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조영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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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을 즐길 만한 장소에 좀처럼 발을 들일 수 없을 만큼 바쁜 그가 친구에게 우타이를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는 완곡히 거절했지만 내심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그런 짬이 있을까 하고 놀랐다. 그는 시간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흡사 수전노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18쪽

누이는 또 수다 떨기를 아주 좋아하는 여자여다. 그 수다에는 조금도 품위가 없었다. 그녀와 마주할 때면 겐조는 언제나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누님이니까 어쩔 수 없지'-23쪽

"실은 요전에 시마다를 만났어요."
"뭐, 어디서?"

누이는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누이는 배우지 못한 도쿄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일부러 과장된 표정을 짓는 데 익숙한 여자였다. -38쪽

외롭기는 할 거야. 그렇긴 해도 사람이 그리워 외로운 게 아니라 욕심 때문에 외로운 거지-191쪽

부부는 겐조를 귀여워했다. 하지만 그 애정 속에는 이상한 보상심리가 있었다. 돈의 힘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첩으로 둔 사람이 그 여자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지 사주는 것처럼 시마다 부부는 애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그저 겐조의 환심을 얻기 위해 친절을 보였다. 그들은 그 불순함 때문에 벌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211쪽

집의 정면에는 새끼줄을 대문에 여러 가닥 드리운 쌀가게인가 된장가게인가가 있었다. 겐조는 이 큰 가게와 삶을 콩을 함께 기억했다. 그는 매일 삶은 콩을 먹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러나 새로 이사한 집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세월'은 그를 위해 쓸쓸한 기억들을 깨끗이 지워주었다. -223쪽

어느날 겐조가 청년 중 한 사람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행복하겠네. 졸업하면 무엇이 될까, 무엇을 할까, 그런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청년이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선생님 시대의 일이겠지요.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될지, 무엇을 할지 생각하지 않는 건 물론 아닙니다만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으니까요."
과연 겐조가 졸업한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은 열 배는 더 살아가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주와 관련된 물질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따라서 청년의 대답에는 겐조의 생각과 다소 엇갈리는 점이 있었다.
"아니, 자네들은 나처럼 과거 때문에 번민하지 않으니까 행복하다는 말이야"
-230쪽

아내의 병에는 숙면이 가장 좋은 약이었다. 긴시간을 아내 곁에 앉아 걱정스럽게 그 얼굴을 바라봐야 하는 겐조는 그녀의 눈꺼풀 위로 조용히 잠이 내려올 때면 하늘에서 내리는 감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261쪽

개인으로서 노기 씨는 의리가 있고 정이 두터운 정말 훌륭한 사람이네. 그러나 총독으로서 과연 적임자였는가 묻는다면 논쟁의 여지가 상당히 있어. 개인의 덕망은 친하게 지내는 주위 사람들까지는 힘을 미칠지 모르지만, 멀리 떨어진 국민에게 이익을 주기에는 불충분하다네. 그 문제로 따지자면 역시 능력이야. 능력이 없어서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냥 자리만 지키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어. -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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