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윤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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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게 살지 않겠습니다'란 확신에 찬 제목을 보고 도대체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 궁금하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시시하게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없다. 태어난 환경과 양육자의 양육방식부터 평범하지 않았고(시시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인생은 시시하게 살겠다 살지 않겠다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스펙터클하게 흘러간다. 14살에 혼자서 유럽을 가고 17에 이탈리아 미술유학을 시작하고 스물일곱엔 임신 사실을 확인한 다음 무능력한 남편과 헤어지고 싱글맘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만화 공모전에 입상하여 받은 상금으로 비행기 표를 사서 겨우겨우 빈손으로 일본에 돌아가는데...(이것은 그녀 인생의 서막일뿐!)


"피렌체에 머무는 10년 동안 나는 두 분의 은인을 먼저 떠나 보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봤다. 이 경험이 훗날 내가 세상에 나갔을 때 인생에 소중한 거름이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글은 평범하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보통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툭 던져서 독자들을 놀래키고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시시하게 살지 않은 사람의 인생력.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녀의 에세이는 삶의 굴곡에 비해  내용적인 측면에서 플랫하다는 느낌이다. 결혼 이혼 출산 커리어성공 등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순간들을 그녀는 한두문장으로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휙휙 지나가 버린다. 작가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노출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의도적 연출인가 싶기도 한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쉽다. 그녀의 삶이 무겁다는 건 분명한데 그녀의 문장으로 느낄 수 있는 건 가벼운 것들 뿐. 


최소한 그녀가 대단한 삶을 살아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별 다를 것 없는 보통의 인생을 짜내어 써낸 감성에세이들 보다야 훨씬 낫다만, 완성도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소재에 이 정도 문장력에! 조금 더 속을 터놓고 썼더라면 조금 더 생명력이 긴 책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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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윤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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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 흐르는 대로 휩쓸려가지 않고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멈춰 서서 고민하고 사색하는 것. 즉, 의구심은 인간이 진지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 사람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에너지가 된다.

이제 정말 틀린 걸까, 이대로 객지에서 죽는 건 아닐까, 극단적인 생각까지 드는 그 순간 문득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지금 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내 옆을 스쳐가는 사람도 일본에 있는 엄마도 아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 나는 나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믿는다, 나를‘
‘믿을게, 이제 너밖에 없어‘
스스로에거 속삭이던 그 순간, 나에게 ‘자신을 지탱해줄 또 하나의 나‘라는 운명공동체가 나타났다. 잔혹한 상황에 휘말린다 해도 ‘또 하나의 나 자신‘이 있으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 존재가 그 후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

피렌체에 머무는 10년 동안 나는 두 분의 은인을 먼저 떠나 보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봤다. 이 경험이 훗날 내가 세상에 나갔을 때 인생에 소중한 거름이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실패란 아픔이 아니다. 실패를 하면 할수록 다만 내 사전의 어휘가 늘어날 뿐이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융통성이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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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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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특정한 상태를 폄하할 때 흔히 질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똑같은 상태지만 인정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교수들은 어떤 질환의 신체적 귀결을 의미하는 ‘기능장애‘와 사회적 맥락의 어떤 결과를 의미하는 ‘능력장애‘의 차이를 강조한다.

... 능력이란 다수의 횡포에 불과하다. 만약 대다수 사람들이 팔을 퍼덕거려서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될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상태에는 명시적으로 존재하는 진실이 없다. 이는 단순히 관습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신경 촬영법을 통해 확인해 보면 어릴 때 수화를 배운 사람은 수화 능력이 거의 대부분 언어 영역에 보관되지만, 어른이 되어 수화를 배운 사람은 시각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뇌 영역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는 그 언어에 노출되어 있을 때만 배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뇌의 언어 중추가 효율성 차원에서 위축된다.

"때때로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 보다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해요. 소인증일까요? 아니면 나 자신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우울증일까요? 슬픔에 비하면 차라리 소인증은 극복하기 쉬웠어요."

