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반엔 남성 1인칭 화자 시점의 불륜 단편집인가 싶었다. 남자 주인공은 근육이라곤 한 점 없을듯 한 초식룸펜들인데 여자들이 알아서 달려든다. 한 번 만난 여자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고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남주는 아주 드라이 하게 그 관계를 이어나간다. 아내는 어딘가로 치워버리고 귀찮은듯이 마지못해 어쩌다 한번 내연녀들을 '만나 주러' 가는 식이다. 그들은 문어체로 대화를 나눈다. 불륜의 찌질함을 담아내기에 그들의 언어는 너무나 고상하고 시적이다.


아직 불륜을 경험하기엔 어리고 양다리를 걸치기엔 게으른 나는, 소설 소재로서의 불륜에 대해서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편이다. 불륜이란 중년의 인간이 권태의 골목에서 택하는 가장 쉬운 자기기만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륜으로 주변에 민폐만 끼치고 있는 줄은 모르고서 자기가 마치 큰 거사를 도모하는 듯, 인생이 드라마인 듯, 별다른 노력을 한 것도 없으면서 자신의 대담한 선택으로 인생이 특별해졌다며 자위하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한다. 그 뒤에 찾아올 더 큰 허무를 생각하면 참 멍청하구나 싶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불륜을 자신의 소설을 쿨해보이게 만들 소재로 삼는 작가들은 더 웃기다고 생각한다. 멍청한 인간들의 띨띨함을 적나라하게 파헤치지는 못할 망정 그 장단따라 정말로 그게 쿨한 일인것마냥 따라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 이 전투적 마인드론 이 책의 불륜 이야기와 싸울 수가 없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불륜을 저지르며 그렇게 신나보이지도 않고 시들시들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들 참 웃기다고 나서면 주인공 캐릭터들은 쟤는 뭐니, 곁눈질 한번 하고 계속 소주만 따르다가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요?' 조용히 이야기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날 기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불륜을 쿨함의 상징으로 차용하기 보다는 맥없는 초식동물 인생사의 상징으로 차용했기 때문인듯하다. 불륜 앞에서도 고만고만하고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막지도 않고 붙잡지도 않고 무심하고 의욕없고 냉소적인듯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마음이 약해지는 캐릭터들.


모르겠다. 살다보면 이런 불륜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올 지도. 별로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지만. 다른 건 다 무심하게 살아도 남녀 사이의 일에서 만큼은 바닥까지 가는 뜨거움을 지키고 싶은데 살다보면 이렇게 의욕없이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걸까? 그렇게나 강하게 불륜을 비웃다가 책을 읽고서 이렇게 갸웃하게 되는 건 어느 부분들은 정말로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게 작가의 글빨 때문인지 불륜의 또다른 모습을 가슴으로 이해해서인지 모르겠다. 전자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분간 다시 또 읽고 싶진 않다. 가슴 아프던 그 구절들만 조용히 조용히 되새기고 싶다. 10년쯤 뒤에 무기력하게 불륜의 유혹을 받을때 읽으면 어떨까 싶기는 하다. 그러면 야채박스 속 시든 야채같은 불륜 보다는 이혼을 하겠다는 용기가 솟구칠 지도 모른다. 그래. 그래야 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5-07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7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