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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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시장이 사회의 일부로서 존재했기에 '산다(buy)'는 것이 특정 영역(시장)에 한정된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현대사회에서는 시장의 영역이 확장되어 시장과 비시장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산다'는 개념이 인간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수감자가 하루에 82달러를 내면 교도소 업그레이드를 받아 다른 수감자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6200달러를 내면 대리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예전에는 돈을 주고 거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합법적인 거래의 대상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시장경제를 가진 시대(having a market economy)에서 시장사회를 이룬 시대(being a market society)로의 변화가 2가지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1. 공정성의 문제 : 시장사회에서는 많은 것이(거의 모든 것이) 상품화 된다. 이전에는 나름의 규칙과 비시장적 윤리를 기준으로 분배되던 재화가 이제는 돈으로 거래된다는 의미이다. 시장사회에서는 돈이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이전보다 더욱 크다. 돈이 있으면 공부를 못해도 대학도 들어갈 수 있고, 죄를 지어도 감방에서도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반면 돈을 없는 사람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내다 파는 등의 극단적 행동을 하도록 내몰리게 된다. 이런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다.


2.부패의 문제 : 도덕.규범에 의해 지배되던 비시장 영역이 시장화 되면, 행위 자체의 의미가 부패할 수 있다. 헌혈의 예를 들자면, 영국은 100% 자발적 기증자를 통해 필요한 혈액을 기증받기 때문에 사람들이 헌혈을 시민의 의무(공동체의식)라고 인지하지만 미국은 혈액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혈액은행 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에 주로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피를 판매하고 부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피를 팔 이유가 없으므로 헌혈을 하지 않는다. 즉 헌혈이란 행위의 의미가 혈액이 돈을 받고 거래 되느냐.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상품화 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변질되는 의미 또한 많아질 것이다.


샌델은 추상적일 수 있는 자신의 주장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한다. 반복하여 일러주기에 정치철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다이제스트 버전이 아닌가? 하는 것. 폴라니보다 훨씬 재미있기는 했다. 20세기 초에 이미 시장이 너무 커졌다고 비판했던 폴라니인데, 거대한 전환 없이 그냥 팽창하기만 한 시장의 21세기 사례들을 보고 있자니 케이블 채널의 막장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샌델이 기록한 21세기 시장의 모습, 그리고 시장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의미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이미 있던 문제의식을 이 시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구체화 시킨 것이기에 학문적 측면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이 책은 샌델의 학문적 성과라기 보기 보다는 지식인으로서 대중을 계몽(?)하기 위한 자원봉사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샌델의 주장 자체에 대한 의문으론 그가 지적한 시장사회의 첫 번째 문제인 공정성이슈가 모든 인간이 평등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는 어떠한 경제체제에서든지.시장화 정도와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샌델이 의미하는 공정함이란 최소한의 공정함이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과연 그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두루뭉실하게 인간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공정함이라 대답 한다면 시장화되는 사회를 되돌리기엔 부족한, 맥 빠지는 무력한 대답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이 책은 한국이 한국전쟁 이후 줄곧 발전의 모델로 삼아온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시장화 사례를 기초로 쓰여졌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국식 자본주의가 계속 발전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지 짐작해볼 수 있는 유용한 소스가 된다. 과연 이 책에서 그려지는 미국사회의 모습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상인지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 점에서, 자신의 정치지향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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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8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12-09-10 01:09   좋아요 0 | URL
나이들수록 더 멋진 사람이 되어요...ㅎㅎㅎ

2012-09-10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1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