베티는 브루클린에 있는 그들 동네를 남편 솔과 함께 산챍하면서 장애인을 만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전쟁을 치르지만 그런 전쟁은 당신이 문을 닫기만 하면 그만이에요. 곧바로 편안해지죠. 하지만 이 전쟁은 닫을 문이 없어요"

"사람들은 내 입장에 되어 사는 게 어떤지 전혀 몰라요. 하지만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떤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죠."

"사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성찰적인 최초의 다운증후군 아이예요. 다운증후군이고 자기 성찰적이라는 사실은 축복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볼 때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봐요. 그런 맥락에서 제이슨은 자신의 부족한 점들이 얼마나 두드러져 보이겠어요?"

정신분열증에 대한 유전적 취약성은 태아기 환경의 차이를 비록해서 촉발성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는다. 산과적 합병증이나 진통 또는 분만 과정의 합병증은 태아의 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정신분열증 환자들일수록 과거에 그러한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 인신 기간 중에 임부가 풍진이나 인플루엔자 같은 병에 걸리는 경우에도 위험이 증가한다.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사람들 중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도 어쩌면 임신 중기의 임부가 겨울에 바이러스에 감열될 확률이 높은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임신 기간 중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정신분열증과 상관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임신 중에 전쟁을 겪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여성이 낳은 자녀가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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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사들의 성폭행 성추행이 연이어 폭로되는 가운데 내가 아는 분도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연락하라고 준 그 번호로 멋모르고 안부인사라도 건네다 엮였더라면 내 인생도 지금쯤 끝없는 바닥과 고통을 전전하고 있을지 모를일이다.

예전에 남자 지인이 ‘왜 성폭행 당하면 바로 신고안하냐 그러니 꽃뱀이란 오해를 받는거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성범죄는 권력형 범죄이다. 여자가 술 취해서 강간하는 것도 아니고 옷을 야하게 입어서 강간하는 것도 아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쟤는 내가 건드려도 별 일 없을거’란 확신이 있으면 강간 하는거다. 성범죄는 범죄를 증명하기 어렵고 설사 범행사실을 입증해도 처벌이 가볍다. 반면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밝히면 높은확률로 ‘꽃뱀’ 소리 들어야 하고 권력형 범죄의 특성상 가해자의 보복으로 삶 상당부분이 파괴된다. 보통의 경우 커리어가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된다. 이런 상황, 즉 자신의 남은 수십년 인생이 한꺼번에 좌지우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쉽게 가해사실을 신고할 수 있을까?

피해사실을 밝히기보다는 살아있는 송장이 되길 택했던 많은 피해자들이 하나의 물결을 타고 자신의 썪은 속을 보여주는 요즘의 나날들은 사실 여자들에겐 놀랍지도 않다. 여자들에겐 이미 일상적인 일이니까. 나는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보수진보공작 거리는 싸이코패스 같은 놈에게는 분노한다. 그자가 그리 좋아하는 공작설 프레임으로 그 자의 발언을 보자면 진보인사들 성폭행 폭로가 언제 터질까 두려워 미리 펜스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번호 준 그 사람은 작년 문재인 선거 유세장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다. 물론 나는 일개 지지자이고 그는 단상에 있었다. 내가 그와 연락하고 피해자가 되고 내 피해를 고백했다면 나는 진보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된 꽃뱀이란 소리를 들었을거다. 사회에 해악은 꼭 정형화된 형태로만 끼치는 것이 아니다. 강간을 하는 개새끼가 있는가 하면, 강간 피해자를 잠재적 꽃뱀으로 프레이밍 하며 혀로 죄를 짓는 개새끼도 있는 법. 당신은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꽃뱀 감별사는 더더욱 아니랍니다. 거울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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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려고 하지 마라 -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유혹적인 글쓰기
메러디스 매런 엮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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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저자가 아니라 '엮은이'로 표시되어 있다. 말 그대로 매러디스 매런이란 사람은 스무명의 미국 유명 작가들을 간략히 인터뷰해서 이 책을 엮어내었다. 한 책에 스무명이나 되는 작가의 인터뷰를 담으려니 인터뷰 내용이 짧을 수 밖에 없고 그 짧은 인터뷰에 딱히 인터뷰어의 통찰이나 직관이 담긴것도 아니라서 정말 그녀는 엮은이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라이트하게 미국의 유명작가들이란 이런 경로로 글을 쓰고 이렇게 벌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바자나 보그에 실린 유명인사들 인터뷰 보는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그 이상의 의미있는 무엇 - 잘 쓰려고 하지 마라는 식의 명료한 메시지-을 얻을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작법서는 더더욱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미국의 출판업계에서는 나름 잘 나간다, 자리를 잡았다 하는 전업 작가들이지만 한국 독자들이 한 번에 알만한 작가들은 별로 없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부를 팔았다, 수천만부를 팔았다 하는데 그들의 필모를 잘 보면 일단 양으로 많이 써낸 분들. 딱히 월드클래스 수준이 아니라도 저렇게 팔아치우는 걸 보면 영어로 쓰는게 깡패라는 깨달음이 온다. 


