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와 시대착오
전하영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관장이 물었다.
"요새는 작가들도 다 박사더라. 심사 가면 다 박사야."
관장은 힘 빠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작가들이 범생이라서 그런가. 스테이트먼트는 그럴듯한데 정작 작업은 재미가 없네."
네네. 정말 그래요. 미루는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으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무도 그 폐해를 모르지 않지만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작가들의 학력 인플레 혀상에 대해 미루도 할말이 없진 않았다. 범생이라서 박사를 따는 게 아니구요, 고령화사회라서요. 작가들이 너무 오래 사는 것 같아요. 20세기에는 마흔 정도만 돼도 죽고 그랬는데 이제는 마흔이 넘고 나서도 먹고 살아야 할 날이 구만리잖아요. - P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참말로, 우리 영감 걷어차서 밖으로 내쫓아버릴까 싶어."

여장부도 중년이었다.

"그래도, 허세쟁이 술고래이긴 하지만 그 사람은 말이지, 인간은 저마다 외로운 존재라는 걸 알아. 그걸 모르는 사람이라면 난 같이 살 수가 없거든." - P25

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고 만다. 고독이 느껴지지 않는 뒷모습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 P26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오면 인스턴트 라면이 잘 팔린대요."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어째서일까요."

"나도 사니까요."

"아, 홀아비세요?"

"여자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아무것도 못 하거든. 내가 집에 갈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기다려요. 뭘 사러 갈 때도 있지만 비가 오면 절대로 안 나가거든요. 인스턴트 라면을 사가는 수밖에."

"사귄지 얼마 안 됐구나."

"벌써 육 년짼데."

"어디가 아파요?"

"아무 데도 안 아파요."

"일해요?"

"안 해요."

"그럼 하루 종일 뭐 해요?"

"아~무것도 안 해요. 결혼하고 싶은데 싫다네.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연상이에요."

"괜찮잖아요."

"그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상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서른이라고 말했으니까. 그 정도로 보였거든."

"육 년 동안 같이 살았댔죠? 그럼 나이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잖아요."

"그개, 요전에 몰래 결혼하려고 알아봤더니 열여덟 살 속였더라고요." - P70

"우와, 열여덟 살이나."

"결혼하기 싫다는 건 나이를 들키기 때문이 아닐까요.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 P70

지난번에 친구의 아들이 그 친구를 데려왔다. 스물한 살 젊은이들이었다. 나도 자식을 곧바로 낳았다면 이만큼 컷을까 하며, 지저분한 것 같기도 하고 청결한 것 같기도 한 젊음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들에게 밥을 먹였고 술을 권했고 그들은 다 큰 남자인 척하며 담배를 물었다. - P102

"돌아가신 지 몇 년 됐어요?"

"사십 년. 사십 년 동안 단 하루도 지로 씨를 잊은 적이 없어. 그렇잖아, 진절머리가 나서 떠올리기도 싫은 남자였다면 어땠을 것 같아? 떠올려도 싫은 일 뿐이잖아. 난 떠올려도 싫은 일은 아무것도 없어. 재혼하자는 말을 다른 남자한테서 몇 번이나 들었지. 하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얼굴을 보면 금방 아아, 싫다, 싫어, 지로 씨가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드는 걸." - P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징의 강간‘은 인류학자 루스 베니딕트가 일본인의 의식을 분석한 명저 ‘국화와 칼‘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베니딕트는 씁니다. "일본 사회의 도덕적 임무란 지역적이고 제한적이어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파괴된다." 당시 강간당한 여성은 최소 8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책은 기록합니다. - P33

그는 인간의 악행에 저항하는 선한 인간의 본성을 함께 발굴합니다. 책에서 언급된 대표적인 인물은 독일인 욘 라베(1882-1950)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난징의 살아 있는 부처‘ ‘중국의 오스카 쉰들러‘로 추앙받습니다.

... 난징에서 30년을 산 욘 라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극을 목격합니다. 그는 자신의 공장 직원을 비롯해 엔지니어 등 중국 시민을 보호할 ‘난징 안전지대‘를 구축합니다. "안전지대로 몰려든 중국인은 25만 명"이라고 아이리스 장은 기록합니다. 욘 라베가 살려낸 중국인은 수십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추종하는 나치 당원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치 당원의 눈으로 봐도, 당시 일본 제국군의 악행은 도를 넘어섰다는 뜻 아닐까요. 욘 라베는 참다못해 히틀러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난징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을 위해 중립 지대를 건설할 수 있도록 총통(히틀러)께서 힘을 써주십시오"라고 읍소했습 - P35

욘 라베는 중국 여성들에게 호루라기를 나눠줍니다. 밤중에 피난촌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그는 즉시 달려가 소녀를 겁탈하려는 일본군을 ‘나치‘라는 특수 지위를 이용해 내쫓습니다. - P35

코로나19는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느 상처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인간은 그 상처를 쉽게 은폐하고 또 망각할지도 모릅니다. - P53

위대한 문학은 아주 작은 개인사가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할 때 완성됩니다. - P1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 - 이것은 외국어 공부로 삶을 바꿀 당신을 위한 이야기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책
김미소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어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좋아(스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신경쓰여(키니나루)‘로 표현하기도 한다. - P106

어느 날은 행정 직원이 회의 중에 자기 자신을 ‘저는‘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타케시타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성을 넣어 이야기했다.웩, 회의 자리에서 3인칭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다니, 이렇게 오글거릴 수가! 뭔가 이상하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이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1인칭으로 자기 자신을 불러도 되지만,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비지니스 회의에서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 확실히 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타케시타가 회의록을 정리합니다."처럼 화자의 성을 넣어 이야기하는 거라고. - P1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친구 레너드는 재치 있고 영리한 게이로, 자기 불행에 대해서라면 조예가 깊다. 그리고 그런 조예가 그의 활력이다. - P5

자기 최선의 자아. 이는 몇백 년간 우저으이 본질을 정의할 때면 반드시 전제되는 핵심 개념이었다. 친구란 자기 내면의 선량함에 말을 건네는 선량한 존재라는 것. ...오늘날 우리는 서로 최선의 자아를 긍정하기는커녕 그것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정이라는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감정적 무능-공포, 분노, 치욕-을 인정하는 솔직함이다. 함께 있을 때 자신의 가장 깊숙한 부끄러움까지 터놓고 직시하는 일만큼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어지는 것도 없다. ...우리가 원하는 건 상대에게 알려졌다는 느낌이다. 결점까지도 전부. 그러니까 결점은 많을수록 좋다. 내가 털어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 그것은 우리 문화의 대단한 착각이다. - P28

레너드와의 우정은 내가 사라의 법칙을 들먹이면서 시작됐다. 사랑의 법칙엔 기대가 수반된다. "우리는 하나야." 나는 레너드를 만나자마자 결론을 내겼다.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서로를 구원하는게 우리 의무고." 이런 감상이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음은 몇 해가 지나서 깨달았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영토를 힘겹게 횡단하다 국경이 맞닿은 곳에서 이따금 만나 서로에게 정찰 기록을 건네는 고독한 두 여행자다. - P59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4-07-07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지내십니까? 잘지내시죠? 무소식이
희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