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의 비망록 - 사회주의적 낙관성으로 지켜낸 인간 존엄의 기록 패러독스 9
율리우스 푸치크 지음, 김태경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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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처형장으로 끌려나갈 때 그들의 눈은 당신을 꼼짝 않고 바라본다. 거기서 당신은 가슴을 펴고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왜냐하면 그 눈들의 주인들과는 형제이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텐데 그럴 권리가 당신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를 흘리는 가운데에서도 유지되는 불굴의 연대이다. 이 연대의 구원이 없다면 당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십자가의 10분의 1도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든 어느 누구이든. (75)

이 시대에 살아남은 당신들에게 나는 한 가지 부탁하려 한다. 좋은 사람들은 물론, 나쁜 사람들까지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자신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당신들을 위해서 싸우다 쓰러져간 사람들에 관한 증언을 모두 모아두기 바란다. 언젠가 오늘은 과거가 되며 위대한 시대와 역사를 창조했던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일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름 없는 영웅들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두기 바란다. 그들 역시 제각기 이름이나 얼굴·바람·희망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사실, 따라서 그들 가운데 최후의 사람이 가졌던 고통 역시 이름을 남긴 최초의 사람이 맛보았던 고통보다 작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그들 모두가 언제나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 피를 나눈 사람, 당신 자신들처럼 가까운 사람이었기를 갈망했다고 생각한다. (82-83)

전쟁의 마지막 순간 1초 사이에, 마지막 한 발에 심장을 꿰뚫리는 마지막 병사는 얼마나 비극적인가 자주 생각해왔다. 그러나 누군가 그 마지막 병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나 자신이라고 판명된다면 지금이라도 응할 것이다. (93)

낙관주의는 허위를 양분으로 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진실이나 틀림없는 승리의 비전을 양분으로 해야 한다. 진실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은 당신 자신에게 있다. 결정적인 그날에 대한 믿음과 당신이 앞당길 그날에 대한 믿음이 끝까지 단념하지 않은 삶과 당신을 위협하는 죽음의 경계 저쪽으로 당신을 건네줄지도 모른다.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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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불확실성 -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을 찾아서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유희석 옮김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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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개의 장.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뉴턴적 과학관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인문학과 자연과학(두 문화)의 분리가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의문에 부쳐지고 있다. 1970년대에 등장한 복잡성 연구와 문화연구가 대표적인 증거이다. 이들은 더이상 선형성과 평형, 가역성, 결정주의 등을 신봉하지 않는다. 그간 사회과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서 개별기술과 법칙정립이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20세기 이후 두 문화의 분열이 약화되고 분과학문 체제의 정당성이 취약해지면서 모종의 중심적이고 통합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과학의 새로운 형태를 '역사적 사회과학'으로 제시한다. 


월러스틴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는 되지만 약 10년 전에 나온 이 책의 내용이 아직도 피부로 와닿지는 않는다. 과학기술학, 의사학, 인지과학 등의 새로운 분야가 생기긴 했지만 두 문화의 구분은 아직도 강력하다. 여전히 사회과학에서는 근대 뉴튼적 자연과학의 세계관에 입각한 방법론이 주류이며 이것이 약화되었는지도 실감하지 못하겠다. 현실에 대한 진단이라기보다는 희망섞인 전망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전체의 내용과 별도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대학의 고등학교화에 대한 서술이었다. 

"교수들로 하여금 더 많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도록 하는 것"(219)

복수전공을 의무화하거나 졸업요건을 강화하는 것, 로스쿨 등 전문대학원을 육성하여 교육기간을 연장시키고 이를 통해 취업시장의 밀도를 조절하는 것. (교육기간의 장기화는 부르디외도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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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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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하지만 읽고 나서 남는 알맹이가 별로 없다.

그래서 지금의 서울이 어떻게 탄생했다는 것인가? 어떤 힘이 작용했다는 것인가?


팟캐스트 방송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기 때문에 정치한 분석이나 학술적 형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나 저자의 이론적 관점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제기되는 질문에 대하여 방대한 양의 자료, 관계자들의 전언, 답사 경험, 사례 등을 선별하여 선심쓰듯 제시해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서동진의 경우도 그런데 푸코를 좀 봤다 하는 명민한 저자들의 작업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본인들의 의도는 그렇지 않으리라 믿지만, 사람들에게 푸코의 방법론이 방대한 자료 검토와 이론적 섭렵을 과시하는 것으로 오해되지는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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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이 된 푸코? - 위기의 미국 대학, 프랑스 이론을 발명하다
프랑수아 퀴세 지음, 문강형준.박소영.유충현 옮김 / 난장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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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생각해 볼 지점이 많다. 지성사, 지식사회학이라는 맥락을 넘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신기하고 독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하다. (제목은 왜 이렇게 지었을까? 김성기 선생의 표현을 따라 `불란서제 이론`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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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김종영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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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계에 속한 사람이 이런 문제제기를 공식적으로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정할 만하다. 게다가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학자로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현실에 대한 착실한 보고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한국과 미국 학계의 모습은 (아마도 이 책의 주요 독자들일) 관련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새롭지 않다. 상식을 뒤집는 반전이랄까,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 자체로 훌륭하다. 과거 '토착적 사회학' 등의 문제제기가 담론 수준에서 이루어졌다면 이 책은 실제 행위자들의 전략 수준과 글로벌한 수준에서 대학들이 갖는 지위의 차원을 다룬다. 보다 현실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관련된 후속 논의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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