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기 5분 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친구가 되기 5분 전 마음이 자라는 나무 20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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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별 기대없이 서평책이라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했던 책이였다.

그런데 이 책은 나를 감동시키고 더없이 좋은책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쩔수 없는 의무감으로 이 책을 읽었다면 감히 다른 이들에게는

꼭 의무적으로 읽어보라고 살며시 권해보고 싶다.

이 책속에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가 있고, 중학교를 다니는 내가 있고,

고등학교를 다니는 나 그리고 성인이 된 내가 있다.

나는 학창시절 어떤 친구였을까? 그리고 어떤 친구가 있었을까?

그시절 죽고 못 살것 같은 우리들은 어느새 '너와나'에서 '모두'에

속해 있는 사람이 돼어 있다. 눈빛만 봐도 통하던 친구사이가

그 시절 그대로 멈춰 있을것 같던 그 순간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그 때는 조금씩 천천히 갈수도 있는 거란걸 몰랐다.

그 때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까? 잘 모르겠다.

여전히 조금 느린 나는 앞서 가는 이들을 보며 조바심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아무도 천천히 가는것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는 세상 그저 앞서 걷는데 익숙한 사람들..그래서 여전히 나는 쫓는데

정신 없다. 마음이 맞고 안 맞고가 아닌 걷는 속도가 같은 사람 단지

그것뿐이지만, '친구'가 되는 사이. 지금 나와 같은 속도로 걸어주는 이가

누가 있을까? 친구들의 얼굴을 쭈욱 떠올려 본다.

친구를 많이 갖는것과 내 곁을 떠나도 평생 기억되는 친구 한 명..

난 한 명으로 충분하지 않았나보다.."난 '모두'를 싫어해. '모두'가 '모두'로

있는 동안은 친구가 아니야, 절대"라고 말하는 에미의 말에 뜨끔하는

날 느끼며 나는 '모두'에 속해 있다는걸 알았다. 죽을 때까지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을 만들고, 그래서...'모두'랑 어울릴 시간 따윈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친구'인 나는 없다. 한 때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모두'에 속해있는 우리들은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리고 나는 그 멀어져 가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고, 너랑만 나랑만이

아니고 우리모두랑으로 변해가는데 익숙해지지 않았고 그리고 나는

친구가 되기 5분전으로 돌아갔다. 다행이다. 5분후가 아닌 5분전이라

다시금 모두에서 친구가 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친구사이..

완벽한 듯하면서도 한없이 위태로운 관계.

정말이지 공감가는 정의다.

때론 위태롭더라도 때론 걸음이 맞지 않더라도 같이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사이 친구가 그리운 날이다.

조금씩 절뚝이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 책에 있다. 

옳고 그름이 아닌 그냥 누구나 겪었음직한 학창시절 그 때 우리들의 

모습이 이 책에 있다.

그리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도 있다.

고개를 숙였다가 무심코 얼굴을 들었을 때 진짜 미소가 떠오른다고

그러니까 웃고 싶을 땐 고개를 숙이면 된다고 가르쳐 준 에미

그렇게 고개를 숙였다 들었을때 내 미소를 제일 먼저 보여줄 그런 친구

그리고 친구가 되고 나서 하늘을 함께 바라보게 될 친구

소중한 이에게 그렇게 다가가는 내가 되고 싶게 만드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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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 오정희 우화소설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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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송이 꽃이길 바랐으나 속절없이 드세져버린 우리 시대 여성들에게

바치는 인생우화라는 띠지에 글이 두고두고 눈여겨 봐진다.

삶이 뭐 그리 남다를까 나 자랄때 지켜보던 엄마의 모습이 한 송이

꽃 같지 않아 나는 이 다음에 한 송이 꽃 같아야지 다짐했다고

내 지금이 한 송이 꽃이 되지 못하고 속절없이 낡아가는 삶인것처럼

다 그렇고 그런가보다. 그래도 어루만져지는 작은 위안 같은 것들이

있어 비록 꽃은 아닐지라도 녹록치 않은 내 삶이, 이 책에 나오는 삶들이

낯설지 않고 그저 반갑고 고맙다.

