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그림자 - 김혜리 그림산문집
김혜리 지음 / 앨리스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네마 키드가 아닌지라 김혜리의 글은 처음 읽어보았다. 섬세한 문장을 만들고자 집어넣은 다소 생경한 단어들이 중간중간 걸리기는 하였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종류의 문장은 아니었다. 글로 따지자면, 김혜리는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단어들을 짝지워 주는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전체로서의 문장이 안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을 붙잡은 건 글 한토막 한토막의 제목들이었다. 감각적인 하이쿠 같은 그 제목을 몇초간 음미하고 본 글을 읽어나갔다.

마음에 들었던 제목들은

 

느리고 고된 섬광
몽상가를 사랑한 현실주의자
아늑한 황량함

 

등등


단순히 그럴듯한 단어만 조합해 놓은게 아니라, 그림에서 자신이 느낀 복잡미묘한 감정을 심플한 단어 몇개에 응축시키는 힘이 좋았다.능력자네. (글을 읽어보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듯)


책에 대해 말하자면 그림을 이야기 하는 책이라기 보다는 김혜리란 사람의 취향력을 보여주는 책이고 그것이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김혜리의 안목이 아니었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작품들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읽어낸다.

 

뭐 어떤 그림책인들 저자의 주관성이 담기지 않았겠냐마는 김혜리의 주관성이 좋은 건 여러가지 의미로 그림 앞에 쫄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의 재능앞에 홀리지 않고, 태산 같은 미술사에 기죽지 않고, 그림을 마음으로 보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태도. 냉소하지 않으면서 그런 적당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아 이 언니는 정말 어른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란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그 무엇들이 이 정도 수준만 지켜준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12-14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케 2011-12-1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혜리기자의 글이 가장 반짝일 때는 인터뷰...
지금 말고 5년 전 무렵의 GQ 편집장 이충걸의 문장을 뛰어 넘고
이동진을 찜쪄먹죠 ㅎㅎ

LAYLA 2011-12-14 22:33   좋아요 0 | URL
아..인터뷰를 봐야겠군요.
이 한권만 봐도 이충걸이랑은 비교가 안된단건 알겠어요. 감수성 넘치는 십대에 이충걸을 보고도 오그리토그리 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