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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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무소라는 작은 조직인 만큼 젊은이들을 나쁜 의미의 월급쟁이로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대기업의 직원이라도 된듯이, 즉 '누군가 하겠지', '상사가 책임지겠지'하며 남한테 기대거나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는 태도는 허용할 수 없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순서를 정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전진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각오하는, 그런 강력한 개인들의 집단이기를 바란다.
그런 생각으로 1960년대 말부터 오늘까지 40년 남짓 동안 사무소를 꾸려왔다. 타인의 자금으로, 그 사람에게는 평생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건물을 지어 주는 것이므로 그에 걸맞은 각오와 책임이 있어야 한다. -25쪽

유럽의 이른바 역사도시가 근대화의 파도에 쓸려가지 않고 옛 시가지와 건축물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도시화의 배푸에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이념이 있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일본의 도시는 서구 도시를 모델로 삼아 근대화를 거쳤지만, 수입된 것은 어디까지나 도시 계획의 기법뿐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라는 이념은 등한시해왔다. 그런 상태로 전후 고도경제성장 시대를 맞이하자 경제논리만을 잣대로 건설과 파괴가 거듭되었고, 그 결과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혼돈'의 도시가 생겨나고 말았다. -123쪽

도시의 광장
서구 도시에서 광장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도시의 중심이었고 사람들이 모이는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들을 가 보면 어디나 역사가 깃든 아름다운 광장이나 도로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그 서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는 일본의 도시에는 광장이 없다. 만들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도 활용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것은 만드는 쪽보다 오히려 사용하는 쪽의 문제였다.
원래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마을 한복판에 주민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장소를 마련해야 하는 사회구조가 아니었다. 도시 공간이라는 조건에서 보자면 오히려 골목이나 우물가 같은 도시 뒤쪽에 있는 장소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참여 의식이나 공유 의식이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물리적 공간을 확보해 놓는다 해도 참된 의미의 광장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시내 역 앞에 있는 널찍한 터가 이름뿐인 광장으로 쓸쓸하게 남아있는 광경을 지금도 자주 본다.
어떻게 광장을 만들 것인가. 도시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년대 이후 광장이라는 주제는 일본의 도시에서 늘 숙제처럼 다루어졌-130쪽

모더니즘이 싹튼 서구의 1920년대가 획기적이었던 까닭은 그때까지 귀족 계급을 위한 예술가로 일하던 건축가가 사회를 향해 자기들의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주체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건축인가? 지금 사회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런 발상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 노동자를 위한 집합주택 '지들룽'이라는 주제였다. -199쪽

젊은 시공팀은 하룻강아지의 강점이라고나 할까, 겁도 없이 굴삭 작업을 해 나갔다. ...젊고 경험도 부족한 만큼 그들은 각 공정에 들어가기 전에 꼼꼼하게 연구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어중간한 경험만 믿고 작업하는 얼치기 베테랑 감독보다 훨씬 성실하고 믿음직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공사는 아무 문제도 없이 일정대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지금은 젊은 시공팀과 함께 작업을 했던 것이 오히려 성공의 열쇠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 -199쪽

철근 콘크리트조 18층의 판상형 고층빌딩에 1인부터 10인의 대가족용까지 무려 23개 유형으로 337가구가 배치되었다. 모든 가구가 복층형이고 그것들을 입체적으로 짜 맞춰 단순한 박스에 담아 놓은 교묘한 구성도 멋졌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감동한 것은 다양한 형태로 과감하게 설치된 공적인 공간이었다.
지상층은 야성적인 인상을 풍기는 기둥으로 상부 구조를 지탱하는 필로티로서 주민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최상층에는 보육원, 그 밑에는 유치원, 그리고 옥상은 수영장, 실내체육관, 일광욕실 같은 공용 시설로 구성된 옥상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주거동 안으로 들어가면 레스토랑이나 미용실 같은 점포까지 나름의 설비를 갖추고 처마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요컨대 하나의 집합주택 안에 하나의 거리 혹은 공동체가 자라는 데 충분한 생활 요소가 담겨 있었다. 거기에는 단순히 대량 공급의 경제적 이점만이 아니라 모여 살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풍요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203쪽

자유롭고 공평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개인의 자아를 넘어선 공공 정신이다. 하지만 그런 정신 아래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 참되 의미에서 퍼블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은 국가나 공공이 아니다. 뭇 사람들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문화를 창조하고 키워 가는 것은 어느 시대나 개인의 강력하고 격렬한 열정이다. 그들의 열정에 부응할 수 있는 '생명'이 깃든 건물을 나는 짓고 싶다. -254쪽

도쿄가 '관'의 손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면 오사카는 '민'의 손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옛날에는 항구, 수로, 도로 같은 도시 인프라가 민간으로 건설되고, 메이지 이후의 도시정비에서도 도시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로 미드소지를 비롯하여 많은 시설이 민간의 자금 제공이나 토지 수용 등 민간의 협조로 건설되었다. 오사카는 무엇보다도 여기 살며 일하는 사람들이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키워 온 도시였다. -277쪽

...대규모 작업과 힘겹게 씨름하고 있는 나에게 사지 씨는 "모쪼록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과감하게 일하게. 책임은 내가 지겠네"라고 말해 주었다.
"좌우지간 인생은 재미있어야 해. 업무에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일하면서 살아가게. 감동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어."-279쪽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글로벌리즘이란 어디까지나 미국이 주도한 근대화 사회 속에서 일어난 사태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칫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믿기 쉽지만 이 세계에는 거기에서 비켜난 사람들도 매우 많다.
..앞으로도 '세계'가 존재해 나가려면 필연적으로 이런 강국 중심의 패권주의를 뛰어넘은 참된 의미의 지구주의가 요구된다.
... 그렇다고 일개 개인에 불과한 건축가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건축이 인간 생활의 문화에 관련된 것인 만큼 건축을 통하여 나름대로 의사 표명은 해 나가야 할 것이다. -305쪽

지진 이후 몇 달 동안 사무소 업무를 모드 젖혀 두고 혼자서 혹은 사무소 스태프들과 함께 피해 지역을 돌아보았다. 그 지역에 내가 지은 건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그 처참한 풍경을 마음에 깊이 낙인처럼 새겨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복구에는 1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의 내부에 그 복구 작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지속시키려면 그 참혹한 현실을 똑똑히 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58쪽

건축 이야기에는 반드시 빛과 그늘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밝은 빛 같은 날들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배후에는 그늘 같은 날들이 있다.
독학으로 건축가가 되었다는 나의 이력을 듣고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아무런 뒷배도 없고 혼자 건축가로 일했으니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살아왔을 리가 없다. 여하튼 매사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해도 대개는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애오라지 그늘 속을 걷고, 하나를 거머쥐면 이내 다음 목표를 향해 걷기 시작하고, 그렇게 작은 희망의 빛을 이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늘 역경 속에 있었고, 그 역경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를 궁리하면서 활로를 찾아내 왔다 . 그러므로 가령 나의 이력에서 뭔가를 찾아낸다면 아마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적 자질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 있다면 그것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타고난 완강함일것이다.-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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