책의 내용은 주로 그들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와 작가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픈 말 등등인데 앞서 말했듯이 분량 자체가 적다보니 그렇게 깊이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작가들의 커리어 패스가 너무도 제각각이다 보니 그들이 하는 조언이 상충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일년에 수억을 받는 직장을 때려치고 쓴 첫 책이 대박이 나서 고생따위 없이 커리어 전환을 한 작가는 '저질러라!' 식의 조언을 한다. 지금 다니는 그 직장 다니면서 써봐야 별 소득 없을거라는 이야기. 반면 육아를 하고 아이들 교육비를 벌기 위해 기술문서 작성등 글과 관련된 사이드잡을 여러개 하며 어렵게 어렵게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이어온 사람들은 반대의 조언을 한다. 밥벌이는 중요한 것이니 일단 먹고 살 방편을 생각하고 글을 쓰라고.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느낌은 명료한 제목과는 달리 그냥 아 이렇구나 저렇구나 남들의 생각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제목을 보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마시길.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첫째, 미국식 작가 양성 과정.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학에서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든 다양한 작가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수련하고 데뷔를 한다.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한국식 데뷔의례와는 다르다. 신인작가들이 유능한 에이전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둘째, 미국에서도 여성작가들의 커리어 잇기는 정말 힘들구나 하는 깨달음. 주로 자리를 잡은 나이가 있는 5670년생 작가들 이야기라 그런지 이 책에 나오는 여성작가들 대부분이 기혼인데 그들이 들려주는 애를 키우며 글을 쓰는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책상 옆에 가두리를 치기도 하고 옷장 안에 책상을 넣은 다음 옷장 안에서 글을 쓰기도 한다. 남성 작가들의 인터뷰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 요즘 세대는 다를거 같지만 바로 직전 세대까지만 해도, 그 잘난 미국에서도 여자들은 이렇게 글을 써왔구나 하는 애틋함. 셋째, 미국에서 전업작가들은 대충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흥미로운 구경. 정말 대박작가들이 편하게 하는 소리와 이름은 좀 유명하지만 아직도 겨우 밥먹고 사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그 결이 달라서 그런지 굳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인터뷰에서 느껴진다.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기에 미국에서 작가로 사는 삶이 어떤것인지 대충이나마 그 다른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다소 어색한 번역, 그리고 각 작가의 인터뷰마다 그 작가의 책에서 한 문단 정도를 따와서 밑줄긋기 하듯 써놓았는데...그게 원문으로 보면 의미가 있겠지만 그저그런 번역으로 실려있다보니 읽어봐야 별 감흥 없는 쓸데없는 부분이 되고 말았다. 원문도 같이 병기를 해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고, 내용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원서로 읽어도 괜찮을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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