 

누구는 별다르게 살까 싶어 나를 못살게 굴기도 하고, 지레 주눅들고

때론 나는 별다르게 사는것 같아 우쭐대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하고

그런 일상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을 읽으면서 드세진게 억울하고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내 일상도 이렇게 글로 담아내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사는것이 이런거지 잘 하고 있다고 내게 위안을 준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 다른 이가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전하는데

재밌지만, 약간 심심하단다. 너무 짧게 끝나버리는 이야기라

아쉬움도 있다고 했다.

짧은 글들은 나에게도 많은 아쉬움을 줬지만, 심심하다는 말에는

책을 다 읽고 난 자의 두둔이랄까? 원래 사는게 심심한거라고

그 심심함 속에 기쁨,슬픔,행복,불행 그런것들이 침투해 때때로 심심하지

않게 만드는 거라고 심심하지 않음의 연속만 있다면

정말 그 때는 사는게 전투적으로 드세지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작은 위안이

되고자 했던 작가의 마음이니 심심해서 나는 더 위안이 되었고

좋았다고 자격은 없지만, 대신 변명을 해본다.

 

'떠 있는 방' 편에 보면 어린아이와 아빠가 불 밝힌 아파트를 보며

나누는 대화가 있는데, 아빠 꼭 별빛 같다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아빠는

아냐, 떠 있는 방들이야 공중에 둥둥 떠 있는....무서울거야라고 말한다.

결코 심심하지만은 않을 내 앞으로의 삶들도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무섭다. 그렇지만, 별빛 같다고 바라보던 시선이 내게도 있었음을

그리고 무서울거라고 염려하는 아빠의 모습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이 책을 빌어 알아간다. 돼지꿈도 꿨으니 가끔은 꽃도 돼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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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 까마득한 이야기 1
편해문 글, 노은정 그림 / 소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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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랄때만 해도 익숙한 삼신할머니. 지금 아이들에게 아기를

어떻게 낳는지 물어보면 어떤 아이들은 나보다 더 해박한 지식으로

아는 양을 쭈욱 늘어놓는다. 제대로 그 용어를 알고나 쓰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들의 입속에서 정자니 난자니 자궁이니 이런 소리를 듣노라면

차라리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신다는 입으로 전해져 오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구전신화가 더 신비롭고 귀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나역시 성교육은 일찍 정확하게 알려주는게 좋다는 말에

아이들이 아기는 어떻게 낳아요 하는 질문에 되도록 정확한 표현을

쓰고자 했고, 지금 우리 아이들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착상을 하고

이런식으로 지극히 과학적 측면에서 알고 있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아 그래 이렇게 오래전 얘기를 들려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누군가가 들려주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얘기들..때론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는 이가

있어야 할텐데, 가뜩이나 너무 근거에만 입각한 얘기들로 판치는 세상

할아버지 할머니 입을 타고 내려온 이야기를 접하게 돼어 반갑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삼신할머니니 마마대별상이니 생소하겠지만,

이 책을 빌어 우리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걸

잊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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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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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2008년을 고작 며칠 남겨둔 시점에서 읽기에 참

좋았던 책읽기였다. 전체적인 삶의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말씀하셨지만, 어떤 한해를 보내는 그 마지막 달에 이 책을 읽게 돼어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 나와 다른 세월을 보내신 분의 얘기들을 다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맑은 정신이 되던 순간 순간이

내게는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참 다양한 책들을 만나게 되는데, 책을 읽으면서 차와

닮았다고 여기며 읽은 책은 처음이다. 읽는 동안 차를 마시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고 보니 어떤 책들은 목마름에 벌컥이는 냉수 같았고,

어떤 책은 있어 보이고자 커피와 같았고, 어떤 책은 정신을 흐려놓는

술과도 같았다. 한번도 이리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글을 눈으로

쫓으면서 나는 지금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라고 여겼을까? 천천히 조금씩

향을 느끼고 맛을 느끼고 시간을 느끼게 해주던 책 <아름다운 마무리>

그분의 말씀을 다 알아 먹진 못했어도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참

아름다웠다.

 

앞으로 더 아름다운 내가 되기 위해, 어느 부부에게 내 주셨다는 숙제를

나도 해볼까 싶다. "될 수 있는 한 집 안에서 쓰레기를 덜 만들도록 하라.

