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그림자 - 김혜리 그림산문집
김혜리 지음 / 앨리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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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고된 섬광

불꽃놀이란 대개 군중 속에 섞여 보게 되지만 개인의 내밀한 기억으로 애장된곤 한다. 왜일까? 우선 소중한 사람과 함께 구경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예고된 불꽃놀이를 부러 탐탁지 않은 사람과 보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63쪽

몽상가를 사랑한 현실주의자

돈키호테는 사회가 꿈꾸기를 허용하지 않을 때 그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개인이 오히려 윤리적일 수 있음을 주장하는 문학적 마스코트다.-76쪽

작가 다이앤 애커만은, 우리가 극소수의 사람들만을 머리카락의 길이 안으로, 즉 위험과 낭만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고 쓴 적이 있다. -81쪽

아늑한 황량함

많은 첫 번째 소설이 저녁상을 치우고 난 식탁 위에서 쓰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엌에서 태어난 소설들은 서재에서 집필된 작품과는 다른 향을 품고 있을 것이다. 영국 랭커셔 출신의 화가 로런스 S.라우리는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밤 10시부터 새벽2시 사이에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떠나자 그는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며 밤마다 어머니가 잠든 다음에야 붓을 들었다. 화가는 이렇게 회상했다.

"고독하지 않았다면 한 장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라우리는 1910년 한 부동산회사의 임대료 징수원으로 취직해 42년 동안 장기근속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라우리가 30대에 발견해 말년까지 꾸준히 천착한 화재는 평생 살았던 잉글랜드 북부 공업도시의 풍경이었다. 물론 그는 본인과 이웃의 생활을 통해 노동이 무엇인지 익히 아는 화가였다. -83쪽

우리는 한 인간의 장점이 그를 망치고 결핍이 그를 구원하는 예를 많이 알고 있다. -135쪽

외설적인 고독

잊기 위해 마시고, 기념하기 위해 마신다. 스스로를 치하하려 마시고, 벌하려고 마신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마시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마신다. 우리는 수천의 핑계를 싸들고 술에 투항한다. 술은 행복과 불행, 섹시함과 분노를 모두 부풀리기에, 아주 잠시나마 삶이 꽉 차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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