사·1만4800원.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9세 때였다. 그 전에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솔직히 글을 써본 경험도 변변히 없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소설가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나 스스로도 매우 놀랍습니다. 거의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30년을 묵묵히 한결같이 달려온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2)가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로 등단한 1979년부터 2010년까지의 흔적을 톺은 책이다. 미발표 에세이와 엽편(葉片)소설, 각종 수상 소감 등 실로 '잡다'한 69편의 글을 손수 엮었다. 10개의 범주로 나눠 문학론, 번역론, 재즈론을 펼치고 대담 형식의 해설도 더했다.
무라카미는 책 구성을 두고 "완벽하게 학술적으로 분류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냥 왠지'라는 느낌상의 구분"이라고 말한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읽어주셨으면"하는 바람도 덧붙인다."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벽과 알: 예루살렘상 수상 인사말' 중)" < 위대한 개츠비 > 는 말하자면 일필휘지로, 흘러넘치는 젊은 재능의 정점에서 완성해낸 '주피터'적인 작품이다. 그에 비해 < 밤은 부드러워 > 는 고달픈 상황에서 시들어가는 활력을 총동원해 꾸준한 노력 끝에 완성해낸 작품이다."('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 중)"LP는 CD보다 훨씬 정이 깊다. 수고나 지출을 아끼지 않고 깊이 사랑해주는 만큼 반드시 보답이 돌아온다. CD는 취급이 매우 간편하고, 언제 어디서든 깨끗하고 정확한 소리를 내주지만 LP와 열성적인 청자 사이의 '마음의 교류'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음악에 관하여' 중)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이유를 요약하자면 딱 한 가지라고 한다.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라고. 삶과 죽음,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개개인의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여 멸시당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그는 믿는다.소설보다 잡문이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유효하다고 본 중국 문호 루쉰(魯迅·1881~1936)의 사회비판적 잡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다만 '인간 하루키'가 궁금한 독자들의 오감을 자극하기엔 충분하겠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