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위로
앤터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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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형상을 찾던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다. 그 시기에 중요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융은 자기 분석 과정을 통해 청년의 임무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세상에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인 반면, 중년의 임무는 한 개인으로서 자신만의 특성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임을 확신했다. -32쪽

분석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태도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어긋나게 마련이며,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새롭게 적응을 해야 하기 대문이다. 한번 적응을 하면 끝까지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일은 결코 없다. ... 한 번의 심리 치료로 모든 어려움을 완전하게 없앤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필요하다.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다. 다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과도한 어려움이다. -41쪽

창조의 열정을 지닌 창의적인 사람은 영감을 얻는 단계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잊고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온전히 그곳에 있으며, 현재의 당면 문제, 지금의 상황, 지금 여기에 완전히 열중하고 매혹되고 몰두한다.
... 현재에 몰두하는 능력은 모든 종류의 창조활동의 필수요소다. -47쪽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좋은 본성과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시들어가고,
일에 지치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 때,
고독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49쪽

상상력은 인간의 그 어떤 능력보다 고유한 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도 꿈을 꾸고 유인원도 뭔가를 만들지만 아무리 영리한 원숭이라 해도 그 상상력이 인간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인간이 상상력을 발달시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능력 때문에 우리 인간이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상상력 덕에 인간은 어떤 환경에든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만족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95쪽

혼자 있는 능력이 내향성의 표현이라기보다 안정감의 표시이듯, 과도기적 대상(담요.인형.곰)에 애착을 표현하는 능력은 박탈감이 아니라 건강함의 신호다. 사람에 대한 애착을 형성하는 능력이 훼손되었을 수도 있는 보호시설 아이들이 귀여운 장난감에 대해서도 좀처럼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는 관찰 결과가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107쪽

창의적인 사람들은 마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그들에게서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절망의 시간을 종종 경험한다. 어떤 대상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것과 노는 일이 이제는 불가능해질 때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기번의 표현대로 "작가의 허영심"이라는 것 때문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지나치리만큼 진지하게 대한 나머지, 그것을 가지고 '노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때가 있다.

자신의 내면 세계만을 강조하며 외부의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미쳤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위니콧이 지적하듯, 외부의 현실에 지나치게 순종하면서 자신의 내면 세계를 억압하는 사람도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외부 세계를 자신이 주체적으로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오직 적응해야 하는 곳으로만 여긴다면, 그의 개인성은 사라지며 삶은 무의미하고 무익해진다. -110쪽

화가든 조각가든 음악가든 소설가든, 예술가의 역할이 통념을 표현함으로써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었던 사회에서 예술가의 재주는 평가를 받았지만 개성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예술가에게 독창성을 보여주기를, 그리고 예술가가 창조하는 작품에 그만의 확실한 자취가 있기를 바란다. 진짜 티치아노의 작품을 보면서 감탄하다가도, 어떤 미술사학자가 그것은 복제품에 불과하다고 하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본체만체한다. 예술은 곧 개인의 표현이 되었고, 예술가에게 작품은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었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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