분에 넘치는 소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악덕이다.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예 집 안에 들여놓지 말라.

광고에 속지 말고 충동구매를 극복하라. 가진 것이 많을수록 빼앗기는 것 또한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적게 가지고도 멋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나는 그랬다. 내 분수가 뭐 어때서 남들 다

가지는걸 다 갖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한 작은 선물도 필요하다고

나는 충분히 누리고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었다. 그렇게 얻은 선물들은

지금은 사라지고 때론 기억도 희미해진다. 마지막 적게 가지고도 멋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만 아니였다면 나는 여전히 많이 가져서

멋지다고 생각하며 어리석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돌아본다.

내가 가진것들이 참으로 많다. 옷장속에 넘치는 옷들도 오늘따라 보기가

부끄럽고, 필요하지 않은 장식품들도 거슬리고 돈을 들여 모아놓은 것들이

거추장스럽다. 알몸둥이로 나와 지금은 가진것이 너무 많아 이고지고해도

어림도 없을 만큼 커져 있는 덩어리가 오늘따라 숨막히게 다가온다.

이러다 이사할 일이라도 생기면 여러 사람 고생시킬게 뻔하겠다.

이러다 내가 사라지면 없앨 물건이 너무 많아 또 여러 사람 고생시킬게

뻔하겠다. 뻔한건 좀 안하고 살아야지 알면서 모른척 하는거 이제 그만

하고 살아야지..그래야 할텐데..내가 더 갖는거 말고 가진걸 나누는 내가

되었음 하는데, 올해는 딱 한 번에 그치고 말았지만, 내 년엔 정말

봉사활동도 하고 내가 가진걸 나누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매번 연말이면 여기저기서 모금활동이다 봉사활동이다 떠들썩한데,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이젠 정말 나를 달리 살아보게 하고 싶다.

내년 이맘때는 나도 다른 얘기들을 늘어놓을 수 있겠지.?

그럴 수 있도록 올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아름다운 시작을 맑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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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사회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31
노명우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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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지붕위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모습들이 생각이 난다.

안방에서 지붕위에 있는 사람과의 의사 소통을 위해 저절로 커지던

목소리. 그 목소리를 연결하기 위해 중간 어디쯤 내가 서있던 그 시절

처음 집에 텔레비전이 생기고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던 나와 내동생들은

아침마다 그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지각을 면하기 위한 뜀박질을

해야 했고, 조그만 화면속에서 매일 새로운 영상이 나오는걸 신기하게

쳐다 보면서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린시절 나에게

9시란 시각은 너무나 미운 시간이 되었다. 모든 채널의 주도권은

아버지에게 있었고, 채널을 돌리는 아버지의 손길은 내게 너무나

가혹하기 까지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 피식 미소짓게 되었던 책읽기.

 

거실을 서재 분위기로 바꾸기 위해 한 쪽 벽면을 책장으로 가득 채웠다.

쇼파를 치우고 커다란 상을 들여놓고 책장에 책을 채워 나갔고, 우리는

그런 분위기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듯 보였다. 그런데 이 애물단지

텔레비전, 이 녀석을 두고 한참을 고민고민 하다 결국 텔레비전이

없는 거실은 상상할 수가 없었고 다른것이 변해가는 거실 분위기에서

유독 텔레비전만은 그자리 그대로 그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조금씩 변하던 우리의 일상은 새로움에 대한 일시적

변화였을뿐, 텔레비전이 사라지지 않은 거실엔 어느새 온 버튼을 누르고

볼륨이 높아지고 이젠 시간 맞춰 보게 되는 프로그램도 생겨져 버렸다.

우리의 새로운 변화는 그렇게 텔레비전 앞에서 무너지고 만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님을 알아 버렸다고나

할까? 오늘도 나는 책장앞이 아니라 텔레비전 앞에 있다.

언제쯤 off버튼을 찾게 될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기엔 나를 너무 무력하게 만드는걸 알면서도

이 무력함에 길들여진 나를 보자니 불편하다. 오늘부터 또 다시 나를

시험해 보고자 한다. 켜짐이 아닌 꺼짐에 익숙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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