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사회적‘ 성공을 경험한다. 즉 아이들을 낳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을 획득하며, 어쩌면 명망을 얻기도 하고 각자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그럭저럭 유명세를 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각자가 가진 개성을 억눌러야만 사회생활에서의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간과한다. 이미 경험했어야 할 인생의 수많은 면들이 흐릿한 기억과 함께 뒤섞여 헛간에 방치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희망을 접긴 이르다. 때로는 이러한 기억들이 회색 잿더미 아래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는 석탄조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융은 이러한 타오르는 석탄 조각을 끄집어내서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는 것이 바로 중년 이후의 세월이라고 보았다.
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치유의 과정과 유사하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서두를 수 없다는 말이다.
클레이 셔키의 신간 인지적 잉여를 읽었다. 다소 모호한 듯한 제목은 미국인들이 멍하니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낭비하는 시간을 가리킨다. 셔키는 사람들이 매년 대략 2000억 시간을 텔레비전 시청에 허비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스타인웨이는 그 숲의 가장 중심부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내서 사운드보드감으로 씁니다. 중심부는 햇볕을 받기 위해 나무들이 더 높이 자라거든요. 나무가 키가 크다는 것은 더 곧게 자란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사운드보드의 재질로는 최상품이지요. 다른 피아노 제작사들은 아무래도 품질이 떨어지는 가문비나무로 어떻게든 해보는수밖에 없고 말입니다.
살림이 넉넉한 집이라면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 음악가가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적잖았소. 그게 또 하나의 독특한 점입니다. 아마추어들만의 연주도 아니었고, 가족끼리 모여서 음을 맞춰보는 것만도 아니었단 말이지. 누구라도 첫손에 꼽는 정상급 음악가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음악이 있었소. 그럴 때면 우리도 미친 듯이 연습을 하곤 했지. 그러니까 어떤 면으로는 나도 프로만큼 연주 실력을 키우겠다는 포부를 품고 자랐단 말이오. 물론 그렇게 높은 수준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낄, 전문 연줒는 전문 연주자끼리 따로 논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소. 그러니까 처음부터 높은 기준 같은 게 존재했고, 거기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셈이죠. 아마추어들이 프로들의 덕을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달까요. 최소한 히틀러가 집권할 때까진 말입니다.
완벽한 예술은 노력의 흔적이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발라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도 벌써 석 달이 넘었다. 중간 평가를 한번 해볼까? 아무래도 헤드라인은 코다의 절반가량을 머릿속에 집어 넣었다는 게 될 것 같다. 나로서는 놀랍기 그지 없는 성과다. 무엇보다도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이런 능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는 소심함에 갇혀 지난 40년을 허송했지만, 사실은 내 안에 그런 능력이 계속 존재해왔던 것이다.
16개월간의 여정이 끝난 지금, 두 가지 물음 -시간은 충분한가 와 너무 늦은 건 아닐까-에 대한 답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먼저 첫번째 질문. 그렇다, 시간은 있다. 아무리 정신없이 바쁜 삶이라 할지라도 시간은 있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시간이야 여기서 10분, 저기서 10분, 하는 식으로 야금야금 모으면 그만이다. 물론 내 경우에는 비록 업무량은 급증했을지라도 아이들은 모두 성장한 다음이라 그만큼 여유가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을 냄으로써 삶의 질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업무 압박과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던 바로 그때, 자그마한 이스케이프 밸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엇인가에 100퍼센트 전념함으로써 삶이 균형을 되찾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두번째 물음에 대한 답 역시 마찬가지이다. 2010년 여름만 하더라도 쉰여섯 먹은 두뇌에 새로운 요령을 집어넣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내 두뇌가 평생 보여주지 못한 자질들을 함양토록 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노력했다. ...따라서 중년에 접어든 지도 한참인 두뇌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신경 회로를 전면 가동해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일 유연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기분이 무척 삼삼했다. 그러니까, 아니, 너무 늦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머니께서 옳으셨던 거다. 악기를 배우게 하신 선택이 옳았고, 음악이 삶에 기쁨을 더할 것이라는 혜안이 옳아쓰며, 악기를 다룰 줄 알면 낯선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깊고 오랜 우정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역시 옳게 하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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